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장 100분 장광설… 바이든 12번 때리고 분열 조장한 트럼프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선언으로 시작해 “미국의 황금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됐다(The golden age of America has only just begun)”는 자찬으로 끝났다.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집권 2기 첫 상·하원 합동 연설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기 과시와 전임자 힐난, 주변국에 대한 위협을 쉬지 않고 쏟아냈다. 연설 시간은 무려 1시간 39분 31초. 공식 기록이 남아 있는 1964년 이래 미국 대통령의 의회 연설 중 가장 길었다. 종전 최장 시간은 2000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으로, 1시간 28분 49초였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인 2017년 첫 의회 연설에선 1시간 10초로 끝냈다. 미국 CNN방송은 “1기 행정부 자신을 포함해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오랜 시간 연설했다”고 꼬집었다. 기나긴 연설은 대부분 ‘업적’ 자랑으로 채웠다. 트럼프는 취임 후 6주간 행정명령 100개·행정조치 400개에 서명하고, 파리기후변화협약·세계보건기구(WHO),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탈퇴했다며 으스댔다. 연방정부 구조조정에 저항하면 해고하겠다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트럼프의 장광설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이름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었다. 연설 시작 8분 즈음 이민자 문제와 관련해 처음 언급된 뒤 환경 보호, 인플레이션, 일자리, 반도체법, 발전소, 농업, 대(對)우크라이나 지원 등 주제를 막론하고 최소 12차례 거론됐다. 트럼프는 바이든을 향해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퍼부었고, 모든 문제를 바이든 책임으로 돌렸다. 심지어 달걀값 폭등마저 바이든을 탓했다. 미국 언론은 “바이든 행정부 책임이 아니라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트럼프로 인해 미국 의회는 극단적으로 갈라졌다.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의 연설 내내 기립박수를 보내고 “USA”(미국)를 연호했다. 하지만 반대편 민주당 의원들은 무거운 침묵으로 항의했다. ‘거짓’ ‘저소득층 의료 지원’ ‘(일론) 머스크가 훔쳤다’ 등이 적힌 둥근 손팻말도 들어 올렸다. 트럼프에게 야유하고 큰 소리로 항의하던 앨 그린 하원의원은 결국 퇴장당했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성차별 정책에 저항하는 의미로 분홍색 옷을 맞춰 입었다. 질 토쿠다 하원의원은 옷에 미국 헌법 문구도 새겼다. 몇몇 남성 의원은 ‘여기에 왕은 없다’는 문구가 적힌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왔다. 우크라이나와 연대하는 의미로 우크라이나 국기색인 노란색과 파란색 줄무늬 넥타이를 착용하거나, 노란색 블라우스와 파란색 재킷을 입은 의원도 있었다. 트럼프도 트레이드마크인 빨간색 넥타이 대신 언뜻 보라색으로 비치는 빨간색과 파란색 체크무늬 넥타이를 선택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빨간색·파란색의 조합은 양당제에 대한 존중을 담은 정치적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통합 메시지는커녕 바이든과 민주당을 향해 “극단적 좌파 미치광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WP는 “트럼프의 연설은 그에게 빨간색과 파란색 체크무늬 넥타이가 단지 넥타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줬다”고 촌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