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조작?"…'골 때리는 그녀들'과 '방과후 설렘'의 공통점

입력
2021.12.28 11:59
"어디까지 조작일까요?"

'골 때리는 그녀들'을 즐겨봤다는 네티즌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긴 글이다. 이 프로그램은 편집으로 경기의 흐름을 실제와 다르게 구성해 비판을 받았다. 예능의 편집 논란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이는 많은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프로그램의 진정성에 대한 불신을 심어줬다.

편집으로 여론 뭇매 맞은 예능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에 대한 논란은 지난 22일 전파를 탄 FC구척장신과 FC원더우먼의 대결로 논란에 휩싸였다. 방송 속 두 팀은 3대 0에서 3대 2, 4대 2, 4대 3으로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펼쳤다. 치열한 대결 끝에 FC 구척장신이 6대 3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방송 이후, 일부 네티즌들은 점수를 알려주는 상황판에 '4대 0'이 표시돼 있었다는 등의 근거를 들어 프로그램 측이 편집을 통해 경기 순서를 바꿨다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전반이 5대 0으로 마무리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진심으로 스포츠를 사랑하는 스타들이 모여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예능이라고 생각했던 시청자들이 많았기에 의혹의 파장은 매우 컸다. '골 때리는 그녀들'의 공식 홈페이지 기획 의도란에는 '진정성 200%! 축구에 진심인 그녀들과 대한민국 레전드 태극전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건강한 소모임 탄생'이라고 쓰여 있다.

MBC '방과후 설렘' 또한 최근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2일 방송분에서 권유리는 "팬 몰이를 할 멤버가 필요하다"며 무대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한 참가자 이지원을 칭찬했다. 이지원이 합격하고 가창력으로 호평받은 이승은이 떨어지자, 네티즌들은 분노했다. 이들은 실력 외의 이유로 참가자를 합격시키는 건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권유리가 크게 비판받는 상황 속에서, '방과후 설렘' 측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비하인드 영상을 공개했다. 비하인드 영상에 따르면 권유리는 그저 '팬 몰이 가능성'을 기준으로 합격 여부를 결정지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승은을 합격 시키고 싶었다고 밝히며 "나보다 더 가까이에서 트레이닝을 시켜주시고 돌봐주신 선생님들과 함께 논의한 끝에 (이승은을 탈락자로) 결정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 일로 '방과후 설렘' 측은 악마의 편집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골 때리는 그녀들'과 '방과후 설렘'이 비판 받은 이유

기본적으로 예능은 '재미'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 약간의 편집 혹은 조작은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약해왔던 개그맨 최양락 역시 IHQ '결혼은 미친 짓이야'의 온라인 제작발표회 당시 "대한민국 방송에 주작(지어낸 이야기) 아닌 게 어디 있겠느냐. 프로그램명은 밝히진 않겠지만 자연에 사는 프로그램이 있다. 리포터가 만나러 가는 주인공이 산속에서 마이크를 차고 나타난다. 뉴스 프로그램도 시민과 이야기하기 전에 사전 미팅을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골 때리는 그녀들'과 '방과후 설렘'은 편집으로 비판받았을까. '골 때리는 그녀들'에 대한 답은 최양락이 남긴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최양락과 팽현숙이 부부가 아닌데 부부인 척하는 건 주작이다. 내가 김사장과 친하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원수인 것도 주작이다. 그런데 큰 줄기가 아닌 에피소드 하나를 물고 늘어지는 건 억울하다"고 밝혔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스포츠에서 매우 중요한 '경기의 흐름'이라는 줄기를 훼손했기에 비판받았다.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둔 후 그 흐름이 이어졌음에도 시청자들은 편집에 속은 채 조작된 감동을 느껴야 했다.

'방과후 설렘'의 경우 권유리라는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방송 후 일부 네티즌들은 권유리가 팬 몰이가 가능할지의 여부만을 두고 참가자를 선발했다며 그를 비난했다. '방과후 설렘'이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점도 문제였다. 이러한 유형의 예능에서는 시청자들이 참가자가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만을 믿고 그를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악마의 편집이 이뤄지는 프로그램에서는 참가자의 인성과 실력에 대해 알기 어렵다.

빠른 사과에 이어 재발 방지 약속

두 프로그램은 모두 논란이 불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숙였다. '골 때리는 그녀들' 측은 "방송 과정에서 편집 순서를 일부 뒤바꾸어 시청자들께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지금까지의 경기 결과 및 최종 스코어는 방송된 내용과 다르지 않다고 하더라도 일부 회차에서 편집 순서를 실제 시간 순서와 다르게 방송했다. 제작진의 안일함이 불러온 결과였다"고 밝혔다.

'방과후 설렘' 측은 "권유리는 이승은을 선택했지만 트레이너 선생님들과의 논의 과정에서 이지원으로 합격자가 변동됐다"며 "편집 과정에서 전체 맥락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보시는 시청자분들께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두 프로그램 측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의 사과문에는 "땀 흘리고 고군분투하며 경기에 임하는 선수 및 감독님들, 진행자들, 스태프들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편집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향후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쓰여 있었다.

지난 19일 방송된 '방과후 설렘'은 '탈락 과정에 대해 오해가 없도록 선발 과정을 다시 공개한다'는 자막과 함께 시작됐다. '방송 특성상 현장 상황을 축약 편집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좀 더 신중을 기해 제작하도록 하겠다'는 글도 볼 수 있었다.

논란 휩싸였던 프로그램의 숙제

'골 때리는 그녀들'과 '방과후 설렘'이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등을 돌리기엔 이르다. 프로그램 측은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인정했고, 네티즌들의 지적을 받아들여 빠르게 사과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진정성의 가치를 깨달았음을 밝히며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환골탈태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이유다.

대중의 마음도 풀어졌는지 '골 때리는 그녀들'에 앞서 비판을 받았던 '방과후 설렘'의 시청률은 사과 후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국 유료방송 가입 가구를 기준으로 논란에 휩싸였던 지난 12일 방송의 시청률은 1.0%였다. 그러나 조금씩 올라 19일에는 1.1%를, 26일에는 1.4%를 기록했다.

대중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 속, 편집 논란에 휩싸였던 예능들은 진정성에 대한 책임감을 지닐 필요가 있다. 한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골 때리는 그녀들'이 조작을 할 정도면 다른 예능은 얼마나 장난질을 많이 했겠느냐. '백종원의 골목식당'부터 'TV 동물농장' '그것이 알고 싶다'까지 신뢰가 안 간다"는 글을 게재했다. 잘못된 편집으로 다른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까지 낮춘 셈이다. 방송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는 모든 제작진들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한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