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평]책은 성찰했다, 삶은 연약한 채로 존중받아야 함을

입력
2021.12.24 04:30
13면
코로나 2년, 삶의 연약성 드러나
문명의 방향 재설정하는 데
책은 성찰과 지혜의 언어를 담아

지난 두 해 동안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연약성을 전면에 드러냈다. 일상은 파괴되고 관계는 끊어지고 수많은 이들이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다. 재난의 세상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깊은 슬픔과 함께 자신을 돌보고 사회를 돌아보면서 삶의 또 다른 가능성을 성찰했다.

세계의 어둠 속에 나타난 지성의 별들을 살피는 일은 즐거웠다. 책의 촉수는 우리 삶의 무시된 고통에 더 예민해졌고, 우리 사회의 감추어진 폭력에 더 민감해졌으며, 우리 문명의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데 더 풍부한 성찰의 언어를 공급했다. 한 심사위원의 말처럼, 우리가 연약한 채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이 선명해졌다. 현장으로 뛰어들어 장애, 우울, 자폐, 빈곤, 부동산, 차별, 기후 등의 문제를 깊이 있고 섬세하게 성찰하는 다정한 언어들에 심사위원 마음이 저절로 모였다.

부동산 광풍은 한국사회의 어두운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현장이다. '한국주택 유전자'는 지난 100년 동안 누구도 살피지 않았던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한국 근현대 주택의 계보도를 우리 앞에 그려낸다. '아파트 열풍'의 기원 등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는 역사적 시각을 제공할 뿐 아니라 문학 작품과 언론 기사 등에서 가져온 읽을거리, 다채롭고 풍부한 시각 자료 등을 통해서 흥미로운 독서 경험까지 제공하는 학술서 출판의 한 전범을 보여준다.

'사이보그가 되다'의 두 저자는 자신들의 장애 경험을 바탕 삼아 '인간과 기계가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가'라는 포스트휴먼의 주제를 탐구한다. 언젠가는 기술이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낙관론은 지금 여기의 고통을 무한정 유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휠체어와 보청기 사용자인 두 사람은 비장애인 사회에서 사이보그로 사는 고통을 섬연하게 드러내면서 장애 그 자체를 긍정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상상하자고 제안한다.

우리나라는 자폐로 고통받는 이들의 비율이 아주 높은 '자폐 국가'이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자폐가 질병으로 인식된 1940년대 이후 현대 의학이 자폐를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그려낸 자폐의 의학사이자 자폐의 인식이 질병에서 축복으로 바뀔 때까지 노력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자폐의 사회사다. 이 중요한 대작의 번역자 강병철은 2007년 이후 전문 의학 서적을 정확한 과학 용어와 유려한 우리말로 옮겨 한국 과학 출판의 발전에 이바지해 온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엄마 도감'은 모성의 현실을 아기의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어머니와 아이 사이의 공감 영역을 넓히는 독특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국경'은 이민과 난민의 문제가 심각한 세계에서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가로막는 국경의 의미에 관한 깊은 탐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받아 치열한 논의 끝에 공동 수상으로 결정했다.

'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은 평생 물고기 연구에 매진한 저자의 전문성, 해양생물학 학위까지 받으면서 바다를 예술로 만들어온 화가의 노력, 오랫동안 축적된 편집력이 합쳐진 현대판 '자산어보'라는 점에서, '북클럽 자본'은 작은 출판사와 저자가 세 해에 걸쳐 강의와 출판을 결합한 혁신적 출판 모델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아 함께 수상작에 올랐다.

어려운 환경에서 좋은 책으로 세상을 빚낸 수상자 모두에게 축하를 보낸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