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서 본심에 오른 열 권의 책 중 특히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끈 것은 이경분의 '수용소와 음악', 이광석의 '피지털 커먼스', 임지현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등이었다. '수용소와 음악'은 제1·2차 세계대전기 수용소에서의 음악이라는 독특한 주제에 착안했다는 점이 신선하다. 다년간 독일과 일본의 아카이브를 탐사하며 자료를 발굴해 온 저자의 노력 또한 돋보인다. '피지털 커먼스'는 데이터사회의 기술권력을 상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종류의 책이다. 플랫폼 자본주의를 조목조목 진단하는 한편 시민적 공통성을 촉구하고 인간-기술-생태의 공존을 기획하는 폭넓은 문제의식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파시즘과 대중독재 문제를 일관되게 고발해 온 저자의 신작이다. 외부의 가해자를 지목함으로써 내부 갈등을 봉합해 온 20세기 민족주의의 문제를 국경을 넘나들며 추적한 문제의식이 강렬하다.
이렇듯 만만찮은 후보작들이 있었음에도 박철수의 '한국주택 유전자'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제1·2권을 합치면 1,400쪽에 가까운데다 도판만도 1,000종이 넘지만 흥미진진 읽힌다. 1920~1930년대 관사나 문화주택에서 1990년대 다가구·다세대주택에 이르는 다양한 주거 형태를 그 기원에서부터 따라 읽어 나가다 보면, 그동안 계승·단절돼 온 각 형태별 유전자를 오늘날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 역사적 문제의식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도판 한 장마다 저자의 땀과 이력이 느껴지는 책, 현장과 학술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점도 반갑다. 저자의 전작인 '아파트: 공적 냉소와 사적 열정이 지배하는 사회'나 '거주 박물지'가 이 책으로써 비로소 종합·완성됐다는 인상이다. '한국주택 유전자'는 주택의 금융화가 문제되는 현 상황에 시의적절한 책이라는 점에서도 심사위원들의 한결같은 지지를 얻었다.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주거 공간이 필요한지, 이 책을 통해 성찰과 토의가 활발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