"차기 정부 외교 한 번도 가지 않은 길 걷게 될 것... 동맹 vs 자주식으론 대응 불가"

입력
2022.01.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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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지속가능솔루션: 외교분과>
③ 대미 ·대중 ·대일 외교 방향

편집자주

'대한민국 지속 가능 솔루션'은 내년 대선을 맞아 한국일보가 전문가들과 함께 우리나라 당면 현안에 대한 미래지향적 정책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물입니다. 정치 외교 경제 노동 기후위기 5개 분과별로 토론이 진행되며, 회의 결과는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대미 대중 대일외교 방향 제언>
1. 대미 외교 - 대전제는 한미동맹을 축으로 대중관계 유연 대처(피버팅 전략) - 동맹 우선 vs 자주 같은 이분법 버려야 - 바이든 가치외교, 이익 아닌 가치로 접점 모색 - 한국외교 입장 선제적 제시 2. 대중 외교 - 중국=신흥 강국, 한국=중견 선진국, 변화된 위상 상호 인정이 먼저 - 미세먼지, 감염병, 해양 등 생활안보 이슈에 보다 능동적 대응 - 전통적 비핵화 외교도 유지 강화 3. 대일 외교 - 양국 갈등 정치적 이용 금물 - 국내 양 극단의 대일 시각부터 접점 찾아야 - 경제, 인구 등 공통 관심사 공동 대응

한국 외교는 지금 중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예전 같지 않은 한미동맹, 점점 멀어지고 서먹해지는 한중 관계, 수교 이래 최악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일관계까지. 점점 거칠어지고 있는 미중 대결하에서 주요국 외교정책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는 차기 정부가 풀어야 할 최대 난제란 평가다.

한국일보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나라 주요정책 대안 모색을 위해 마련한 '대한민국 지속가능 솔루션' 프로젝트 외교분과 3차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지난 70년, 30년을 관통했던 대미·대중 외교 방식으론 새 국제질서에 대응하기 어려우며,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전혀 새로운 길을 갈 것으로 전망했다. 대미외교 방향과 관련, 분과위원장인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동맹 우선이냐 자주 우선이냐 따지던 식으론 더 이상 대미 외교를 풀어갈 수 없다"면서 서로 가치의 접점, 이익의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중 외교에 대해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비핵화 등 전통 이슈도 중요하지만) 미세먼지, 감염병 등 생활안보 영역에서 우리가 선제적으로 요구하고 접점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1일 한국일보 본사에서 열린 외교분과 3차회의에는 전재성 교수, 이동률 교수,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외교전략실장,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이정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송용창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참석했다.


대미 외교, 이익뿐 아니라 가치에서도 접점 찾아야

전재성 교수=한미 동맹과 관련해 많은 이슈가 있다. 우선 새 의제들이 있다.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가 끼어들어왔다. 원자력, 우주, 보건 등과 관련한 양자 간 기술협력도 다음 정부에서 실행될지 봐야 한다. 둘째는 미국이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에서 보듯 인권과 외교를 강하게 연계시키고 있는데, 그런 가치외교 면에서 한미가 같이 갈 수 있느냐 여부다. 세 번째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변화다. 미국이 예전 같지 않고 바이든 정부 외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미국은 미국대로 한국을 여전히 약한 고리로 보는 듯하다. 우리의 전략적 모호성에 대해 불만도 많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중 전략 관계를 강화한다’를 기본 정답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지속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

이승주 교수=미국과의 협력이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분야들이 있지만 결과물을 놓고 보면 한국 입장에선 성과가 모호한 대목이 있다. 공급망 협력이 대표적이다. 당장 협력은 하지만 성과의 공유, 배분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 중국에 설치된 공급망을 감소시키고 미국으로 이전한다는 선택이 한국에는 큰 전략적 변화지만 경제적, 외교 안보적으로 그만한 성과를 거둘지 확실치 않다. 이런 면이 각론에서는 협력을 하지만 총론에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 같다.

성기영 실장=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을 거칠게 리뷰하면, 반도체 등 미국이 원하는 분야의 기술적 공여를 기반으로 문재인 정부가 원했던 북한 문제에서 미국의 협력과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이 점점 우리 기업에 무리한 줄 세우기를 요구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상업적 측면에서 뭐가 더 이익인지 고민이 클 것이다. 기술동맹이나 신기술분야 협력이 한미 양자 외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데 우리 외교 역량에 비춰볼 때 아직 준비 상태가 부족한 영역이다.

이동률 교수=미중 충돌에서 우리의 선택을 전략적 모호성과 전략적 명확성으로 양분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전략적 유연성이란 표현이 낫지 않을까 싶다. 어떤 문제에 따라 선택의 타이밍이 중요하고, 한 번 택했다고 그걸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미중 경쟁도 자국 국내정치와 연계돼 있고 국제 질서도 유동적이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전략을 옮긴다는 면에서 모호성보다는 유연성이 맞다.

한미동맹, 피버팅 전략으로 유연성 발휘해야

성기영 실장=전략적 유연성에 덧붙이면 ‘피버팅(pivoting) 전략’을 얘기할 수 있다. 농구에서 피버팅은 한 발을 그대로 디디고 다른 발을 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 2,600자짜리 긴 공동성명이 나올지 예측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분야도 다변화됐고 협력의 폭과 비전도 충실히 반영됐다. 한미동맹에서 흔들리지 않는 한 발을 디딘 셈인데 한중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아 다른 쪽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다. 한미동맹에서 한 발을 굳건히 하되 한중·한일 관계나 다자 외교에서 우리가 주도적 역량을 발휘하는 유연한 피버팅 전략이 필요하다.

이승주 교수=전략적 유연성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바이든 정부도 큰 틀에선 자국 우선주의를 버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국과 협력함으로써 오는 성과가 모호해, 미국 중심의 협력 생태계가 만들어질지에 대해 유보적인 국가가 많다. 협력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미국에 협조하면서도 각국이 자국 이익을 우선 추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먼저 미국에 이런 방향의 성과를 기대한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공유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한국과 유사한 이해관계를 가진 나라들이 많은데 한국이 그런 역할을 하면 미국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제도적 틀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전재성 교수=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와 비교했을 때, 다자주의나 예측 가능성, 대중 전략의 체계적 접근 등에선 점수를 따는 부분이 있지만 동맹국들에 아직은 확신을 주지 못한다. 새로운 패권전략이 나온 것도, 동맹에 대한 보장이 많아진 것도, 다자주의에 대한 투자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게다가 국내 정치적으로 취약해 동맹국에도 어려움을 주는 상황이다. 우리 입장에선 예전에는 여러 이슈를 놓고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하는 문제였다면, 요즘은 한국의 이익이냐 아니면 미국이 요구하는 가치를 선택할 것이냐로 몰리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의 가치 외교를 이익 문제로 대응하면 대응이 점점 어려워진다. 미국은 앞으로 가치 면에서 한미동맹을 강조할 것인 만큼, 우리 역시 가치외교로 접점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분명한 건 앞으로의 대미외교는 지금까지 해온 외교와는 많이 다른 방식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는 보수-진보로 나뉘어 대미 신뢰나 자주성을 외쳤는데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70년간 해온 것과는 다른,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다른 국가들도 그렇게 느끼고 베팅하고 있다. 우리 젊은 세대도 미국과 중국에 대한 접근법이 이전 세대와 다르다. 대미 관계에서도 혈맹 같은 요소가 작동하지 않을 것 같다. 이번 대선이 586세대의 마지막 선거일 듯한데, 다음 선거에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 나오지 않을까 한다. 미국과 한국의 차이를 인정하고 미국의 가변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의 이익과 가치를 고려하는 대미 외교가 필요할 것 같다.

대중 외교, 생활안보 차원에서 대응해야

이동률 교수=우리는 늘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수세적으로 대응해왔고 그래서 심지어 눈치 외교라는 얘기도 들어왔다. 하지만 이젠 그 프레임을 돌파해야 할 시점이다. 대중 관계에선 인접국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젊은 세대가 느끼는 반중 정서는 일종의 생활안보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미세먼지나 감염병, 해양이익 등의 문제들이다. 이런 걸 어떻게 풀지를 선제적으로 제시하면서 외교를 능동적으로 끌어가야 한다. 비핵화나 미중 갈등은 구조적인 문제이고 해결이 쉽지 않지만 생활안보에선 한국의 역할이 커질 수 있고 한중 관계를 개선하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중 외교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한중관계가 30주년을 맞으면서 패러다임 변화 시점에 와 있다. 한중 관계의 기본 틀은 경제협력이었다. 하지만 경제협력 자체가 과도기적 구조조정 과정에 있다. 30년 전 중국은 개도국이었고 심지어 우리를 모델 삼았지만, 지금은 신흥강국이 됐다. 한국도 중견 선진국이 됐다. 중국이나 한국이 이를 수용하지 못해 서로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낀다. 따라서 중국을 신흥강국으로 인정하고 우리 역시 선진국이라는 것을 중국에 인지시키는 노력이 중요해졌다. 우리가 중국에 미국과의 동맹이라는 점을 내세웠다면 이제는 선진국의 일원으로서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승주 교수=지난 30년간 한중은 경제에서 협력뿐 아니라 경쟁도 커지는 변화를 겪어왔다. 경쟁이 격화하는 부분에선 재조정이 불가피하다. 중국과의 협력 지점을 전통적인 분야를 넘어서 미래지향적으로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

성기영 실장=중국과의 전통적 협력 부분을 짚어보면 북한 비핵화 문제가 있다. 중국의 역할이 디딤돌이냐 걸림돌이냐라는 논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과거 6자회담처럼 어니스트 브로커(honest broker·성실한 조정자)로 역할을 할 것이냐, 아니면 북한의 자력갱생 노선을 지원하느냐에 따라 중국 역할이 다르게 해석될 것이다. 후자로 가지 않도록 비핵화 외교 역시 강화해야 한다. 지난해 4월 북한 유조선이 산둥성 항구에 정박돼 있는 게 공개적으로 목격됐는데 정치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선 미중 경쟁을 냉전으로 규정해서 반사이익을 얻는 데도 관심을 보인다.

이승주 교수=중국의 경제 제재와 관련해서는 한국 외에 여러 나라들이 부담감을 갖고 있다. 한중 관계는 협력, 경쟁, 갈등적 요소가 모두 내포돼 있는데 중국이 경제적 강압을 외교 안보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 대해선 비슷한 입장의 나라들과 보조를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 젊은 세대에서 대중인식이 좋지 않은데,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경제적 불확실성을 키우는 어떤 요소도 관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경제적 압박의 수단화가 한국에서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중국에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한일관계, 탈정치화된 이슈부터 조금씩

전재성 교수=차기 정부에선 한일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도 중요한 문제다.

이정환 교수=한일 간 갈등은 늘 있었지만 최근 들어선 그 성격이 달라졌다. 역사 인식 갈등의 핵심에 사법화 문제가 있다. 2019년 이후로 역사 갈등이 다른 분야로 확산된 것도 과거와는 다르다. 역사에서 경제, 안보, 인적 교류, 국민감정, 정체성 갈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일본의 태도 변화다. 한국에선 법원 변수가 등장했다면 일본에선 한국이라는 의미 자체가 변한 느낌이다. 양국 모두 더 이상 상호 연결고리를 찾지 않고 각자 나름대로 미중 경쟁시대에서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이 원인을 두고 많은 분들이 구조적 변화 때문이라고 지적하지만 정치인들이 관리를 못 했다는 지적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2010년대 들어 한국 지도자들이 역사 이슈에 대해 투트랙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일본 지도자들도 과거와 달리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도자들이 갈등 관리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정치적 이득으로 활용한 측면도 있다. 당장 단기적으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 법원에서 현금화가 진행될 텐데 이 부분의 관리가 매우 어렵다. 사법부 조치는 이행하되 일본 기업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을 찾겠다는 우리 정부의 논의가 일본 설득 이전에 국내에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다.

이승주 교수=일본이 구마모토에 반도체공장을 짓는데 파트너가 삼성이 아니라 대만의 TSMC다. 협력 상대가 한국이 아니라는 게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한일이 공통으로 직면한 도전들은 여전히 협력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인구 구조와 경제 구조 등 여러 면에서 유사성이 높아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일단 탈정치화된 이슈부터 조금씩 협력을 모색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양자 관계를 단시간에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지역적 글로벌 차원에서 협력 지점을 찾아야 한다.


송용창 논설위원
송은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