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가 밝았지만, 제20대 대선으로 이어지는 길은 여전히 혼탁하다. 양대 정당의 후보는 여전히 본인 혹은 가족과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채로 역대급 비호감 경쟁에 매진하고 있으며, 정책과 공약을 둘러싼 건설적인 토론은 찾아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두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를 겪는 와중에 그동안 관심의 초점에서 벗어나 있던 군소 후보들-정확하게는 그중 한 명만-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안철수 후보의 부상과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상념이 스친다. 첫 번째는 언제부터인가 선거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선거연합과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줄다리기에 대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선거에서도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꿈틀거리자마자 양쪽 캠프에서 경쟁적으로 구애를 펼치고 있다. 물론 1등만이 당선되는 대통령선거의 속성으로 인해 압도적 지지를 받는 후보가 없는 한 후보 간 합종연횡은 항상 요구될 수밖에 없다. 다만 현행 제도의 한계는 이러한 합종연횡이 유권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후보 및 주변 정치인들의 정치적 계산에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이다.
차제에 대선에 한해서라도 결선투표제 도입을 고민하는 것은 어떨까?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유권자들은 당선가능성을 고려하여 차악을 억지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결선투표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후보는 단순히 지지층의 결집을 노리는 소극적인 전략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한 정책과 공약을 제시해야 할 유인을 가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선거연합, 나아가 이른바 ‘협치’가 장막 뒤에서 이루어지는 소수 정치지도자 간 협상이 아니라 유권자의 선택에 의해 제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궁극적으로 결선투표제는 다당제하에서 대통령제가 정치적 정통성을 확보하고 운영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상념은 어째서 심상정 후보는 이리도 존재감이 없는가이다. 이번 선거에서 그녀가 대선 후보로서 무언가 주목받는 의제를 제기한 것이 있는지 의문이다. 유일하게 심상정 후보에 대한 언론 보도로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안철수 후보와의 의미를 알 수 없는 회동 정도일 뿐이며, 심지어 선거연합이나 단일화의 상대로조차 거론되지 않는다. 진보 정당에 유독 박한 언론 지형을 탓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언제는 우호적인 언론 지형을 누린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심상정이라는 정치인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녀는 이미 4선 의원이며 이번이 세 번째 대선 출마이다. 심상정이 쌓아 온 정치적 성과와 대중적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출마는 진보 정당이 미래를 이끌어 갈 새로운 세대를 키워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방증할 뿐이다. 진보 정당의 의미와 역할, 그리고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정의당의 모습은 안타까울 뿐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정의당의 다른 누가 대선 후보였다고 하더라도, 심상정 후보가 2달여 뒤 기록할 득표율보다 특별히 더 낮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번 선거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얼굴을 통해 앞으로 20년 동안 진보 정당이 추구할 새로운 비전과 정체성을 보여줄 수는 없었는가? 어쩌면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이 식상하다는 인상을 보여주고 있으니, 애당초 유의미한 선거운동이 무망하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