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옥중 서신서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반드시 모습 드러내"

입력
2021.12.3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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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들과 주고받은 옥중서신 공개
탄핵 과정과 재판의 억울함 호소

"거짓은 잠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세상을 속일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그 모습을 반드시 드러낼 것으로 믿고 있다."

31일 0시 특별사면으로 출소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쓴 옥중 편지의 한 대목이다. 국정농단 사건 재판과 언론 보도에 대해 줄곧 비판적 입장을 밝혀온 그가 탄핵에 대한 부당함과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출간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박 전 대통령 수사검사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지목한 언급은 없었다.

①국정농단 재판: "정해진 결론 위한 요식행위"

이날 출간된 박 전 대통령의 책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는다'의 내용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은 탄핵재판 과정의 부당함을 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재판을 거부한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제가 수많은 수모를 감수하면서도 일주일에 4번씩 감행하는 살인적 재판 일정을 참아낸 것은 사법부가 진실의 편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줄 것이라는 일말의 믿음 때문이었다"며 "하지만 그런 저의 기대와 달리 말이 되지 않는 이유로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을 보고 정해진 결론을 위한 요식행위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재판부가 진행하는 재판에 참석하는 게 의미 없고 구차하다고 생각했다"며 "진실은 훗날 역사의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탄핵 직후인 2017년 3월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은 그해 10월부터 재판을 거부했고 이후 재판은 궐석재판으로 진행됐다.

수사 과정을 비판하기도 했다. "형식적으로 합법적인 모습을 보이더라도 실질적으로 정당성이 없다면 이를 법치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며 국정농단 수사가 과도했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②윤석열: 지지자 언급에 "걸어온 길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안다"

박 전 대통령은 억울함을 거듭 토로했지만, 서신에서 윤 후보를 거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2018년 3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수감을 알리는 지지자의 편지에는 "거짓말로 세상을 속이고 선동한 자들은 그들이 누구라도 언젠가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이 전 대통령의 구속 소식을 전해 듣고 안타까웠다"고 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서울중앙지검 검사장도 윤 후보였다.

한 지지자가 윤 후보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거론한 대목이 눈에 띈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 재직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배우자 정경심씨를 기소한 사실을 언급하고 "윤석열의 이름 석 자는 제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증오의 대상인데, 그런 그가 조국의 처를 기소하다니 무슨 뜻일까"라고 편지에 적었다. 박 전 대통령은 답장에서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땐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가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부의 사람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썼다.


③자유한국당 탄핵 찬성: "민낯 어려울 때 드러나"

자유한국당(옛 국민의힘)에 희망을 저버렸다는 지지자의 편지에 박 전 대통령은 "소위 집토끼는 만만한 대상이 아니라 고마우면서도 두려운 대상"이라며 "언제나 가둬둘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정치인들뿐"이라고 꼬집었다.

탄핵 당시 찬성했던 자유한국당 인사들에 대한 서운함도 드러냈다. "사람들의 민낯은 어려울 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평소에는 자신의 민낯을 화장으로 가리다가 결정적 순간에 그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 사람인가 봅니다"라고 했다.

비판적 언론보도에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 전 대통령은 "언젠가 언론도 확인되지 않은 무책임한 보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날이 올 것"이라며 "때가 되면 진실은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탄핵의 발단이 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7시간의 행적'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그날은 제가 몸이 좋지 않아서 관저에서 관련 보고를 받았다"며 "세월호가 침몰했던 당시 상황과 관련해 저에 대한 해괴한 루머와 악의적 모함들이 있었지만 진실의 힘을 믿었기에 침묵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④문재인 정부: "잘못된 '觀'서 나온 정책은 결과도 옳지 않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띄었다. 한 지지자가 문재인 정부의 주 52시간제 도입과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는 편지를 보내자, 박 전 대통령은 "한 나라의 정책이 잘못되면 대가는 국민들이 치러야 한다"며 "정부의 정책이란 정책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국가관, 역사관, 경제관, 안보관, 복지관 등에서 틀이 정해지는 것이기에 잘못된 '관'에서 나오는 정책은 결과가 옳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정부를 비판하는 지지자의 편지에 "어떤 이유에서도 이번 북한의 만행은 용서받지 못할 반인륜적 범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책은 제1장 '2017년 - 하늘이 무너지던 해', 제2장 '2018년 - 끝없는 기다림', 제3장 '2019년 - 희망을 보았다', 제4장 '2020년 - 그리고, 아직' 등 4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김지현 기자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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