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 멀어지나… 정의용 "올림픽 계기 남북관계 개선 기대 어렵다"

입력
2021.12.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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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고위 당국자, 남북관계 비관 입장 처음
"종전선언 北 반응 아직, 한미 간 문안은 합의"
中엔 '관계 개선', 日엔 '과거사 유감' 온도 차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으려던 기대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공개석상에서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에 비관적 입장을 내비친 건 처음이다. 베이징올림픽을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의 마지막 기회로 염두에 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 실현이 녹록지 않음을 정부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 종전선언 합의했지만 험로투성이

정 장관은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남북 또는 남북중 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질문에 주변 안보 환경을 이유로 어려움을 토로했다. 베이징올림픽을 겨냥한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 동참 압박 등 한반도 정세를 선순환 구도로 돌려 놓으려는 정부 계획에 악재가 돌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접적 언급은 없었지만 정 장관의 발언을 확장하면 문 대통령의 임기 말 역점 과제인 종전선언 추진도 난항을 겪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는 “모든 계기를 이용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겠다”며 올림픽이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종전선언 추진 동력은 상당히 떨어진 상황이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마지막 유산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 입장에서 ‘종전선언이 어려워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 “냉각된 한반도 정세를 풀 마땅한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종전선언 핵심 당사자인 북한의 호응이 전무한 것이 뼈아프다. 정 장관은 ‘중국이 북한의 종전선언 관련 반응을 전달한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 “없다”고 시인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미가 종전선언 문안 작업을 끝내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버팀목은 마련됐다는 점이다. 정 장관은 “한미가 종전선언 문안에 사실상 합의한 상태”라며 양국의 공감대는 굳건하다는 점을 부각했다. 그는 최근 영국 리버풀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담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만나 미국의 지지를 확인했다고 부연했다.

中에는 우호, 日에는 단호

한중ㆍ한일관계 언급에서는 온도차가 났다. 중국은 개선이 필요하지만 대체로 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평했다. 중국이 ‘한한령(限韓令ㆍ한류 제한령)’을 아직 해제하지 않은 문제에 정 장관은 “최근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흡족하지 않다”면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 외부 변수를 장애물로 꼽았다. 국제사회가 지탄하는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 문제 역시 “북한ㆍ중국과는 특수한 관계라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며 거리를 뒀다. 베이징올림픽 참가 여부에도 “외교적 보이콧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 장관은 또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자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우리 입장을 굉장히 분명하게 미중 양쪽에 전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며 한국의 ‘전략적 모호’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반면 일본에 대해선 최근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도에 유감을 표하는 등 과거사 문제를 중심으로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일례로 한일위안부합의 무효화와 관련한 현 정부의 ‘원죄’ 지적에 “위안부 문제에 원죄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반문한 뒤 “위안부는 사상 유례없는 전시 여성의 인권유린 사례”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합의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정 장관은 “피해를 준 당사국(일본)도 우리와 같은 자세로 위안부 문제에 임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의 태도 전환을 촉구했다.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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