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에서 배우는 대선을 맞이하는 자세

입력
2021.12.28 20:00
25면

'수정'은 난자와 정자가 하나로 합쳐져 수정체가 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세포가 서로 유합되는 것이 아니고, 정자의 핵만 난자 속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수정은 난자 전체와 정자의 핵이 합쳐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핵에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전자를 반씩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핵 외에 세포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에도 유전자가 있는데, 이는 온전히 난자로부터 받은 것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곳으로 흔히 발전소에 비유한다. 수많은 정자가 난자에 접근할 때 정자는 꼬리를 움직여 헤엄치며 이동한다. 정자 꼬리를 움직이는 에너지 역시 미토콘드리아에서 만든 것이다. 만일 정자가 난자 곁으로 갈 수 없다면 수정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되니까 미토콘드리아는 수정에 있어서 가장 실질적으로 이바지한 일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선을 향한 후보자들의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대선의 과정을 보면서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를 생식 현상과 비교하여 보았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정해진 수의 국회의원을 뽑는데, 출마한 후보자 전체에서 표를 많이 받은 순으로 당선시키는 것이 아니다. 비례대표를 빼고 이야기하면, 각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자 중 가장 지지율이 높은 한 명을 선출한다. 그러니까 당선자 중에는 다른 지역에서 낙선한 후보보다 표를 덜 받은 이도 있을 수 있다. 국회의원 선거는 미리 정해진 수의 국회의원 집단을 어떤 조합으로 구성하는가와 비슷하므로 난자나 정자를 만드는 감수 분열에서 여러 쌍의 상동염색체 중 하나씩을 골라 반수체의 염색체 조합을 만드는 과정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모든 정자나 난자가 서로 다른 염색체 조합을 가지게 된다. 국회의원 선거 결과 선출된 국회의원 집단은 이전의 국회의원과는 수는 같을지 몰라도 다른 조합으로 이루어져 이전과는 다른 다양성을 가지게 된다.

대선은 국민이 여러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하고 선출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나가 된다는 면에서 하나의 난자가 수많은 정자 중 하나를 선택하여 수정체라는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수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수정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먼저 후보자에 해당하는 정자를 살펴보자. 정자는 머리와 꼬리만 있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원래부터 이런 모양은 아니다. 동그랗던 세포에서 유전자와 운동에 필요한 미토콘드리아와 섬모를 제외한 불필요한 세포질을 모두 버리는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쳐 정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죽기 살기로 난자를 향해 달려가, 난자의 선택을 받으면 난자 속으로 핵만 들여보낸다. 새로운 생명을 위하여 자신을 난자로 이끌었던 섬모나 미토콘드리아 등 마지막까지 같이 하였던 가장 소중한 동지들까지도 버릴 수 있는 용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난자는 어떠한가? 난자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수많은 정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최종적으로 정자 하나를 선택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최소한 가장 먼저 난자에 도달한 정자 중에서 난자가 요구하는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후보 중에서 국민의 마음에 합치하는 조건과 자질을 갖춘 자가 선택받을 것이다.

앞에서 난자의 세포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수정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난자와 정자의 핵이 합쳐지는 것이 새로운 정권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새 정권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난자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즉 국민의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정권에 대한 이해와 협력, 지지가 아닐까 한다.

대선 후보들은 과거의 자신 및 자신의 집단과 충분히 차별화되고 국민에게 다가가기에 합당하게 환골탈태하였는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지지자들도 국민이 원한다면 포기할 각오는 되어 있는가? 국민의 아픔과 현실, 그리고 꿈과 희망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가? 그리고 선택을 받는다면 모든 것을 국민의 뜻에 맞추어갈 준비는 되어 있는가?

우리 국민도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가장 적당한 후보를 명확히 분별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엄창섭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