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의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에서 시설장의 성추행을 목격하고 외부에 알렸다가 해고된 사회복지사 이모(34)씨. 이씨는 복지시설 법인을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냈고 지난해 12월 1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법인이 항소하면서 직장이 아닌 법정을 드나들게 된 그는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위한 투쟁을 올해도 이어가고 있다.
이씨는 “소송을 내기 전에 다른 일자리를 찾으며 하루에도 몇 번 포기할까 망설였지만, 시설에서 고통받던 장애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이씨가 문제의 시설에 재활교사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인 2019년 1월 1일이다. 하지만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얻은 첫 직장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한 시설은 너무 열악했다. 건물은 낡아 봄에도 난방텐트를 쳐야 했고, 천장에서 비가 새 이불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 “고쳐달라”는 요청에 "돈이 없으니 후원자를 데려오라"는 시설장의 말만 돌아왔다.
근로계약 위반도 허다했다. 장애인을 돌보는 재활교사인데도 마당의 향나무에 올라 가지를 쳐야 했다. 매일 퇴근시간을 넘길 정도로 일이 많아 3세 된 아이를 시설로 데려와 지내야 했다.
성추행 사건이 터진 건 2020년 3월 24일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급식실 식탁을 정리하던 이씨는 "하지마"라고 외치는 여성 장애인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가 눈을 의심했다. 시설장이 입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적장애 여성을 무릎 위에 앉혀 추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식당에는 저녁을 먹기 위해 모인 남성 장애인도 여럿 있었다.
이씨는 떨리는 휴대폰을 꺼내 추행 현장을 찍었다. 육아휴직을 신청하고는 며칠간 잠을 뒤척이며 고민하다가 장애인 시설 감독기관에 알렸다.
이씨에 따르면 시설장은 제보자가 이씨라는 것을 알고는 노골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사직을 종용하다가 안 되니 오전 11시~오후 8시였던 근무시간을 오후 4시~다음날 오전 1시로 바꿨고, 다시 오전 6시에 출근하도록 했다. 이씨를 무고 혐의로 고발하는가 하면 "사전 동의 없이 (성추행) 사진을 찍거나 녹취하면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씨는 “장애인 시설이라 잠금 장치의 비밀번호를 눌러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종일 갇힌 적도 있다”며 “근무시간을 지키지 않고 시설에 왔다는 이유로 (시설장이) 경찰을 불러 끌려나간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결국 해고됐다. 시설 법인은 인사위원회를 열었고 “이씨가 무단 조퇴를 일삼았다”며 면직 명령서를 보냈다. 이씨는 법률구조공단 도움을 받아 법인을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시설장의 추행을 고발한 데 따른 보복조치로 부당한 업무를 지시 받았기 때문에 면직처분은 무효”라며 “이씨가 그동안 받지 못한 임금까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법인의 항소로 복직의 길은 또 멀어졌다.
시설장은 지난해 6월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3년에 8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7년간 취업제한 명령을 받고 항소 중이다. 재판부는 “시설장이 본분을 망각하고 피해자를 추행한 증거가 있는데도 '장난한 것에 불과하다'고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씨는 “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환경에서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