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원자력을 '친환경'으로 분류한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녹색분류체계)' 초안을 채택했다는 소식이 한국에 옮겨붙을 조짐이다. 앞서 우리나라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즉 'K택소노미'에 원전을 제외하면서 EU택소노미 등 해외 사례를 참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EU 내 논의 자체가 논쟁적인 데다, 방사능폐기물 처리 등 조건을 붙인 분류라 그저 원전 찬성이라고만 하기엔 무리라는 지적이다.
3일 환경부에 따르면 원전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포함한 EU택소노미 초안은 일러야 4개월, 늦으면 6개월 뒤에 확정된다. 회원국과 전문가 그룹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1월 말쯤 EU 의회와 이사회에 초안이 전달되면, 이들은 최소 4개월간 검토 과정을 거쳐 표결에 부친다. 검토 기간은 필요에 따라 2개월 연장된다.
초안 내용이 최종안까지 유지될 지는 불확실하다. 전력 생산 3분의 2가량을 원전에 의존하는 프랑스 등 친원전 국가들은 적극 찬성하지만,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은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반년 가까이 이어질 검토 과정에서 내용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설사 최종적으로 EU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된다 해도 구체적 내용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안에 따르면, 원전을 친환경으로 인정하는 조건으로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안전한 처분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핵 발전에 사용된 연료에서 우라늄·플루토늄을 추출하고 남은 대량의 방사성물질을 일컫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핵 폐기물)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도 이를 영구 처리하는 시설이 아직 없다. 유일하게 핀란드에서 영구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세우고 있는데 1983년 부지 탐색을 시작해 2023년에야 완공 예정이다.
우리나라 역시 핵폐기물 처리 부지 선정을 놓고 40년 가까이 논란을 겪고 있다. 중저준위 폐기물 처리장 설치 문제만 해도 1994년 인천 굴업도, 2004년 전북 부안에 대규모 충돌을 불러일으켰다. 고준위 폐기물은 여전히 아무 대책 없이 각각의 원전이 임시 보관 중이다.
환경부는 "EU의 논의 동향 등을 지속적으로 살펴보는 한편 기준의 내용과 이유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라며 "에너지 등 국내 사정을 고려하여 검토와 논의를 지속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