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기' 의 어두운 기억들

입력
2022.01.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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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슈투르모프쉬나

'슈투르모프쉬나(Shturmovshchina)'는 우리말로 '벼락치기'쯤으로 번역될 만한 러시아 말이다.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대, 시한 막바지에 할당된 목표량을 몰아 해치우는 방식을 뜻한다. 러시아어 'Shturm'은 영어로 'Storm(폭풍)'에 해당되는 단어다.

목표량은 으레 빠듯하게 설정됐고, 단위 인력·시간당 생산량은 관리자의 출세와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물론 품질은 생산량과 부의 상관관계를 띨 때가 많았겠지만, 생산량은 대체로 목표량에 비례했다. 그래서 생산 현장의 계획 보고를 근거로 상급 기관에서 조정해서 결정하는 목표량은 노동자들에겐 대체로 가혹했다.

더 큰 문제는 생산에 필요한 부품과 소재가 제때 공급되지 않거나 온전한 기능을 갖춘 도구와 기계가 갖춰져 있지 않을 때가 잦다는 거였다. 원료가 부족해서 작업은 더 더뎌지기 일쑤였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한 차질인 만큼 목표량이 조정되리라는 기대도 했음직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관리자와 노동자들은 마감 시한에 몰려 부실한 부품과 재료로나마 속전속결로, 밤샘 작업하기 일쑤였다. 그 작업 관행을 노동자들이 저렇게 불렀다고 한다. 월말 슈투르모프쉬나로 진을 뺀 노동자들은 월초-중순을 다소 느긋하게 보낸 뒤 막판 벼락치기를 반복했다.

소비에트 '노력 영웅' 알렉세이 스타하노프(1906.1.3~1977.11.5)가 국가가 제시한 모범이었다. 광산 착암기 기사였던 그는 1935년 8월 독자적 채탄 기술로 목표량보다 14배나 많은 석탄을 채굴해 당기관지 '프라우다'를 통해 러시아 전역에 알려졌고, 그해 말 '타임' 표지 기사로도 소개됐다. 그의 성과가 터무니없이 부풀려졌다는 비판도 있지만 어쨌건 그는 스탈린 체제의 '새로운 사회주의 인간형'으로 떠오르며 막대한 포상과 지위를 누렸다. 대신 소비에트 노동자들은 '스타하노프 운동', 즉 목표량 확대와 초과 달성이라는 가혹한 작업 환경에 내몰려야 했다.

소비에트 경제는 결딴났지만, 슈투르모프쉬나 행태는 이념과 체제를 초월해 살아남았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