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이낙연 전 대표가 23일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국가 비전과 통합위원회'(비전위) 공동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경선 후 잠행을 이어온 이 전 대표의 등판을 통해 선대위 출범 후 '원팀'을 위한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는 평가다. 다음 주 열린민주당과 정치적 합당 선언, 내년 초 탈당자 대상 '신년 대사면'까지 이뤄지면 이 후보는 외연 확장에 전념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는 셈이다. 더욱이 선대위를 둘러싼 극심한 내홍에 빠진 국민의힘과 대비되면서 두 사람 간 만남의 효과는 극대화됐다.
이 후보와 이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80여 분간 오찬 회동을 가졌다. 두 사람이 마주 앉은 것은 경선 직후인 10월 24일 찻집 회동 이후 60일 만이고, 선대위 출범식 이후 51일 만이다. 선대위 출범 후에도 상임고문 직함을 갖고 있었지만 이 전 대표는 그간 선대위 활동과는 거리를 둬 왔다.
두 사람은 이날만큼은 굳게 손을 맞잡으며 정권 재창출을 위한 의지를 다졌다. 이 후보는 "존경하는 이낙연 전 대표께서 지금까지도 민주당 승리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직접 참여해 차기 민주정부를 위해 최선을 다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이 후보와 함께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번 회동은 이 후보가 최근 두 차례 이 전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선대위 합류를 간곡히 부탁하면서 성사됐다. 양측은 이전부터 '연내 선대위 합류'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 이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면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박빙 경쟁을 벌이고 있고, 연말연시 지지층에 민주당의 결속을 각인시키기 위한 적기라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양측은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이뤄진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지지층 간 갈등으로 한동안 폐쇄했던 당 홈페이지의 당원게시판을 다시 여는 방안 등 경선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털기 위한 노력을 병행키로 했다.
선대위는 이 전 대표의 합류로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분위기다. 호남 등 내부 결집은 물론 중도층 확장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민주당 중진의원은 "이날로 마지막으로 남은 내부의 불안 요인을 모두 털어버렸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년 초 탈당자를 대상으로 향후 공천 시 불이익 없이 일괄 복당을 허용키로 한 것도 '진보 대통합' 구상에 따른 것이다. 호남이 고향인 이 전 대표의 합류는 이 후보에게 뜨뜻미지근한 호남 표심을 확실히 다잡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품격과 절제미를 갖춘 이 전 대표가 이 후보의 약점을 보완함으로써 안정감을 바라는 중도층에 소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한 선대위 관계자는 "언론사 신년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의 골든크로스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도 '상징적 합류'에 그치지 않고 선대위에서 차기 정부가 힘써야 할 비전과 의제 제시에 주력할 계획이다. 특히 양극화 완화 및 복지국가 구현과 정치제도 개혁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선대위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가 당의 어른으로서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의 대항마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이 전 대표는 그러나 현안 발언이나 상대 후보 비판을 위해 전면에 나서지 않을 방침이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윤석열·김종인·이준석 '삼각 편대'의 부실함이 드러났는데 민주당도 같이 장단을 맞출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선대위에서 민주당의 가치를 상징하는 구심점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외연 확장을 명분으로 이 후보가 너무 과한 '우클릭' '차별화'를 시도할 경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도 이날 "앞으로 제가 활동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후보나 당과 결이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후보가 그 부분을 수용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의 합류로 또 다른 경선 경쟁자였던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행보도 주목된다. 선대위 상임고문인 정 전 총리는 총리 시절 코로나19 대응을 바탕으로 방역과 호남 민심 확보를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