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강원 동부전선 최전방 철책을 넘은 월북자의 정체는 2020년 11월 유사한 경로로 귀순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남성으로 확인됐다. 불과 1년의 시차를 두고 철책을 ‘자동문’ 삼아 남북을 제 집처럼 드나든 셈이다. 군의 경계 실패에 더해 경찰의 허술한 탈북민 관리까지, 총체적 안보 난맥상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국방부는 3일 “1일 육군 22사단 일반전초(GOP) 철책을 통해 북으로 간 월북자는 재작년 강원 고성군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귀순한 인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군과 경찰 등 관계기관의 합동 조사 결과, 월북자는 서울 노원구에 사는 29세 탈북민 A씨로 파악됐다. 당국은 사건 당일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일대 폐쇄회로(CC)TV에 찍힌 A씨의 모습을 근거로 제시했다. 영상에는 그의 얼굴이 육안으로 식별 가능할 정도로 뚜렷하게 포착됐다고 한다.
A씨의 귀순ㆍ재입북 과정은 군의 안이한 경계 태세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그는 1년 만에 같은 지역에서 동일 수법으로 GOP 철책을 넘나들었고, 두 차례 모두 군은 즉각 눈치채지 못했다. A씨는 2020년 11월 3일 오후 22사단 관할 구역인 고성군에서 맨몸으로 2, 3m 높이의 GOP 철책을 훌쩍 뛰어넘었다. 군은 14시간 뒤에야 민간인 거주 지역인 민통선 초입에서 그를 검거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1일 오후 같은 지역 GOP를 통과한 뒤 군이 월북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2시간 40분이나 걸렸다.
각종 첨단장비도 무용지물이었다. 귀순 당시엔 GOP 철책을 넘을 때 감지센서가 작동하지 않은 이유가 컸다.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도입된 GOP 철책에는 광망 센서가 설치돼 철책을 절단ㆍ훼손하는 등 일정 수준 이상의 하중이 실리면 경보음이 울린다. 또 철책 기둥에는 Y자 모양의 감지 브라켓(기둥에 돌출된 축을 받치는 도구)과 감지 유발기가 설치된다. A씨가 브라켓이 없는 기둥을 노린 데다, 감지유발기마저 나사가 풀려 제 기능을 못한 탓에 그는 출입통제 지역을 맘껏 휘젓고 다녔다. 그래서 군은 장비를 대폭 보강했고, 월북 땐 경보음도 정상적으로 울렸다. 하지만 병력이 현장에 출동하고도 잦은 오작동을 고려해 이상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 느슨한 판단이 문제였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수시 고장으로 ‘양치기 소년’이 된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맹신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A씨의 경험과 이력 역시 월북 성공률을 높인 요인이 됐다. 그는 귀순 뒤 조사에서 자신을 ‘체조선수’ 출신으로 소개했다. 작은 키에 체중도 50㎏ 안팎에 불과해 철책 넘기에 수월한 신체 조건을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험준한 동부전선 산간지형의 월경 루트를 꿰뚫고 있는 점도 군의 추적을 따돌리는 데 도움이 됐다.
일각에서 제기된 ‘간첩설’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군 관계자는 “A씨의 대공용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정부기관 접근이 어려운 직업(청소용역원)을 가졌고, 월북 직전까지 비교적 관리도 잘됐다는 것이다.
군이 A씨의 비무장지대(DMZ) 진입 당시 북측에서 신원미상자 4명을 열상감지장비(TOD)로 포착했지만, 연관성은 특정하지 못해 그의 신변 안전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르면 4일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