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4학년', '미개봉 학번', '비운의 세대'.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대학에 입학한 20, 21학번들 앞에 으레 붙는 수식어다. 특히 재작년 초 2년제 전문대학에 입학한 20학번의 상실감은 더 크다. 오리엔테이션(OT), 수련회(MT), 축제와 같은 캠퍼스의 낭만 한 번 즐겨 보지 못한 채 졸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에 초점을 둔 전문대 교육 과정은 실기나 현장 수업이 중요한데, 실습할 기업이나 기관들이 죄다 문을 걸어 잠근 탓에 이들은 학습 결손과 취업 기회 상실이라는 이중고까지 떠안았다.
그러나 20학번 모두가 현실을 탓하며 무력감만 곱씹고 있지는 않다.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 학생들도 적지 않다. 세밑 한파가 몰아친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만난 인하공업전문대 20학번 김민서(항공운항과), 김태린(비서과), 황정아(화공환경과)씨가 그랬다. 2001년생 동갑내기인 셋은 "코로나19로 힘든 점이 많았지만 얻은 것도, 배운 것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자신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시선에 대해서도 "우리 정말 잘 버티지 않았느냐"고 반문한 뒤 "'코로나 상실 학번'이 아닌 '코로나 극복 학번'이라 불러 달라"고 입을 모았다.
"와, 얼마 만이야. 이제 제법 사회인 티가 나는데?"
인터뷰 장소에 가장 먼저 온 김민서씨가 뒤이어 도착한 김태린, 황정아씨를 반겼다. 김태린, 황정아씨가 지난해 8월 취업한 뒤 다같이 모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3명은 전공은 각자 다르지만 학교 홍보대사 활동을 하며 친해졌다.
인하공전은 매년 5월 신입생을 대상으로 홍보대사를 선발한다. 15명 안팎을 뽑는 데 100~150명이 몰려 경쟁률이 늘 10대 1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황정아씨는 홍보대사에 지원한 이유에 대해 "학교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고 했다. 다른 두 친구도 "홍보대사 덕에 학교에 정을 붙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거들었다.
2020년 3월, 새내기가 된 이들을 처음 맞이한 건 선배도 교수도 아닌 '카카오톡'이었다. 동기생 한 명이 단체 채팅방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서로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아이디를 교환하며 첫 인사를 나눴다.
수업도 비대면으로 시작했다. 지금이야 원격수업 틀이 갖춰졌지만 재작년 초에는 모든 게 엉성했다. 원격수업 도중 교수의 어린 자녀나 반려동물이 갑자기 등장해 수업이 중단되는 에피소드를 이들도 경험했다. 캠퍼스의 잔디는 2학기 때나 처음 밟아 볼 수 있었다. 김민서씨는 "대학 캠퍼스는 활기차고 생기가 넘치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본 학교는 적막했다"고 회상했다.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조를 짜서 최소 인원만 번갈아 등교했기 때문이다.
'동기 사랑은 나라 사랑'이라는 말도 있는데 동기 얼굴은 입학 후 반 년이 훨씬 지나서야 처음 봤다. "처음엔 서먹했지만 그동안 SNS로 꾸준히 소식을 주고받은 덕에 금세 친해졌다"고 이들은 기억했다. 수십 명이 모인 호프집에서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하고 2, 3차로 이어지는 술자리 속에서 우정을 싹틔웠던 세대는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이들에겐 SNS로 교감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인하공전에서는 매년 5월 '원점 체육대회'가 열린다. '원점'이란 이름이 붙은 건 교내에 우리나라 국토의 높이 기준이 되는 '수준원점'이라는 건축물이 있어서다. 인천 앞바다의 밀물, 썰물의 차이를 측정해 1963년 육지의 고정점을 만든 것에서 유래했다. 원점 체육대회는 24개 과가 모두 참여해 줄다리기, 팔씨름, 풋살 등으로 대항전을 펼치는 일종의 '인하공전 올림픽'인데, 열기가 뜨겁기로 유명하다.
이들은 체육대회에 한 번도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김태린씨는 "과 선배들이 체육대회 당일 맞춰 입은 분홍색 단체 티셔츠를 고등학생 때 보고는 나도 꼭 입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결국 못 입어 보고 졸업한다"며 씁쓸해했다. 김민서씨도 "항공운항과가 매년 응원상을 받았다고 들어 잔뜩 기대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민서씨는 작년 봄 거리두기가 잠깐 풀렸을 때 짬을 내 몇몇 친구들과 얇은 주머니로 든든한 한 끼를 채울 수 있는 '학식(학교식당)'도 가 보고, 학교 내 호수인 '인경호' 앞에서 가볍게 맥주도 한잔 했다. 정상적인 캠퍼스 생활을 했다면 새로울 게 없는 일상이겠지만 그에겐 특별했다. "소소한 행복을 느껴 좋았지만, 이런 것에 감동까지 받아야 하나 싶어 잠시 울컥했다"고 그는 털어놨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의 교육기관이 혼란에 빠졌지만 전문대는 여파가 더 컸다. 전문대 교육 과정은 '현장성'이 핵심인데 체험, 실험, 실습이 줄줄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전공 특성상 실험이 커리큘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황정아씨는 "대면 수업이 시작된 뒤에도 학교에 격주로 가는 바람에 실험 횟수는 선배들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고 했다. 김민서씨도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직전 모의면접은 바로 이어질 항공사 공채 대비용인데, 우리에게는 남의 세상 이야기였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가 2년째 신입 직원을 아예 뽑지 않고 있어 취업 시도조차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녹록지 않은 주변 환경을 자기 계발의 기회로 삼았다. 김민서씨는 실습 횟수가 뚝 떨어진 대신 이론을 파고들었다. 그는 "몇 번 기회가 없는 실습에서 실수하면 안 되니 더욱 이론에 집중하게 됐다"며 "이론으로 '중무장'한 덕분에 자신감이 부쩍 커졌다"고 했다. 김태린씨는 모스(MOS), 비서자격증 1·2급, 워드프로세서, 컴퓨터활용능력 등 자격증 공부에 매달렸다. 그는 "'방콕'은 자격증 따기 아주 좋은 환경"이라고 웃었다.
황정아씨도 전공과 큰 관련 없는 기계공학 분야 자격증을 두 개나 취득했다. 그는 "마음이 불안할 때 낯선 분야에 몰두하니 도전 의식이 생겼다"며 "입학할 때부터 2년 뒤 취업을 꿈꿨고,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에 코로나19 여파로 대졸 취업률이 역대 최저치를 밑도는 상황에서도 취업 문을 뚫었다. 김태린씨는 지난해 여름 대형 건설사 임원실 비서로 취업한 뒤 3개월 후 대기업 계열 홈쇼핑사 정규직으로 이직했다. 황정아씨 역시 지난해 8월 첨단 의료기기 업체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캠퍼스 라이프를 앗아간 코로나19는 학사모, 학위복을 착용하고 가족, 친구들과 사진 찍을 기회마저 주지 않았다. 졸업식이 취소된 것이다. 개인 학사모 촬영으로 그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허전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들은 새해에 대한 걱정보다 희망의 메시지를 앞세웠다. 김민서씨는 "언젠가 항공사 공채 시장이 열리면 다른 때보다 엄청난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며 "그 때까지 나를 더 큰 '그릇'으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채용 기회를 기다리며 한국사와 중국어 공부에 매진할 생각이다.
의료기기의 세포 독성을 평가하는 연구팀에 있는 황정아씨는 "올해는 내가 직접 개발하는 연구 과제를 꼭 맡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나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김태린씨는 "새해엔 플로리스트 자격증에 도전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