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겟 백'이 보여주는 밴드 해체의 진짜 이유 [다큐로 보는 세상]

입력
2022.01.04 11:00
22일 디즈니플러스 통해 공개된 8시간짜리 다큐멘터리 '비틀즈: 겟 백'

편집자주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반경 너머의 세상을 보여줍니다. 직접 도달하기 어려운 곳을 찾아가 보여주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을 보다 넓고 깊게 들여다 봅니다.


폴 매카트니: 조지(해리슨)는 어디래?

존 레넌: 뭐, 여기 오고 싶지 않대.

매카트니: '집에서 할 거야'라던데.

레넌: 집에 갈 거래. 나도 그러고 싶어. 다른 사람과 부딪히느니 집에서 스튜디오에 들어가 혼자 녹음하는 게 낫지. 조지가 그랬잖아. 더 이상 만족감이 없다고. 억지로 타협하며 지내야 하니 그런 거야. (조지의) 상처가 곪아터지고 있는데 우린 내버려두고 있었어. 어젠 상처가 더 심해지는데 우린 붕대 한 조각 주지 않았잖아.

매카트니: 내가 말하려던 게 그거야. 전엔 '내가 원하는 대로 연주해 줘'라고 했지만, 지난주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연주해'라고 말하려 했어.

레넌: 내 말은, 이번엔 우리 둘 다 조지에게 그랬다는 거야.

매카트니: 우리 넷은 각자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문제야.

레넌: 넌 두려워 하고 있어. 조지가 네가 원하는 대로 연주하지 않을까 봐 말야. 넌 나한테도 그래. 난 너한테 그렇지 않잖아.

매카트니: 그게 문제라고. 그때 그 자리에서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레넌: 내가 지난 곡들 녹음한 것에 대해 유일하게 후회하는 건, 내키지 않았는데도 네가 시키는 대로 연주했다는 거야. (...) 리 모두 네 편곡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할 때가 있었어. 어차피 네가 다 거부할 테니까.

매카트니: 중요한 건 이거야. 넌 언제나 보스였잖아. 난 늘 2인자였고.

레넌: 늘 그랬던 건 아냐.

매카트니: 아니, 늘 그랬어. 우리가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거야.


1969년 1월 13일 월요일. 훗날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이 되는 ‘렛 잇 비(Let It Be)’에 담길 신곡들 준비 도중 밴드의 막내이자 가장 조용한 멤버인 조지 해리슨이 탈퇴를 선언하고 떠나버리자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는 해리슨을 설득하러 만난 뒤 단 둘이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비틀스가 공식 해체를 선언하기 1년 전의 일이었는데 둘은 자신들의 대화가 녹음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당시 비틀스의 신곡 준비 과정과 콘서트 겸 TV쇼 프로젝트를 다큐멘터리로 찍고 있던 촬영팀이 몰래 숨겨둔 마이크가 이를 포착했다. 52년 만에 공개된 두 사람의 대화는 당시 비틀스 내부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1969년 촬영·녹음된 자료를 '반지의 제왕' 피터 잭슨 감독이 편집

지난달 22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국내 공개된 다큐멘터리 ‘비틀즈: 겟 백(The Beatles: Get Back)’은 비틀스 팬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귀한 작품이다. 신화처럼 활자로만 전해 내려오던 비틀스 해체 직전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유명한 피터 잭슨 감독이 창고에 묵혀 있던 60여 시간의 영상, 150여 시간의 음성 녹음을 4년간 편집해 총 7시간 48분짜리 3부작 TV시리즈로 완성한 작품이다.

비틀스 멤버들이 세운 회사인 애플은 당초 2시간 30분 정도 분량의 극장용 다큐멘터 영화를 요청했으나, 비틀스 마니아인 잭슨 감독은 18시간짜리 초안을 만든 뒤 6시간으로 줄인 버전을 내놓았다. “로큰롤 역사에 죄를 짓는 것 같아 더 이상 줄일 수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다행히 비틀스의 두 생존 멤버인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 세상을 떠난 레넌과 해리슨의 가족은 모두 잭슨의 편집본을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원본 영상과 오디오는 '렛 잇 비' 앨범의 토대가 된 '겟 백’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기록한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1969년 1월 30일 열린 전설의 '옥상 콘서트' 준비 과정이다. 콘서트 다큐멘터리이지만 한편으론 유쾌하고도 쓸쓸한 멜로 영화이기도 하다. 결별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갈등을 겪지만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연인에 대한 영화 말이다.

비틀스 해체 원인 제공자는 폴 매카트니? 오노 요코?

1966년 이후 콘서트를 중단한 비틀스의 네 멤버는 1968년 히트곡 ‘헤이 쥬드(Hey Jude)’ 홍보 영상을 공연 형식으로 촬영하며 모처럼 스튜디오 밴드에서 벗어나 '로큰롤 밴드'의 활기를 느꼈다. 네 멤버가 사분오열된 상태로 앨범 '더 비틀스(The Beatles, 일명 화이트 앨범)'를 녹음한 직후여서였을까. 비틀스는 앨범 분량의 신곡을 만들어 공연을 열고 이를 TV쇼로 내보내자는 데 뜻을 모았다. 하지만 '겟 백' 프로젝트를 위해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한 달도 안 됐다.

신곡 준비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찍기 시작한 1969년 1월, 비틀스는 사실 붕괴 직전의 상태였다. 이들을 스타로 키운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1967년 사망한 뒤 구심점을 잃은 게 컸다. 레넌은 녹음 현장에 매번 연인 오노 요코를 대동해 다른 멤버들과 부딪혔다. 레넌이 개인 작업과 오노에게 푹 빠져 있던 사이 매카트니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새로운 불협화음이 생겨났다. 레넌과 매카트니에 가려 빛을 못 보던 해리슨은 “10년치 앨범에 쓸 만한 선율”을 만들어 놓을 만큼 창작력이 정점에 이르고 있었지만 그만큼 불만도 컸다. 중재자 역할을 하던 링고 스타가 '화이트 앨범' 녹음 당시 팀 내 불화를 못 참고 탈퇴했다가 2주 만에 돌아온 일도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배경에서 갑작스레 결정된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네 멤버의 모습을 거의 실시간으로 포착한다. 8시간 가까운 영상은 카메라를 의식한 듯 속내를 숨긴 채 리허설에 임하는 네 멤버 사이에 감도는 미묘한 기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새로운 리더로 떠오른 매카트니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원래 리더였던 레넌은 마음이 떠난 듯 늘 지각을 하고 시종일관 괴이한 장난을 친다. 앨범 녹음이나 다큐멘터리 제작에 별 관련도 없는데 거의 모든 순간 레넌 옆을 지키고 있는 오노의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탈퇴 소동의 주인공 해리슨은 '각자 활동하는 것만이 비틀스가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듯 무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한다. 밴드 해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알려진 새 매니저(레넌은 롤링 스톤스의 매니저였던 앨런 클라인을 새 매니저로 추천했고 매카트니는 당시 여자친구였던 린다의 아버지이자 변호사였던 리 이스트먼을 내세웠다) 선임 문제도 본격적으로 불거진다.

매카트니와 레넌이 복화술처럼 이를 다물고 '투 오브 어스(Two of Us)'를 노래하는 코믹한 장면, 매카트니가 엘비스 프레슬리 성대모사를 하는 모습 등 해체를 앞둔 밴드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유쾌한 순간들 또한 적지 않다. 잭슨 감독은 애플의 제안을 받고 "비틀스 해체를 다룬 영화는 절대 만들고 싶지 않아 우선 영상들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는데 뜻밖에 너무 재미있고 즐거워 수락했다"고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해체 직전 비틀스에 대한 편견을 깰 뿐만 아니라 밴드 해체 원인이 단순히 ‘매카트니의 독재’ ‘오노 요코에 빠진 레넌’이 아님을 상세히 증명한다.

실제로 레넌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오노와 갈등을 겪는 장면이나 오노를 불편하게 여기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매카트니가 괴성을 지르며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오노, 레넌과 함께 즐겁게 즉흥 연주를 하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매카트니가 레넌과 오노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2부 도입부에 있는 내용으로 레넌과 매카트니, 스타가 해리슨을 설득하러 다녀온 뒤 레넌과 해리슨이 공석인 상태에서 매카트니, 린다, 스타, 공동 프로듀서 글린 존스,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린지 호그('헤이 주드' 홍보 영상도 그가 연출) 등이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매카트니: (레넌이) 요코와 비틀스 사이에서 골라야 한다면 요코겠죠.

호그: 지난 번 이야기할 때 존은 비틀스로 남고 싶다던데. 요코가 나타나기 전에 존과 함께 곡을 더 많이 썼나요?

매카트니: 그럼요. (투어 다니며) 같이 연주할 때는 같이 살았으니까요. 같은 호텔 방에 머물며. 종일 그렇게 함께 있으면 뭐든 나오게 마련이죠. 문제는 '함께 있는 것'이에요. 요코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냥 둘이 가까이 있고 싶은 거죠. 저나 누구나 '그렇게는 안 돼'라고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작업환경이 좋지 않다고 파업하는 것과 같죠. 그럼 안 되잖아요. 이 커플이 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존은 늘 그래요. '정신 차리고 요코를 데려 오지 마.' 이렇게 말할 순 없죠. 그의 결정이니까. 우리 중 누구도 그걸 방해할 자격은 없어요.

호그: 그래도 어느 정도 타협은 해야죠.

매카트니: 그들은 타협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려면 제가 먼저 타협해야겠죠. 그러면 그들도 타협할 거에요. 하지만 우습게도 아무도 타협하지 않아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중심을 잡아줄 아버지 같은 존재일 겁니다. '9시야. 여자친구는 집에 두고 와'라고 말하는.

다큐 본 폴 매카트니 "비틀스 해체에 대한 생각 바뀌었다"

비틀스의 창작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를 지켜보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다. 단 3주 만에 ‘렛 잇 비’ 앨범에 실릴 모든 곡은 물론 이들이 마지막으로 녹음한 앨범이자 '렛 잇 비'보다 먼저 발매된 ‘애비 로드(Abbey Road)’ 수록곡의 절반 가량, 훗날 각자의 솔로로 발표하게 되는 곡들까지 쏟아내는 경이로운 창작력엔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팝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들이 한 곡 한 곡 조금씩 완성되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겐 즐거운 일이다. 물론 같은 곡들을 수십 차례 지겹도록 듣고 또 들어야 하는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다큐멘터리의 절정은 비틀스 최후의 콘서트이기도 한 전설의 옥상 콘서트다. 성사 자체가 불투명하던 공연에서 비틀스 멤버들은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다. 장난꾸러기 레넌도 시종일관 진지하게 연주한다. 공연 전날까지도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지 불안해 하지만 네 사람은 완벽에 가까운 호흡을 보여준다. 이듬해인 1970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렛 잇 비’에 먼저 담겼는데, 이번엔 전혀 다른 맥락 속의 공연이어서 새롭게 다가온다.

‘비틀스: 겟백’에 대한 평단과 대중의 평가는 이례적으로 극찬 일색이다. 4일 현재 영화 데이터베이스 전문 사이트 IMDB 관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9.2점,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선 평론가, 관객 각각 94%, 93%의 신선도 지수를 나타내고 있다. 매카트니와 스타도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보여줬다"며 반색했다.

톱스타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소문과 억측을 낳고 사실과 소문, 억측이 뒤섞여 실제와 다른 '가짜 사실'을 만들기도 한다. 폴 매카트니 역시 그랬던 모양이다. 오랫동안 비틀스 해체에 대해 죄책감을 가져왔다는 그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비틀스 해체의 어두운 면을 받아들이면서 '내 잘못이야'라고 생각하곤 했어요. 나 때문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면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한 편으론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증명해줄 만한 게 없었어요. 이 다큐멘터리는 제 생각이 맞았다는 걸 강하게 재확인해줬어요. 비틀스에 대한 내 기억들이 주로 즐거운 것들이었다는 걸 보여줬으니까요."

호그 감독의 다큐멘터리 ‘렛 잇 비’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밴드를 묘사했다며 못마땅해 했던 스타도 ‘비틀즈: 겟 백’을 걸작이라고 치켜세우며 “우리 사이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지만 우린 늘 즐거웠고 이번 다큐멘터리는 그걸 잘 보여줬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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