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보다 탄소배출 많은데 '친환경 발전소'라고요?

입력
2022.01.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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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5개사, '석탄'은 감추고 '친환경'만 언급
실제론 95% 이상이 석탄 발전으로 이뤄져
정유사 등도 '탄소중립' 정의에 맞지 않게 써
수치 착시와 불리한 정보 누락 현상 심각
정부가 제재하고 관련 정보 공개토록 해야

[그린워싱 탐정]<1>화력발전소·정유사 SNS 분석

편집자주

지구는 병들어 가는데, 주변에는 친환경이 넘칩니다. 이 제품도, 이 기업도, 이 서비스도 친환경이라고 홍보를 하지요. 한국일보는 우리 주변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추적하고 정부와 기업의 대응을 촉구하는 시리즈를 4주에 한번 연재합니다.


‘친환경 발전소를 가다.’ 지난해 3월 22일, 한국중부발전 페이스북에는 이런 제목의 유튜브 링크가 올라왔다. 제목만 보면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가 연상되지만, 영상 속 발전소는 화력발전 비중이 99.5%인 보령발전본부다.

영상은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초미세먼지 저감계획 점검차 방문한 장면을 담았다. 환경부 보도자료에는 ‘석탄발전소’ 방문이 명시됐지만, 중부발전의 게시물엔 ‘석탄’이 빠지고 ‘친환경’이라는 말이 더해졌다. 2020년 대기오염물질 배출(7,593톤)이 2015년(3만5,708톤)보다 79% 줄었다는 이유다. 여기서 대기오염물질은 미세먼지·황산화물·질소산화물로, 이산화탄소와는 별개다.

중부발전 관계자는 "환경설비개선으로 고효율 저탄소 발전소를 구현했기 때문에 해당 발전본부를 친환경 발전소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부발전이 밝힌 보령발전본부의 2020년 탄소배출량은 1,890만 톤으로 국내 배출량 8위를 차지한 삼성전자(1,253만톤)보다 많다. 저탄소 발전을 구현했다는 설명이 무색하다. 기업 전체가 아닌 발전본부 한 곳의 배출량이 대기업을 훌쩍 뛰어넘는 상황임에도, 스스로 친환경 발전소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린워싱(GreenWashingㆍ위장환경주의)은 이처럼 일부 친환경 행위만을 과장하거나 반환경 행위를 축소해 기업 이미지를 ‘녹색’으로 세탁하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를 속여 안심해서는 안 되는 대상을 안심하게 만들며, 진짜 친환경과 가짜 친환경을 구분하지 못하게 한다. 결국 진짜 친환경에 확실한 이익을 몰아주고 성장시키는 것을 방해한다.

특히 최근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 열풍과 함께 그린워싱의 위험도 높아졌다. 기업들이 일부 정보만 내세우며 ESG를 단기 이익 추구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커졌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2022년 그린워싱을 추적하는 시리즈를 4주에 한 번 연재한다. 그린워싱과 이를 용인하는 정부의 문제를 파헤치는 것은 기후위기 대응 방향을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첫 회로 국내 대표 화석연료 기업인 발전공기업 5사(한국남동발전ㆍ동서발전ㆍ중부발전ㆍ서부발전ㆍ남부발전)와 정유 4사(GS칼텍스ㆍ현대오일뱅크ㆍSK이노베이션ㆍ에쓰오일)가 대외이미지 구축을 위해 사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살폈다.

지난해 1월 1일부터 12월 10일까지 약 1년간 각 기업의 공식 페이스북 게시글(총 1,936건)을 분석했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중복 게시물이 있어 한 채널만 택했다. 분석 결과, 메시지 상당수가 친환경 활동에 집중돼 있었고 화석연료와 관련한 정보는 찾기 힘들었다.

99%가 석탄발전인데, 온통 '친환경' 홍보

발전 5사는 친환경ㆍ탄소중립 등의 단어를 집중적으로 사용했다. 동서발전은 '환경'(719회)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고, 이 중 '친환경'만 따지면 529회다. 주로 자사를 '친환경에너지기업'(126회)이라 지칭하거나, 포트폴리오 중 '친환경에너지'(108회) 사업을 강조했다. ‘풍력’ 등을 포함한 대체에너지 관련 내용(33회)이나 ‘(신)재생’(92회) 등의 단어에 비하면, 화력(8회) 석탄(3회) 등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지난달 기준 한국전력거래소가 발표한 동서발전의 발전설비용량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12%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석탄화력발전이다.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보면 동서발전의 매출 대비 탄소배출은 2018년 794.6톤/억 원에서 2020년 833.5톤/억 원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석탄화력 폐지 예정인데 투자는 늘린다?

서부발전의 게시물에서는 탄소(96회)가 4위다. 1~3위를 차지한 단어가 모두 이벤트(233회)와 관련된 것임을 감안하면 의미상으로는 가장 비중이 크다.

탄소는 탄소중립(79회)으로 많이 표현됐다. 지난해 10월 진행한 ‘탄소중립 챌린지’ 나, ‘온실가스 감축 기술 투자’ 관련 게시물에서 자주 등장했다. 반면 전체 게시물 중 석탄이 언급된 건 단 3회, 화력은 0회다. 현재 발전설비용량 중 화력발전이 95.8%인 데 비해 매우 적다.

이 같은 미디어 운용방식에 대해 서부발전은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석탄화력은 이미 폐지가 예정돼 있어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소개하는 게 더 미래지향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보면 서부발전은 오히려 2030년까지 국내 화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5조9,030억 원으로 늘리는 계획을 세웠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계획(4조5,810억 원)보다도 많다.

남동발전의 게시물 중에서는 회사 슬로건인 CLEAN&SMART(120회)가 3위였다. 친환경ㆍ신재생 에너지를 연상시키는 단어다. 더욱이 1위를 차지한 단어 에너지(349회) 중엔 3분의 1이 청정에너지(105회)였다. 하지만 화력·석탄이라는 단어는 각각 2회씩만 등장한다.

중부발전은 (신)재생에너지를 37회 언급했으나 화력·석탄 등은 아예 언급이 없었고, 남부발전도 (신)재생에너지가 90회 등장해 5위인 반면 화력(1회) 석탄(2회)에 대한 언급은 미미했다.

이들 발전사 모두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5%를 넘지 않으며, 나머지는 모두 석탄·석유를 사용한 화력발전이다. 발전사들은 일제히 이 같은 홍보는 "미래 방향성 소개를 위해"(남동발전), "새로운 비전을 강조하기 위해서"(동서발전)라고 답변했다.

정유사 페이스북에는 주로 이벤트 홍보글이 많아서 환경ㆍ탄소중립 등의 단어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보이진 않았다. GS칼텍스만 환경(70회), 탄소(68회) 등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탄소배출 26% 줄이면 '탄소중립'?

그러나 게시물의 내용을 파헤치면 정유사도 그린워싱 논란을 피할 수 없다. 현대오일뱅크가 지난해 4월 올린 탄소중립 계획 및 수소사업 소개 글이 대표적이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현 수준의 70%로 감축하는 탄소중립 그린성장’ 선언을 했다는 내용이다.

얼핏 보면 상당한 감축 노력 같지만 이를 탄소중립이라 보기는 어렵다. 현대오일뱅크가 실제 밝힌 목표저감량은 2050년까지 499만 톤으로 2019년 탄소배출량(678만 톤)에서 단 26%(178만 톤)만 줄이는 것이다.


오동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탄소를 70% 감축하는 것이 아니라 ‘70% 수준’으로 줄인다는 표현을 넣어 오인하기 쉽게 구성했다”며 “현대오일뱅크의 '애뉴얼리포트'를 보면 탄소중립을 ‘탄소배출 순 증가율을 0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데 이는 말장난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이에 대해 “탄소중립 그린성장을 선언했지만 '넷제로' 선언을 한 것은 아니다”라는 해명이다. "(순 증가율 제로가) 탄소감축이 어려운 업종 특성에 적합한 개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탄소중립기본법만 찾아봐도 탄소중립은 '순 배출량 0'이라는 뜻이다.

중부발전은 심지어 환경오염 문제를 '친환경'으로 이용했다. 중부발전은 지난 4월 해외 발전소 주변 마을에서 나무심기 등 환경개선 및 교육사업을 벌인다는 내용카드뉴스를 올렸다. 중부발전 관계자는 “해외사업 수익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해 주민과의 상생을 추구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업이 진행된 인도네시아 찌레본 석탄발전소 1ㆍ2호기는 오염물질 저감장치인 탈황ㆍ탈질설비가 설치되지 않아 2012년 가동 당시부터 환경오염 문제가 제기된 곳이다. 현지 주민들은 건강피해 우려로 수년간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이 같은 사실은 쏙 빠졌다.



책임 개인에 돌리는 '친환경' 이벤트

막대한 탄소배출을 하는 기업들이 환경문제에 있어서 개인의 실천을 강조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다. 남동발전은 지난 10월 ‘에너지업 플로깅’ 행사를 열었다.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활동을 인증하면 사은품을 주고, 참가비는 모아 기부한다는 내용이다. 행사를 개최한 주된 장소는 석탄화력발전본부가 있는 인천 영흥도였다.

SK이노베이션도 비슷한 행사를 했다. 지난해 7월 한국도로공사와 함께 진행한 ‘휴(休)사이클 캠페인’이다. 199개 고속도로 휴게소에 폐 페트병 전용 수거함을 설치하고 수거된 페트병을 업사이클(개선해 재활용)한 제품을 참여자들에게 증정한다는 내용.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이 같은 캠페인이 “탄소중립이나 플라스틱 문제를 개인 수준의 문제로 축소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개인이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보다 기업이 생산량을 줄이는 게 더 빠른 해결책이지만 논점을 흐리고 있다는 것이다. 양 캠페이너는 “명확한 탄소배출 감축 목표와 탈플라스틱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캠페인은 기업이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나무 태우는데 "탄소 안 나온다" 홍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전방식이나 아직 개발 중인 기술을 탄소중립 해법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 관련 지식이 없는 개인이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는 가장 교묘한 유형이다.

남부발전은 지난해 11월 하동빛드림본부산림바이오매스 혼소(섞어 태우기)발전을 다루면서 ‘연소 시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아’라고 소개했다. 송한새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이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온실가스 산정 가이드라인을 과장한 잘못된 정보"라고 지적했다.


바이오매스는 국가 온실가스 산정 과정에서 토지이용부문(수확)과 에너지부문(연소)에 모두 포함되는데, IPCC는 중복을 방지하기 위해 후자는 계산하지 않는다. 단지 계산에서 제외된 것을 두고 탄소 배출이 없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송 연구원은 “나무를 태우고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데 탄소배출이 안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더욱이 석탄과 바이오매스를 섞어 태우는 혼소발전에서 대기오염물질은 다량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환경부 지침에 포함된 기본 배출계수에서도 목재ㆍ목재폐기물을 이용한 바이오매스 발전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11만2,000kgGHG/TJ(연료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계수를 나타내는 단위)로 유연탄(9만4,600kgGHG/TJ)이나 원유(7만3,300kgGHG/TJ)보다 높다.

서부발전은 지난해 5월 탄소포집ㆍ활용ㆍ저장기술(CCUS)을 개발해 태안화력발전에 설치한다는 내용의 카드뉴스를 올렸다. 목표는 역시 탄소중립이지만 계획이 실현되더라도 달성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태안화력발전소의 설비용량은 500MW인데, 서부발전이 계획한 이산화탄소 포집 플랜트 규모는 150MW라 여전히 온실가스가 배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력발전소에 설비를 붙이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드는 것도 문제다. 오동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친환경이나 ESG의 이름으로 이 같은 광고가 계속되지만 결국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을 이유로 석탄발전소의 가동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보 비대칭' 바로잡도록 정부가 나서야

분석대상 기업들은 홈페이지에서도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발전본부’(남동발전 영흥화력), ‘친환경 에너지ㆍ화학기업’(에쓰오일) 등의 미사여구를 쓰고 있다. 이 같은 표현이 쓰인 건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정부의 관리감독은 보이지 않는다. 2014년 석탄발전기업 피바디 에너지의 ‘청정석탄’ 문구 사용을 제재한 영국의 사례와 비교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이용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환경기술산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환경성 정의 및 부당한 표시ㆍ광고 행위 규제 대상에 전력 및 에너지를 추가하는 내용이었다. 현재는 '제품'으로 한정돼 있는데, 여기에도 에너지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보다 명확히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논의에 진전이 없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정부의 제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와 투자자가 그린워싱을 경계하더라도 기업이 일부 정보만 골라 보여줄 경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기업의 일방적인 선언이나 주장만 봐서는 투자자나 소비자가 숨겨진 문제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환경ㆍ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등 정보불균형을 해소하는 장치가 없다면 그린워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윤희원 인턴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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