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는 기예와 구도의 특성이 다분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중음악은 좀 다르다. 작곡가가 어릴 때 쓴 곡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특별한 노래로 남는 경우가 여럿 있다. 특히 자신이 만든 곡을 직접 부르는 싱어송 라이터라면 더욱 그렇다. 사춘기 이후부터 20대 초반까지는 연애를 하든 이별을 하든, 영화 하나를 보고 노래 하나를 들어도 마치 심장에 앰프라도 꽂아둔 듯 감정의 파고가 증폭된다. 받아들이는 영감의 정보량이 압도적인 만큼 순도 높은 결과물이 나와서는 아닐까, 생각한다. 문제는 어휘다. 감성이 절정에 오른 시기에 그 감성을 표현해낼 음악적 어휘를 익혀 두었느냐가 관건이다. 아무리 거대한 첫사랑의 영감이 찾아왔다 해도 G,C,D 스리 코드만 익힌 초보 작곡가의 표현에는 한계가 있다. 아직 어린 감성의 천재가 운 좋게 음악의 어휘마저 일찍 습득해 젊음의 일상을 훑고 지나가는 영감을 완벽하게 포착해내는 경우가 간혹 있다. ‘김현철 Vol.1’과 같은 마스터피스는 그럴 때 탄생한다.
김현철 1집 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노래 하나를 꼽자면 단연코 ‘동네’다. 그는 오래 살던 동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이 곡을 썼다. “가끔씩 아무 일도 아닌데 짜증이 날 때 생각했다”는 그의 동네, “거리를 걸을 때마다 내가 믿어가야만 하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그의 동네, “잊혀질 수 없는 한 소녀를 처음 만났고, 둘이 아무 말도 없이 지치는 줄도 모르고 온종일 돌아 다니던” 그 동네는 먼 곳에 있지 않다. 한남 대교 남단에 딱 붙어 있는 압구정이 바로 그 동네다.
김현철씨가 한 방송에 나와 밝힌 바에 따르면, 광진구로 이사 간 고등학교 때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살던 중학생 시절을 회상하며 쓴 곡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동네’를 다시 들으니 이런 높은 수준의 음악적 어휘가 고등학생의 폭발적 감성과 만나는 일이 얼마나 희귀한지를 깨달으며 새삼 놀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게 되는 건 그가 이 노래에서 기억하는 동네의 모습이다. 가사의 정조만 보면 마치 정겨운 골목길에 단독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1980년대의 흔한 동네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선택한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압구정이 있다. 시인이었고 지금은 영화 감독으로 더 유명한 유하는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강남 1970' 소위 ‘거리 3부작’을 통해 강남과 그 일대가 띠는 분위기의 역사를 파고들었다. 유하의 가장 유명한 시집은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이며, 이 시집의 정조를 고스란히 품은 동명의 영화로 감독에 입봉했다. 그는 아마 한국에서 강남에 관해 가장 많은 작품을 극화한 스토리텔러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압구정에 대한 그의 극명한 마음을 효율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작품은 시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2’이다. 이 시에서 그가 그리는 압구정은 ‘피눈물 나는 하드 트레이닝’을 거쳐 ‘실버스타 스탤론이나 리차드 기어’의 몸매를 만들고, 최신 유행하는 패션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미장원에서 곱게 자른 머리카락을 ‘강력 무스를 이용한 소방차나 맥가이버 헤어 스타일’로 가다듬고 나서 ‘스쿠프나 액셀 GLSi’를 몰고 가야 하는 곳이다. 이 시는 김현철의 첫 앨범이 나온 후 2년이 지난 1991년에 발표됐다.
당시 언론이 압구정동을 보는 눈길도 비슷했다. 1990년에 시사저널에서 낸 ‘부의 명문 압구정동 그늘 없는 아파트촌’이라는 기사를 보면, 압구정동의 시대를 연 현대아파트는 현대건설이 꼼수를 부려가며 한강변에 활처럼 휜 멋진 경관의 땅에 편법으로 허가 사항보다 넓은 매립지를 조성하고 이 땅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지은 후 국세청 관세청 치안본부 등의 고위 공무원, 판·검사, 국회의원, 변호사, 언론인 등 힘 있는 사람들에게 특혜 분양해 인위적으로 권력 계층을 형성한 주거단지다. 참고로 1963년생인 유하는 전라북도 고창 출생으로, 1974년에 강남으로 이사했다.
전라북도에서 올라와 서울 서초동에 살던 그에게 ‘강남’이란 공간이 준 경험에 대해 그는 ‘강남 1970’이 개봉할 당시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남 개발 붐이 일면서 신식 양옥집과 황토색 황금물결, 다 쓰러져가는 집들이 공존했고,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온 학교 또한 이주민과 원주민의 자식들이 책상을 나란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원주민이었던 친구들이 더 남쪽으로 밀려나 자퇴 또는 퇴학의 형태로 학교를 떠났다.” ‘남쪽’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간다. 그에게 강남구의 최남단인 개포동과 양재동은 원주민들이 밀려나 가는 곳이었던 반면 최북단인 압구정은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었다. 김현철이 ‘나의 모든 잘못을 다 감싸줬다’며 감사함을 표하는 상냥한 동네가 어째서 시인 유하에겐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었을까?
나의 질문이 틀렸다. 사람마다 다른 압구정을 품고 살기 때문이다. 압구정 현대고등학교 후문에서 20년 넘게 레코드가게를 운영해온 전 압구정 구현대아파트 거주자 전홍필씨의 압구정은 배밭이다. 유하 감독과 동갑내기에 상문중학교 동문이기도 한 그는 “압구정 아파트 단지 건너편 신사동 쪽은 그때는 온통 배밭이었어”라며 라테 스토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배밭에 배꽃이 하얗게 피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데, 참 기분이 좋았지.” 그는 입버릇처럼 내게 “압구정 재개발되기 전에 압구정지에 꼭 가봐”라고 말하곤 한다. 20대인 1980년부터 압구정동에 거주하며 개발의 역사를 목도한 청담동 카사델비노의 은광표 대표의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의 압구정은 오히려 조금 심심한 곳이다. “지금은 압구정동 특유의 문화랄 게 뭐가 있을까요. 상업지구지만 대기업이 아닌 패션과 관련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포토 스튜디오가 많고, 잡지사 에디터들이 많다는 특징이 있기야 하겠지만요. 결국 압구정동이 특별했던 건 1990년대 X세대 오렌지족들이 있었을 때가 아니었나 싶어요.”
고등학교 때 대전에서 서울로 유학 온 내 친구에게 압구정은 맥도날드다. “압구정을 얘기하면서 맥도날드를 빼놓으면 안 되지”라며 그는 “지금은 없지만, 압구정 맥도널드는 전국 1호점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거기서 만났어. 어마어마했지.”라고 말했다. ‘웬디스, 스카이락, 티지아이에프가 있었던’ 압구정은 그에게는 미국의 문물이 가장 앞서 들어오는 곳이었다. 또 그에게 압구정은 정보학원이기도 하다. “그때는 사교육 하면 대치동보다 압구정이어서, 대원외고에 입학하고 압구정 정보학원엘 다녔어. 그때 놀란 게 있다면, 학원에서 애들이 밥 먹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삼원가든에서 갈비탕을 시켜먹더라.”
한편 개포동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의 반려인 강보라 작가에게 압구정은 가장 가까운 ‘도심’이었고, 그 도심에는 정우성이 있었다. “카페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정우성씨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어. 우리도 읍내 나가는 것처럼 차려 입고 갔거든.” 유하 감독은 “모든 창작자에게는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맞닥뜨린 ‘핵체험’이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는 강남이 공간과 시간, 이중의 의미에서 그런 원체험에 해당한다”고 말했으나, 이 말은 창작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누구나 압구정에 대한 원체험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셈이다. 관찰자의 시점에서 보면, 개발과 등락의 곡선 어느 시점에서 압구정을 마주쳤는지가 평생의 인상을 좌우한다.
요새 나의 압구정은 타임머신이다. 가끔 산책을 하고 싶을 때면 회사에서 멀지 않은 신사시장에 떡볶이를 먹으러 간다. 그곳에는 여기저기가 깨지고 울퉁불퉁하게 튀어 나와 있는 보도 블록이 있고,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는 보기 힘든 노목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숲이 있고, 간혹 옥외에 천막을 친 간이 시장이 서고, 변신 합체 로봇 박스들이 사람 키보다 높게, 그러나 매우 정갈하게 쌓여 진열된 올드 스쿨 문방구가 있다. 최고의 마법은 시장 안에 들어설 때 펼쳐진다. 이미 사라진 1980년대 쇼핑센터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무리 뛰어난 미술감독이라도 도저히 재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형태는 일상의 시간이 쌓이지 않고는 만들어질 수 없는 광경이다.
‘대한민국 부동산 1번지’라는 신문 기사를 읽은 날 신사시장 정육점 집 간판 아래서 ‘OO반찬 동치미 개시’라고 유성 매직으로 갈겨 쓴 글귀를 찾는다. 모퉁이를 돌아 있는 서점에는 아직도 ‘2022년 가계부 판매 시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압구정 앞에 있는 신사동 상업지구를 보통은 압구정이라 묶어 말한다. 그 압구정만큼 매력적인 상업 지구를 가진 곳은 흔하지 않다. 한편 압구정만큼 옛 모습 그대로의 삶의 형태를 가진 동네도 이제는 흔하지 않다. 가로수길을 가로 질러 신사시장까지 걷는 일이 단편 소설을 읽는 일처럼 즐거운 이유다. 이런 나의 나이브한 감상을 늘어놓자, 은광표 대표는 “그런데 그 시장에 있는 상품들을 한 번 보세요. 현대백화점보다 더 상품일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아무렇게나 막 펼쳐 놓은 상에 동해에서 막 올라온 거대한 대구 너덧 마리가 여느 시장의 동태처럼 진열되어 있던 신사시장 수산집의 풍경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