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앞둔 중대재해법, 책임 회피보단 안전 보강을

입력
2021.12.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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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1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기업들이 산재 책임을 회피해가려는 면피성 대책 마련에 몰두하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노후시설을 개·보수하고 안전관리 인력을 늘려 산재를 예방하자는 게 이 법 취지이지만 일부 기업들이 산재 발생 시 책임을 회피할 방안을 찾는데 몰두하는 본말 전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계에 따르면 최근 한 대형건설사는 하청업체에 ‘사망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보디캠(몸에 부착하는 이동형 CCTV)을 착용시킬 것’이라는 공문을 보냈다가 노조의 항의를 받았다. 산업 현장에서 보디캠을 비롯한 CCTV 설치가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도 확인되고 있다. 단순한 사각지대 감시 차원이 아니라 작업장 곳곳에 CCTV를 설치하려는 기업도 있다고 한다. “어떻게든 사고 후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길 궁리만 하고 있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입법과 법 통과 이후 기업들이 보여준 태도를 보면 노동계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다. 올 상반기 노동단체 권리찾기유니온은 실제로 수십 명의 근로자를 고용하면서도 사업장을 5인 미만으로 분리 시도한 사업장 40여 개를 적발하기도 했다. 이 법이 상시근로자 5인 미만에 적용되지 않는 빈틈을 찾아 ‘사업장 쪼개기’를 한 것으로 의심한 것이다.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암암리에 ‘바지사장’을 고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670여 개의 조문을 가진 방대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음에도 산재가 줄지 않자 ‘회사대표에게 직접 책임을 지워야 산재를 예방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제정된 게 중대재해처벌법이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산재 예방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보다 경영책임자 책임 면하는 방법 짜내기만 궁리한다면 1년에 2,000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산재로 목숨을 잃는 ‘산재공화국’의 오명을 떨치기는 요원하다. 법 시행까지 남은 한 달은 산재 취약요소를 찾아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인력과 시설에 대한 투자를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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