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8일 중국 베이징 남서쪽 외곽 팡산구 창거우위. 채탄장 입구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탄광 식당에서 일할 때만 해도 들썩이던 동네”라며 “지금은 빈 건물만 남아 휑하다”고 말했다.
창거우위는 원나라 때부터 800년간 석탄을 채굴한 곳이다. 탄질이 좋아 한국, 미국, 일본, 프랑스 등 각국으로 수출했다. 하지만 2016년 문을 닫았다. 환경오염을 줄이는 동시에 전략 무기로 자원을 활용하는 중국의 셈법이 달라졌다. 광물을 내다파는 물량공세로는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2009년 이후 창거우위의 석탄 생산이 줄었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에 나선 시점과 맞물린다. 1970년대부터 희토류 원재료를 수출한 중국은 90년 미국을 넘어섰다. 덩샤오핑은 92년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강조하며 네이멍구 바오터우에 희토류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중국은 2000년대 희토류 생산과 수출을 장악했지만 2010년대 들어 전략을 바꿨다. 국내 자원은 비축하고 해외 희토류 확보에 주력했다. 히든 카드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탄광을 나와 언덕을 넘어서자 굵다란 파이프라인이 도로 양옆으로 겹겹이 펼쳐졌다. 길이가 족히 수㎞는 돼 보였다. 마스크 안으로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베이징 최대 규모 석유화학신소재과학기술산업기지에 들어섰다. 석유화학 생산공정에는 원유 외에 희토류가 필수적이다. 전 세계 희토류의 23%가 촉매제로 쓰인다. 영구자석(38%)에 이어 희토류가 가장 많이 필요한 분야다.
기지가 조성된 것도 2009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서 부가가치가 높고 첨단기술을 갖춘 실물경제 차원의 경쟁력 확보가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원유 추출부터 최종제품에 이르는 ‘가치 사슬(Value chain)’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산업단지 규모를 키웠다.
희토류도 마찬가지다. ‘채굴→분리→제련→가공→응용’에 이르는 생산단계를 얼마나 점유하느냐에 따라 영향력의 크기가 달라진다. 자원이 정치로, 경제가 안보로 둔갑하는 지점이다. 이미 가치 사슬의 정점에 오른 중국은 독점 구도를 굳히려고 지난달 23일 남부 장시성에 세계 최대 ‘중국희토그룹’을 출범시켰다. 북부 네이멍구는 2025년까지 희토류 생산가치를 현재보다 5배 늘린 1,000억 위안(약 18조5,900억 원) 규모로 끌어올리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국유자산관리위원회는 “희토류와 석탄 국유기업의 통폐합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희토류와 연관된 중국 업체는 3만5,400개가 넘는다. 2014년 6개 국영기업으로 통합해 집중화를 꾀했지만 산하업체는 우후죽순으로 늘어 2019년 2,574개, 2020년 5,695개, 지난해는 11월 기준 9,227개가 새로 생겼다. 펑파이 등 중국 매체들은 “업계 재편을 통한 항공모함급 기업의 등장으로 희토류 가격 결정권과 통제력을 높이고 서방의 주도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자원 보호와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기대했다.
4차 산업혁명 이후 리튬, 코발트, 니켈 등 희유금속(Rare metal)도 희토류와 함께 주목받고 있다. 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려 베이징 남부 다싱의 베이징신에너지자동차(베이치) 공장에 닿았다. 외벽을 따라 차량 부품이 줄지어 쌓여있고 정문으로는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트럭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근처에서 만난 트럭기사는 “베이치는 가격이 저렴하고 성능이 좋아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전기차 브랜드”라며 “반도체를 비롯한 부품 공급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국 전기차 1대에 들어가는 희유금속은 리튬 50~70㎏, 코발트 5~12㎏, 니켈 12~14㎏에 달한다.
반면 중소기업이 처한 여건은 빠듯하다. 중국 톈진의 리튬이온 배터리 소재 업체 대표는 “원료 가격이 올해 2분기부터 폭등해 연초 대비 4배 넘게 뛰었다”며 “1년 반 이상 장기계약을 맺어 60억 원가량의 3개월치 금액을 선지급하지만 고객에게 제품을 팔고 나서 두 달은 지나야 돈을 회수할 수 있어 자금 압박이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리튬 수급을 국가에서 통제하다 보니 장기계약이라 해도 매월 공급받는 물량은 정해져 있다”면서 “전기차 수요가 아무리 늘어도 그에 맞춰 생산량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자동차협회는 2022년 신에너지 자동차 판매량이 500만 대에 달해 전년보다 47%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안으로 조이고 밖에서 퍼오는 ‘쌍끌이’ 전술로 희유금속을 손에 쥐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2019년 5월 “희토류는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라고 강조하자 2020년 ‘수출통제법’을 만들어 희토류를 전략자원으로 분류했고, 2021년 ‘희토류 관리 조례’를 통해 희토류 산업 전반의 공급망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했다.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의 경우 채굴에서 중국의 비중은 2017년 전 세계 5%에 불과했다. 반면 제련 89%, 전기화학 75%, 부품 50% 등 생산공정 전반에 걸쳐 중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심지어 중국은 채굴 단계마저 점령했다. 2018년 이후 중국이 인수한 해외 리튬 광산 거래규모는 43억2,550만 달러(5조1,300억 원)로 미국(13억8,850만 달러)의 3배가 넘는다. 고효율 배터리의 핵심소재 코발트의 경우 아프리카 콩고가 전 세계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 중 80%는 중국으로 보내 중간가공을 거친다.
중국이 변심하면 한국은 언제든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리튬, 코발트, 니켈 가격은 지난해 2~5배 올랐다. 중국이 가공단계의 이윤을 얼마나 붙이느냐에 따라 시장이 좌우되는 구조다. 전기차 배터리 음극재의 핵심소재 흑연의 경우 한국의 대중 의존도는 99%에 달한다. 지난해 심각한 부족사태를 겪은 요소수(97%)보다 높다.
다시 방향을 틀어 30㎞가량 떨어진 ‘중국판 실리콘밸리’ 이좡으로 향했다. 이좡은 최첨단 기술산업 발전을 위해 2005년부터 조성한 베이징 유일의 국가급 경제기술개발구다. 중국 희토류 가치 사슬의 최종단계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좡은 2019년 1월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 중심부를 떠나 이곳을 직접 찾으면서 유명해졌다.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도 지난해 11월 이좡에 연 30만 대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도로에서는 중국 바이두와 네오릭스가 각각 다른 형태의 무인 자율주행차량을 시험운행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중국 액정디스플레이패널(LCD) 선두기업 BOE의 육중한 건물이 자리 잡았다. BOE 생산라인의 정부출자 비율은 40%가 넘는다. 중국 LCD 생산은 2017년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이좡 광학기계전자 일체화기지에서 만난 한 남성은 “이곳에서는 거리를 청소하는 살수차도 신에너지를 표방하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원을 틀어쥐고 첨단 기술분야를 선점하려는 중국의 폭주는 거침이 없다. 하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시 주석은 지난달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주재하면서 “원료와 농산물 공급은 중국 같은 대국에게 중대한 전략적 문제”라며 “콩, 철광석, 원유, 천연가스, 구리, 알루미늄 하나하나가 국가의 운명과 연결돼 있다”고 경각심을 불어넣었다. 전략물자를 비축하고 주요 자원의 자급역량을 갖춰야 유사시 마지노선을 지켜내 중국의 생존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