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극장에 갔다. 붐볐다. 몇몇 관객이 “사람들 많네”라며 눈을 슬쩍 치켜뜰 정도였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노 웨이 홈)’이 관객몰이를 하며 오랜만에 극장가에 펼쳐진 풍경이다.
‘노 웨이 홈’은 12월 30일 기준 536만 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최고 흥행 성적이다. 전 세계 흥행 수익은 11억 달러를 넘었다. 제작비(2억 달러 추정)의 5배 넘는 돈을 이미 벌어들였다.
극장이 되살아난 걸까. 낙관은 금물이다. ‘노 웨이 홈’의 흥행은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관객은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제아무리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해도 극장으로 달려간다. ‘노 웨이 홈’이 보낸 긍정적인 신호다. 코로나19에 짓눌렸던 영화 관계자들이 옅은 희망을 품을 만하다.
지난해 극장 관객수는 6,000만 명 남짓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전인 2019년 관객(2억2,667만 명)의 26%가량이다. 그나마 ‘노 웨이 홈’이 11분의 1 정도를 가져갔다. 유례없는 승자독식이다. 관객이 1년에 딱 한 번, ‘노 웨이 홈’처럼 똘똘한 영화 1편만 보려 하면서 벌어진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많은 음식점들이 한산한데 맛집에는 길게 줄이 선 현실을 닮았다. ‘노 웨이 홈’ 흥행이 전하는 암담한 메시지다.
한국 밖이라고 다를까. 미국에서도 ‘노 웨이 홈’의 흥행몰이에 극장 부활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나 비관적인 전망이 짙다. 29일 미국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 이전 영화 관객 중 49%가량이 더 이상 극장에 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들 중 8%는 영영 극장을 찾지 않으리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많은 영화인들은 극장이 옛 전성기를 언젠가 되찾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1895년 영화가 탄생한 이래 극장은 여러 차례 위기를 맞고서도 되살아났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되고는 한다. 극장이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혁신이 필요하다. TV가 등장했을 때 극장은 컬러와 시네마스코프(가로비율이 큰 화면)로 맞섰다. 중심가 대형 단관 극장에서 도시 외곽 멀티플렉스로 상영 환경을 바꾸기도 했다. 여러 채널을 고를 수 있는 TV처럼 여러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도록 해 돌파구를 찾았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동영상이 일상이 된 21세기엔 3D와 아이맥스로 경쟁력을 갖췄다. 극장은 위기 때마다 변신을 택했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지금 위기는 복합적이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극장 가기 꺼려 하는 상황에서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온라인서비스(OTT)가 득세하고 있다.
콘텐츠와 플랫폼은 한 몸이다. 일단 한국 화제작들이 극장을 찾아야 한다. 쉽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들만으로는 극장 살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웅’이나 ‘비상선언’ ‘한산: 용의 출현’ 등 한국 대작들에게 지금 극장가는 사지나 다름없다. 극장의 특단적 대책이 절실하다. 한시적이라도 투자배급사·제작사에 유리하게 수익배분 비율을 바꿔야 한다. 국내 1위 멀티플렉스 체인 CGV는 2020년 한국 시장에서만 영업이익 -2,034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2,000억 원 남짓 적자를 봤다는 말이 나온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극장에게 2022년은 골든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