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에너지 대란이 심화하면서 산업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금속 제련, 비료 제조 관련 기업들은 수익성이 낮아져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다. 유럽 경제 회복 전망도 한층 어두워졌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유럽 천연가스 공급난으로 가격이 급등하면서 산업계 전체가 막대한 재정적 피해를 보고 있다”며 “금속 제련소와 비료 제조업체는 이미 생산량 감축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알루미늄 제련소인 프랑스 덩케르크제련소는 최근 2주간 생산량을 3%가량 줄였다. 유럽 최대 아연 제련업체인 니르스타도 벨기에 공장과 네덜란드 공장에서 생산 물량을 감축할 계획이다. 프랑스 공장은 내년 초 아예 일시 폐쇄하고 시설 정비를 하기로 했다. 치솟은 에너지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올 한해 유럽 가스 가격은 무려 800% 이상 뛰었다. 전력 비용도 500%나 올랐다. 유럽 가스 수요 40%를 담당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문제로 미국ㆍ유럽 서방 동맹과 갈등을 빚으면서 가스 공급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벨라루스, 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가스관은 최근 사흘간 공급이 끊겼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유럽 가스 가격이 이번 달에만 두 배 올랐다”며 “미국보다 15배 비싸다”고 짚었다.
기업들이 입은 손해도 막대하다. 올해 알루미늄 가격이 40% 올랐음에도 에너지 가격은 훨씬 더 오른 탓에 수익이 크게 줄었다. 일례로 프랑스에서 한 달 동안 알루미늄 1톤을 생산하려면 전력 비용이 1만1,000달러(1,300만 원)가 들지만, 팔리는 가격은 1톤당 2,800달러(330만 원)에 그친다.
덩케르크제련소 노조 대표 로랑 지라트르는 “11월부터 현재까지 손실액이 2,000만 유로(약 269억 원)에 달한다”며 “에너지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갈 경우 생산량 추가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알루미늄 같은 에너지 집약적 금속은 제련소 가동 중단과 재가동에 드는 비용이 높아 생산량을 큰 폭으로 조절하기 어렵다”면서도 “전력 대비책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오래 버티기는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비료 제조업체들도 아우성이다. 스위스 곡물 거래 업체인 아메로파 자회사인 루마니아 최대 비료 회사 아조무레스는 최근 공장 문을 일시적으로 닫았다. 노르웨이 비료 회사 야라인터내셔널도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필요한 경우 생산량을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미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 연구원 앤 소피 코르보는 “비료 공급 문제는 결국 식료품 가격에 반영된다”며 “식량 공급망 위기는 유럽뿐 아니라 더 많은 나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짚었다.
에너지 위기는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다국적 금융기업 스탠다드차타드의 유럽ㆍ미주 연구원 세라 헤윈은 “가정용ㆍ산업용 가스 가격 상승은 생산 활동에 역풍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유럽 경제는 확실히 부정적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