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우리집' 끼부리던 그 가수? 재밌더라고요" [인터뷰]

입력
2022.01.05 08:00
MBC '옷소매 붉은 끝동' 열풍 주역 이준호 
강직하면서도 소년 같은 이산 연기로 호평

"처음엔 '우리집'(2PM 히트곡) 가자고 끼 부리던 아이돌이 무슨 정조냐'라고 생각했죠. 막상 드라마를 보니 발성도 좋고 정조와 이미지가 딱 맞더라고요."(정혜린·25)

"또래 친구들끼리 '우리가 중고딩 때 데뷔한 아이돌을 사극으로 서른이 넘어서 좋아하게 되다니'라며 다들 신기해하고 있죠."(한소리·31)

정초부터 온라인을 눈물바다로 만든 MBC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 열풍의 중심엔 이산과 정조를 연기한 이준호가 있다. 이렇게 강직하고 섹시하면서도 소년 같을 수 있다니. 이준호는 누구보다 '뜨거운 이산'을 연기했다. 20~40대 여심은 후끈 달아올랐다. 그룹 2PM으로 무대에 섰을 때와 180도 다른 모습으로 반전 매력을 준 덕분이었다. '옷소매' 종방 후 3일 화상으로 만난 이준호는 "저 배우가 '우리집 준호'였어? 라고 묻고, 어떤 분은 '저 가수가 정조였어?' 라고 하는 반응이 신기하고 재미있다"며 웃었다.

2008년 2PM으로 데뷔한 '짐승돌'은 어떻게 사극의 아이돌로 떠오를 수 있었을까.

이준호는 가수 데뷔 당시 무대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그룹에서 곡예에 가까운 춤을 가장 많이 소화한 '춤꾼'이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멤버인 닉쿤, 택연 등에 향했다.

무대에서 '인상 깊지 않던 얼굴'은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오히려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생활력 강한 가난한 재수생(영화 '스물'·2015)으로, 너무 평범해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며 범인을 날다람쥐처럼 쫓는 특수 경찰(영화 '감시자들'·2013)로 극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특징 없는 얼굴 속 다양한 표정이 이준호의 무기였다. 고등학교 때 했던 연극반 활동도 자연스러운 연기의 밑거름이 됐다.

배우로서 이준호의 가능성을 알아본 건 '칸의 여왕'이었다. 이준호는 2015년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무사 율로 출연했다. 그를 감독에 추천한 이는 다름 아닌 전도연이었다. "율 캐스팅이 안 될 때 감독님께 준호가 나온 '감시자들' 한번 보시라고 권유했어요. 웃으면 소년 같고 가만히 있으면 서늘하더라고요."(전도연)

'스물'의 이병헌 감독은 이준호의 얼굴을 "페이소스가 묻어난다"고 표현했다. 이준호는 2018년 종방한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백화점 붕괴로 오른쪽 다리에 철심을 박고 사고에서 살아남은 여동생의 생계를 이끄는 청년 이강두를 연기했다. "정말 몰입하더라고요. 인물의 고립감을 가져가기 위해 촬영이 이뤄지던 부산에 한 오피스텔을 잡아 놓고 거의 안 나오고 그랬으니까요."('그냥 사랑하는 사이' 김진원 PD)

이준호는 2017년 방송된 드라마 '김과장'에서 서율 역을 맡아 상대에게 툭 과자를 던졌다. 검사 출신으로 그룹 재무 이사 자리에 앉은 캐릭터의 안하무인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직접 낸 아이디어였다. '옷소매'에서 그는 이산일 때와 정조 일 때 목소리가 다르다. 나이, 지위에 따라 목소리 톤도 변해야 한다는 이준호의 생각이 반영됐다고 한다.

"'컷'하면 다가와 '진짜 잘했냐'고 꼭 물어봤어요. 제대 직후라 그런지 자신이 연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 지에 늘 객관화를 하더라고요."('옷소매' 정지인 PD)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에서 준호는 뚝심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그는 애초 가수로 데뷔를 하지 못할 뻔했다. 2006년 SBS '슈퍼스타 서바이벌'에서 6,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우승했지만, 다른 연습생들 보다 데뷔에서 밀렸다. 이후 슬럼프를 겪었고, 성대결절로 반년 동안 노래를 못했다. 그의 최대 위기였다.

"준호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어요. 여러 상황이 좋지 않아 '준호 그만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여쭈려고요. 그런데 준호 어머니께서 '제 아들한테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어요. 아들이 꾸고 있는 꿈을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오늘 하신 말씀은 못 들은 걸로 할게요. 제 아들의 다음 스텝을 한 번 더 지켜봐 주세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준호가 그렇게 버텼죠."(JYP 고위 관계자)

이준호는 SNS에 '진심과 진실은 언젠가 통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줄곧 무대 찢는 아이돌과 청년으로 소비된 이준호는 '옷소매'를 만나 그 벽을 뛰어넘고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연기를 시작할 때 '가수치곤 잘하네'란 말에 좋아해야 하나, 반성해야 하나 헷갈리더라고요. 출신이 어떻든 내가 잘하면 선입견은 깨질 거란 자신감을 갖고 일 했어요. 이산이란 역과 제 마음가짐이 맞아 더 시너지를 낸 것 같기도 하고요. 이산은 성군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전 어려서부터 가수로 투어를 돌고, 배우로서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꿈을 자면서도 꿨거든요. 지금도 몇 년 뒤엔 내가 어디에 가고, 어디에 있어야하는 지에 대한 꿈을 꾸고 있어요."

양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