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10명 중 7명 "5년간 집값 급등 탓 인생 계획이 달라졌다"

입력
2022.01.02 21:10
1면
[집값, 다음 대통령은 잡을 수 있나요]
<상>부동산에 저당 잡힌 인생
한국일보-청년재단 공동기획 설문조사
6,428명 응답...집값 폭등에 내 집 마련 꿈 잃어
"다음 대통령도 집값 못 잡을 것"

지난해 연말부터 일부 지역에서 집값이 소폭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다지만, 부동산 문제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여전히 어둡다. 한국일보 신년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 선택 시 가장 영향을 미칠 정책 이슈로 '부동산 및 주거 안정 대책'(51.8%·복수 응답)이 압도적으로 꼽혔을 정도다.

애초 출발점이 달라 '벼락거지'가 된 청년층의 상실감과 절망은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일보가 청년재단과 공동으로 12월 17~26일 청년(만 19~34세) 6,4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부동산 인식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7명은 '지난 5년간 부동산 문제로 결혼과 출산, 자산 형성 등 인생 전반의 계획이 달라졌다'고 답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내 집 마련의 꿈 자체를 포기했다고 응답했는데, 부동산 가격 급등이 인생 출발선 자체를 바꿔 놓은 것이다.

대선 후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새로 뽑히게 될 다음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도 크지 않았다. 10명 중 8명가량은 '다음 대통령 역시 집값을 잡지 못할 것'이라며 매우 비관적 시각을 드러냈다.

달라진 인생 계획=내 집 포기였다

2일 한국일보와 청년재단의 공동 설문조사 분석 결과, 응답자의 67.5%(매우 그렇다 27.1%·대체로 그렇다 40.4%)는 지난 5년간 부동산 문제로 인생 계획이 달라졌다고 답했다. '별로 그렇지 않다'(19.5%)와 '전혀 그렇지 않다'(9.0%)를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내 집 마련 의사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 중 94.4%가 '그렇다'(매우 그렇다 70.7%·대체로 그렇다 23.7%)라고 답했다. 부동산으로 인생 계획이 달라졌든, 달라지지 않았든 모두 90%를 넘었다.

하지만 내 집 마련 가능 시기를 묻는 질문에 '평생 불가능'이라는 응답이 13.8%였다. 7명 중 1명꼴이다. '10년 이내'라는 응답이 가장 많긴 했지만 34.8%에 불과했고, '20년 이내'(15.9%)와 '15년 이내'(15.3%)가 뒤를 이었다.

평생 불가능하다는 답변은 부동산 문제로 인생 계획이 '매우 달라졌다'는 응답자(27.1%)에게서 많이 나왔다. 인생 계획이 매우 달라졌다고 답한 청년 5명 중 1명(21.1%)은 사실상 내 집 마련을 포기했다고 답했는데, 이들의 평균 나이는 25.3세에 불과했다. 모두 미혼이고 학생이다. 아직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꿈을 접은 것이다.

절망적인 답변의 배경에는 부모 도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집값에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월간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 5억7,000만 원에서 지난해 11월 11억4,800만 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을 사고 싶다는 청년이 대다수인데 경제적으로나 주거 안정 측면에서 자가 마련이 훨씬 더 유리하다는 이유일 것"이라며 "집을 사고 싶다는 응답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청년들은 그 절실함의 차이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클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청년이 원하는 부동산은 '3억 이하 아파트'

청년들이 주택 구입 시 가장 고려하는 사항은 역시 금액(40.1%)이었다. 주변 인프라(31.0%)나 출퇴근 거리(18.9%), 건축연도(4.3%)와 평수(4.0%) 등은 그보다 밑돌았다. 생활이나 거주 환경이 많이 불편하더라도, 가격대만 맞으면 일단 집을 구입하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부담 가능한 내 집 마련 금액으로 응답자 10명 중 8명(79.1%)이 3억 원 이하를 꼽았다. 이 중 1억 원 이하라고 답한 이들도 29.0%나 됐다. 9억 원 초과는 단 1.0%에 불과했다.

아파트 선호는 어느 세대보다 두드러졌다. '선호하는 주택 유형'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82.9%가 아파트를 꼽았다. 단독주택은 9.9%에 그쳤고 이어 오피스텔(4.1%), 연립·다가구주택(2.6%) 순이었다.

청년 다수는 '3억 원 이하 아파트'를 원하고 있지만, 이 가격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 11월 전국 평균 아파트 가격(2억8,900만 원)과 비슷하다. 지금은 5억1,330만 원으로 뛰었다. 서울이나 수도권은 고사하고 지방에서도 이 꿈은 현실이 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은 부동산을 '사는(Buy) 것'(46.0%)이 아닌 '사는(Live) 곳'(53.9%)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조금 우세했다. 현재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방향'을 묻는 질문에는 '완화해야 한다'는 응답(81.5%)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금융 지원 방향'에 대해서는 '전세, 월세 등 임대료 지원'(28.3%)보다 '주택 구입자금 지원'(71.4%)에 힘써야 한다고 답했다.

바닥에 떨어진 정책 기대감…다음 정부도 '글쎄'

출범 후 청년층을 위한 행복주택 등 공공임대주택, 신혼희망타운 공급에 힘쓴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호응도는 낮았다. '청년을 위한 부동산 정책이 충분했나'는 질문에 82.5%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는 12.3%에 불과했다.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3기 신도시 조성, 사전청약, 1인 가구 생애최초 특별공급 등 공급 정책이 집값을 안정시킬 것이라는 기대감도 적었다. '3기 신도시 등 공급 정책이 효과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없다'는 답이 56.4%로 절반 이상이었다. '그렇다'는 28.5%였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여야 대선후보들이 경쟁하듯 부동산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청년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다음 대통령은 집값을 잡을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77.6%는 '못 잡는다'고 했다. '잡는다'고 답한 이들은 5명 중 1명(22.1%)에 그쳤다.

김영경 청년재단 사무총장은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청년들이 부동산에 대해 관심이 많고, 집값 급등으로 고민도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며 "집 걱정 없이 살고 싶어하는 청년들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 토대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조사했나
이번 설문조사는 한국일보가 청년재단과 공동 기획해 전국 거주 만 19~34세 성인 남녀 6,428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17~26일 온라인 방식으로 실시했다. 청년 대상 단일 주제 설문조사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표본수다.


김지섭 기자
이승엽 기자
최다원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