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가 법정에서 증언하지 않아도 영상녹화물에 담긴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는 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A씨가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박탈하고 일방적 진술을 증거로 인정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6(위헌) 대 3(합헌)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13세 미만 피해자를 수차례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는 1심에서 '영상녹화CD에 수록된 피해자 진술'을 증거로 쓰는 것에 부동의해 반대신문을 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1심 재판에선 피해자의 신뢰관계인 증인신문을 거쳐 CD를 증거로 사용했고, 2심에서도 받아들여졌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은 이뤄지지 않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성폭력처벌법 30조 1항은 피해자가 19세 미만이거나 신체·정신적 장애로 사물 변별과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경우 진술내용과 조사과정을 영상물로 녹화·보존하도록 하고 있다. 같은 조 6항에선 조사 과정에 동석했으며 피해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 또는 진술조력인의 사실확인이 있으면 증거능력을 인정하도록 한다.
유남석·이석태·이은애·이종석·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주요 진술증거의 왜곡이나 오류를 탄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인 피고인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고, 대체 수단도 마련하지 못했다.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피고인은 사건의 핵심적인 진술증거에 관해 충분히 탄핵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되므로 방어권이 제한되는 정도가 매우 중하다"며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면서도 미성년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상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합헌 의견을 낸 이선애·이영진·이미선 재판관은 "이 조항은 미성년 피해자가 법정 진술과정에서 받을 수 있는 심리적·정서적 충격 등 추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조사와 신문을 최소한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입법 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적합한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반대신문에 기대하는 기능과는 달리 미성년 피해자에게 수치심과 공포, 기타 심리적 압박과 정신적 고통 등 2차 피해만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며 "법정에서 진술하는 미성년 피해자가 회유와 압박으로 추가 피해를 입을 위험성도 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