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에게 꿈의 휴양 도시로 알려진 곳이 미국 동남부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다. 놀랍게도, 햇빛이 쨍쨍한 이 도시는 물에 잠기는 중이다. 애초 바다 습지를 메워서 만든 이 도시가 '지구 가열(global heating)’의 효과로 나타난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다.
침수 피해를 겪은 적이 없는 독자라면 '물에 잠기는 도시'를 낭만적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물에 잠식당하는 마이애미의 피해는 가난한 동네 서민에게 먼저 찾아 왔다. 상대적으로 지면도 낮고, 배수 시설도 엉망인 마이애미 동네는 만조만 되면 거리에 물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물이 몰려온다'(북트리거 발행)의 저자 제프 구델은 이렇게 물이 찬 마이애미 거리를 장화도 없이 걸었다. 그는 나중에야 자신의 발다리에 별다른 상처가 없었던 사실에 안도했다. 과학자가 알려준 결과를 보니, 그날 자신이 걸었던 거리의 물은 기준치보다 무려 35배나 더러운 '똥물'이었다.
과학자 공동체와 보통 시민 사이에 그 심각성을 인식하는 데에 가장 괴리가 있는 분야가 바로 지구 가열의 영향이다. 예를 들어 '네이처'는 '올해의 과학계 10대 뉴스'(2021년 12월 14일)로 지난 8월 9일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여섯 번째 기후 변화 보고서의 음울한 내용을 지적했다.
66개국 과학자 234명이 기후 과학 논문과 자료 1만4,000여 건을 종합한 이 보고서는 2013년 다섯 번째에 이어서 8년 만에 나온 것이라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바이러스와 2년째 싸우면서 지칠 대로 지친 시민의 대다수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수많은 기사 가운데 하나로 스쳐 보냈다. 어쩌면 우리 삶을 뒤흔들 가장 중요한 소식이었는데.
보고서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지구 가열이 초래하는 기후 위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1.5도'라는 숫자는 익숙할 테다. 산업화 이전,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 본격적으로 지구를 데우는 온실 기체를 내놓기 전인 19세기 중후반 지구 평균 표면 온도(약 13.8도)를 기준으로 그 상승 폭을 1.5도가 넘지 않게 막아보자는 목표치다.
이번 보고서는 2011~2020년까지 지구가 이미 1.09도 데워졌다는 사실을 짚는다. 1.5도 가운데 1.09도를 써버렸으니 목표치 가운데 고작 0.41도밖에 남지 않았다(1.5-1.09=0.41). 지구가 데워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그 효과도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걱정스러운 대목이 여럿이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물이 몰려온다'가 집요하게 추적하는 해수면 상승이다.
2010년대 초만 하더라도 비교적 낙관적인 과학자 공동체가 예측한 21세기 말까지의 해수면 상승 폭은 높아야 60㎝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최소한 1m, 아니 더 비관적인 과학자는 2m 이상이 상승하는 시나리오를 언급한다. 2m 이상 상승하면 부산 인천 뉴욕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도쿄 오사카 상하이 홍콩 바르셀로나 암스테르담 등의 항구 도시가 운이 좋아야 이탈리아 베네치아처럼 살아남는다.
제프 구델은 바로 그렇게 세상이 물에 잠기는 일이 어떻게 진행 중인지 마이애미부터 알래스카, 베네치아에서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라고스, 태평양 섬나라 마셜 제도에서 뉴욕 맨해튼까지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추적한다. 2017년에 원서가 나왔지만 기후 위기와 해수면 상승을 다룬 책 가운데 최고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대목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의 현직 시절 단독 인터뷰를 포함한 전 세계 정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자의 반응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해수면 상승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 해변에 건물을 짓는 마이애미의 부동산 재벌에게 이 문제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때쯤이면 저는 이미 죽은 다음일 텐데,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별 다섯 개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