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도 몰랐다. 버섯을 길러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저 산에서 딴 야생 버섯을 요리해 먹는 수준이었다. 사십 평생 먹어 본 적 없는 버섯을 이제 제 손으로 기르는 아낙도 있다. 그 맛에 혹한 친척들은 불쑥 찾아와 버섯요리를 해 달라고 성화다. 인도네시아 작은 시골 마을이 버섯으로 들썩인다. 오롯이 한국 덕이란다. 직접 가 봤다.
욕야카르타(족자)특별자치주(州) 구눙키둘 지역의 블레베란(bleberan) 마을은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570여㎞ 떨어져 있다. 1,785가구 5,700여 명(2018년 기준)이 사는 깡촌이다. 대부분 자기 땅이 없어 소작을 하거나 노점,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꾸린다. 무직 비율도 20%에 달한다. 운전기사, 공장 노동자 정도가 변변한 직업이다.
족자는 가난하다. 올해 월 최저임금이 자카르타(426만 루피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76만5,000루피아(약 14만6,000원)로 전국에서 꼴찌다. 블레베란은 족자 안에서도 빈촌에 속한다. 그나마 잘 닦인 도로를 활용해 작은 계곡과 동굴을 관광지로 운영한다. 전반적으로 깨끗한 마을 풍경에도 가난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스며 있다.
2015년 어느 날 한국인이 마을에 찾아왔다. 홍승훈(37) 새마을세계화재단 인도네시아사무소장이다. 그는 새마을시범마을 조성을 제안했다. 이듬해부터 여러 작은 사업이 시도됐으나 보수적인 마을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주민들은 땅콩, 옥수수 등 수익은 적지만 익숙한 작물 재배만 고집했다. 실패가 목전이었다.
재단은 마을의 고질인 물 공급 부족부터 해결했다. 수원지가 험한 곳에 위치한 데다 동력원이 디젤이라 기름이 떨어지면 물이 끊기기 일쑤였다. 연료를 옮기는 오토바이가 넘어지는 사고도 비일비재했다. 동력원을 전기로 바꾸기 위해 2년에 걸쳐 수원지부터 마을까지 전봇대 100여 개가 세워졌다. 2018년 1월부터 생활용수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물길이 열리자 주민들의 마음도 열리기 시작했다.
마침 스리랑카의 새마을시범마을에서 버섯 재배가 성공했다는 소식이 당도했다. 홍 소장은 휴가를 내고 스리랑카 현장으로 날아갔다. 기후 조건이 비슷하고 물 부족 문제도 해결한 만큼 해 볼만 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시험 재배도 성공했다. 주민들은 여러 차례 토의 끝에 홍 소장이 6개월에 걸쳐 설득한 버섯 사업을 2018년 8월 시작했다.
대부분 주부인 마을 여성 70여 명은 자발적으로 바로카(축복) 등 15개 클롬폭(kelompok·모임)을 결성했다. 한국의 전문가가 직접 방문해 가장 적합하다고 조언한 느타리버섯(jamur tiram)을 키울 버섯재배사 15개가 곳곳에 세워졌다. 네댓 명씩 짝을 이룬 여성들은 버섯이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소가 들어 있는 배지(培地)를 공급받아 본격적으로 길렀다. 하루 몇 시간 노동으로 월평균 우리 돈 8만 원이 수중에 들어오자 여성들은 신바람이 났다. 이전엔 남편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 수입이 15만 원에 불과했다.
버섯 재배에 능숙해진 여성들은 클롬폭을 벗어나 차츰 독립했다. 개당 2,200루피아(약 180원)에 사 오던 배지를 직접 만들어 부가 수익을 늘리거나, 직원 3~5명을 거느린 여성도 있다. 주부에서 사장님이 된 여성들이 가계 소득 증대뿐 아니라 고용 창출까지 일궈낸 셈이다. 보통 배지 2,000개를 길러 한 달 평균 느타리버섯 200㎏을 생산하는 마을의 버섯재배사는 현재 70여 개로 늘었다.
최근 찾아간 수르티나(42)씨 집 주방은 열기로 가득했다. 알바시아 톱밥과 쌀겨, 석회가루를 섞어 만든 뒤 밀봉한 배지를 무균 상태로 만들기 위해 고열의 멸균기에서 굽고 있었다. 고열 처리는 9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우수 관리자로 선정돼 받은 초록색 간이 멸균기에는 새마을 로고가 선명했다. 그는 "드럼통으로 멸균할 때는 배지 114개를 처리했는데 현재는 배지 250개가 들어가고 연료 소비도 절반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월 클롬폭에서 독립한 그는 두 달 전부터 배지도 직접 생산하고 있다. 직원 4명에 원래 운전기사로 일하던 남편까지 고용한 어엿한 사장님이다. 2주간 버섯 균을 배양하는 암실(다크룸)에는 배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48㎡ 넓이 버섯재배사에는 배지에서 자라난 느타리버섯이 탐스러운 백색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는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한 재배 일지를 보여 주며 버섯과의 인연을 풀어갔다.
"버섯이 뭔지도 몰랐고 먹어본 적도 없어요.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클롬폭에서 직접 키워 보니 일이 재미있고 돈도 벌 수 있더라고요. 하루 4~5시간 일한 대가가 월 8만 원이면 정말 큰돈이죠. 혼자 해 보고 싶어서 남편과 상의한 뒤 독립했어요. 배지 구매 비용이 아까워서 만드는 법도 배웠어요. 요즘엔 버섯보다 배지 판매가 더 쏠쏠해요. 두 달 만에 24만 원을 벌었답니다. 주문이 계속 밀려들어요."
또 다른 우수 관리자 투기야(58)씨를 찾아가자 하소연을 했다. 일할 여력이 충분하니 버섯재배사를 하나 더 지어달라는 것이다. 그는 "버섯은 산에서 따먹는 줄만 알았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직접 기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교육을 열심히 받아서 버섯 재배를 잘하고 있으니 기회를 더 달라"고 홍 소장에게 부탁했다. 재단은 버섯재배사 건립을 지원하고 있다. 일부 우수 관리자는 부상 개념으로 2개의 버섯재배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블레베란의 느타리버섯은 기르는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게 아니다. 올해 6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에피(19)씨는 엄마 손에 이끌려 재단에 왔다. "제 딸 일자리 좀 부탁합니다." 홍 소장은 버섯 유통을 주선했다. 이후 에피씨는 농가에서 버섯을 받아 무게를 잰 뒤 시장에 넘기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하루에 2시간 정도 버섯 50㎏을 배달하고 월 70만 루피아(약 4만2,000원)를 벌고 있다"며 "덤으로 다양한 경험도 쌓고 있다"고 웃었다.
이달 초 마을 중심가에는 새마을버섯센터 단장이 한창이었다. 센터 뒤편에는 배지 원료를 혼합하고 12개씩 밀봉하는 배지생산기계의 시운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섭씨 120도의 열을 1~2시간 가해 배지 2,500개를 한 번에 무균 상태로 만드는 멸균기도 두 대가 설치됐다. 암실은 배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고 버섯 판매점은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현재 센터는 주민들의 열망을 담아 대규모로 버섯 배지를 생산해 버섯재배사에 공급하고, 다 자란 버섯을 직접 판매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버섯 관련 교육도 이뤄진다. 내년에는 한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영지버섯 재배도 시도할 계획이다.
버섯은 인도네시아 식량 안보와 다양성 차원에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잎채소보다 식물성 단백질은 10% 이상, 탄수화물은 50% 이상 더 함유하고 있어서 영양 실조나 성장 방해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최근엔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버섯요리 전문 식당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버섯을 먹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현지인들이 차츰 버섯 맛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느타리버섯 재배는 1988년 시작됐으나 정착된 건 2003년 이후다. 리스다르 A. 마나프 보고르농대(IPB·이페베)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가 버섯 생산부터 유통까지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한국의 버섯센터를 본받아 버섯 재배와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모두 블레베란 주민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먼저 나선 여성들의 도전이 블레베란을 변모시키고 있다. 잠재된 열정을 깨운 한국의 지원도 빼놓을 수 없다. 첫 모임 이름처럼 버섯이 축복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