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동심에 드리운 코로나 그늘, 어려울수록 더 짙었다 [한국일보-한국월드비전 공동조사]

입력
2022.01.08 04:00
<12개국 어린이 100명의 '새해 소원과 꿈'>
34명이 새해 소원으로 "학업 성취" 꼽아 
시리아 등 분쟁국은 "전쟁 없는 세상" 염원 
'코로나 없는 세상' 고대하지만 이유는 달라 
저소득국 "학교 가려고" 선진국 "여행 가고파" 
코로나 시대 국가별 학업·생활 격차 두드러져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어요. 가족들이 안전할 수 있게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이미(9), 캐나다
"캠프 밖 집에서 살면서 금요일에는 정원을 가꾸고 싶습니다. 슬픔을 끝내고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요."
-샐리(12), 시리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동심에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에 아이들의 일상도 송두리째 무너졌다. 위드 코로나 시대, 12개국 아동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아이들은 한마음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했다. 절반 이상이 2022년 새해 소원으로 '코로나로 중단했던 공부를 하고 싶다'(34명), '코로나가 사라진 세상'(18명)을 꼽았다.

각국 어린이들이 겪는 코로나19 여파는 비슷한 듯 달랐다. 낙후 지역 아이들이 학교가 폐쇄돼 배움의 기회를 잃었다는 좌절감을 보일 때, 지구 반대편에선 해외여행길이 막힌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새해엔 공부하고 싶어요" 34%

한국일보와 국제구호단체 한국월드비전은 세계 아동 100명을 상대로 '2022년 세계 어린이들의 새해 소원과 꿈'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내전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에서 조사 대상을 두루 선별하고, △새해 소원 △코로나19 △꿈(장래 희망) △소중한 존재 등 4가지 주제로 질문하고 답을 받았다.

조사 결과 세계 어린이의 새해 소원 1위는 학업(34명)이었다. 응답자 10명 중 3명꼴로 '코로나로 중단했던 공부를 하고 싶다'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빌었다. 이런 경향은 개도국에서 두드러졌다. 방글라데시에선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소원한 아동이 절반 이상이었다. 선진국으로 분류된 한국과 캐나다에서 '학교'나 '학업'을 언급한 응답이 전혀 없었던 것과 대조된다. 두 번째로 많은 새해 소원은 물건(24명)이었다. 세 번째는 관계(19명)였는데, 내전국을 중심으로 '헤어진 가족과 만나고 싶다' '가족과 여행하고 싶다'는 응답이 나왔다.

'받고 싶은 새해 선물'을 묻는 질문에 대부분(77명)이 장난감, 자전거, 망원경 등 특정 물건을 꼽았다. 다만 선호하는 물건은 나라별로 차이가 뚜렷했다.

우간다 난민촌에 거주하는 남수단 아동 10명 전원은 옷, 신발, 담요, 매트리스 등 생활필수품을 선물 받고 싶어 했다. 이 가운데 4명은 책, 교복, 책가방 등 학업 관련 물품을 꼽았다. 반면 한국 아동 10명의 희망 선물은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BTS 굿즈(팬상품)' '132색 색연필' '반려동물' '아이패드' 등 원하는 바도 구체적이었다. '갖고 싶은 물건이 없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지금 많은 걸 누리고 있어서"(허은수), "부모님이 알아서 챙겨주셔서"(정성헌)라는 이유에서였다.

내전국 아이들 소원은 '평화'

시리아, 미얀마 등 내전국 어린이들은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기대를 드러냈다.

7년째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 아동 10명 중 3명은 새해 소원으로 '전쟁 종식'을 꼽았다. 아이샤는 "난민캠프를 나와 고향에 가고 싶다", 하델은 "분쟁이 끝나고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한집에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받고 싶은 새해 선물을 물었을 때도 "가족이 안전한 곳에 정착하는 것" "가족이 항상 내 곁에 있는 것" 등 분쟁으로 흔들린 관계의 회복을 손꼽는 응답(4명)이 많았다. '새해에 누구와 어디에 가보고 싶은가'라는 질문엔 시리아 어린이 모두가 '가족과 함께' 친척집을 방문하거나 여행하고 싶다고 답했다.

분쟁 종식을 염원하는 건 미얀마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군부 쿠데타로 촉발된 내전 탓에 난민촌에 살고 있는 냔은 새해 소원으로 "고향 마을이 평화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묘는 "고향의 폭포에 가보고 싶은데, 군인들이 있어 돌아갈 수 없다"고 아쉬워했다.

코로나 경험, 같고도 달랐다

세계 어린이들은 코로나19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코로나에 대해 알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전원이 그렇다고 답했다. "세계 수만 명의 사람들을 죽게 할 만큼 위험한 바이러스" "걸리지 않으려면 손을 씻고 마스크를 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목숨을 잃었다" 등 구체적 설명도 뒤따랐다.

지난 2년간 전 세계를 숨죽이게 한 코로나19는 아이들 소원마저 바꿨다. 새해 가장 바라는 바로 '코로나가 끝나는 것'을 꼽은 아동(18명)이 학업, 물건, 관계에 이어 네 번째로 많았던 것이다. 한국 아동 절반(5명)도 여기에 포함됐다. '학업'으로 분류된 소원 중 상당수도 '코로나로 닫힌 학교에 되돌아가고 싶다'는 취지인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가 세계 아동의 생활세계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점은 학업 중단이었다. 36명이 코로나로 하지 못하게 된 일 가운데 등교를 첫손에 꼽았고, 26명은 코로나 유행이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일로 '학교에 가고 싶다'고 답했다.

소득이 낮은 국가일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미얀마, 우간다, 잠비아는 전원이 '코로나 기간에 학교에 전혀 가지 못했다'고 답했다. 우간다의 남수단 어린이 10명 중 8명은 코로나가 끝나면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온라인 교육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가 장기간 폐쇄되면서 아이들이 교육적 방임 상태로 지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진국 아동 20명은 같은 질문에 단 1명만 '학교'를 언급해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한국의 경우 코로나로 못 하게 돼 아쉬운 일로 10명 중 8명이 '여행 중단'을 꼽았다. "매년 여름방학마다 가던 워터파크에 못 갔다" "가족끼리 베트남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취소됐다"와 같은 내용이었다.

'코로나 기간에 주로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다수(84명)는 "집에 있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구체적 일상은 격차가 컸다. "집안일을 도왔다"고 답한 33명은 대부분 개도국 아동으로, "부모님이 밭 가시는 일을 도왔다"(우간다), "설거지하고 물을 길어오고 가축을 돌봤다"(케냐), "어머니 일을 도와야 해 공부도 잘 하지 못했다"(방글라데시) 등의 답변이 나왔다. 반면에 한국은 전원이 "온라인 수업에 참여했다"고 답했고, 다른 선진국 어린이들도 비슷했다.

한국월드비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아동들이 코로나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지만, 국가별로 교육 공백과 생활 격차가 커 보인다"며 "아이들이 각기 다른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꿈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국제사회 모두가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어린이의 새해 소원' 조사 개요
한국일보와 국제구호개발 비영리단체 한국월드비전은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세계 12개국 아동 100명을 대상으로 '2022년 세계 어린이들의 새해 소원과 꿈'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트남, 시리아, 알바니아, 영국, 우간다, 일본, 잠비아, 캐나다, 케냐, 한국(이상 가나다순)에 거주하는 8~15세 아동이 참여했다. 우간다에선 특별히 현지 난민캠프에 체류하는 남수단 출신 어린이를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조사 대상국은 개발도상국(8개국)과 선진국(영국 일본 캐나다 한국)으로 나뉘고, 개도국 안에는 내전 또는 분쟁을 겪는 나라 3곳(미얀마 시리아 남수단)이 포함됐다. 참여 인원은 개도국 80명(국가별 10명씩), 선진국 20명(한국 10명+3개국 10명)이다. 조사는 100명 전원을 대면 인터뷰하면서 △새해 소원 △코로나19 △꿈(장래 희망) △소중한 존재를 주제로 13가지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취합된 답변은 정량적·정성적 기법을 병행해 분석했고 국가 유형별로도 비교했다.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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