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0만 명 환자 발생하는 뇌졸중… 위험 신호는?

입력
2021.12.22 18:39
혈압 관리·금연·식이 조절 등으로 예방 가능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반드시 위험 징후가 나타난다. 이를 ‘하인리히 법칙’으로 설명한다. 이 법칙은 대형 사고 발생 전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1920년대 미국의 한 여행보험사 관리자였던 허버트 하인리히는 7만5,000건의 산업 재해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1: 29: 300 법칙을 주장했다. 큰 산업 재해가 발생했다면 이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가 발생하고, 또 운 좋게 재난은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부상할 뻔한 사건이 300번 발생한다는 것이다.

뇌졸중도 마찬가지다. 뇌졸중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가 손상되는 질환이다. 질환 발생 전에 끊임없이 위험 신호를 보낸다.

조병래 인천성모병원 뇌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뇌졸중은 초기 증상을 놓치지 않아야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며 “뇌졸중은 겨울철에 특히 위험성이 높아지는 만큼 뇌졸중 위험 신호를 제대로 읽고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겨울철에 발생 위험 더 커져

겨울은 뇌졸중을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계절이다. 몸이 갑작스레 움츠러들듯 뇌혈관도 급격히 좁아지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에는 약을 복용해도 기온 변화로 평소보다 10㎜Hg 이상 최고 혈압이 높아질 수 있다.

중풍(中風)으로 많이 알려진 뇌졸중(腦卒中)은 한 번 발병하면 심각한 신체장애를 입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과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로 구분한다.

뇌졸중으로 지난해 병원을 찾은 인원은 60만7,862명이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그나마 2019년 61만3,824명보다는 줄었지만 2016년 57만3,379명보다는 6% 정도(3만4,481명) 늘었다.

뇌졸중은 퇴행성 뇌혈관 질환의 하나로 나이가 들수록 환자가 증가한다. 전체 뇌졸중 환자 10명 중 8명은 60대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다.

뇌졸중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다. 흡연ㆍ알코올ㆍ서구식 식습관ㆍ운동 부족 같은 잘못된 생활 습관이 성인병을 부른다. 여기에 스트레스가 더해져 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뇌졸중 발병 위험을 높인다.

나이가 들고 신체가 노화하면서 점차 약해진 뇌혈관도 영향을 준다. 이 밖에 비만ㆍ나쁜 LDL 콜레스테롤이 많은 이상지질혈증도 뇌졸중 발병과 관련 있다.

뇌졸중의 대표적인 위험 신호는 머리가 맑지 않은 멍한 두통이다. 이는 혈액 공급이 덜 되면서 머리에 일시적으로 피가 부족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고개를 위로 쳐들 때 어지러운 것도 의심해 봐야 한다. 뒷골로 가는 혈관이 순간 찌그러지면서 피가 통하지 않는다는 신호일 수 있다. 한쪽 팔·다리가 약하게 저리면서 감각이 둔해지거나 말을 할 때 새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이런 증상을 '일과성 뇌허혈 발작'이라고 부른다. 뇌혈관이 일시적으로 막혔다가 다시 뚫린 것이다. 일과성 뇌허혈 발작을 겪은 사람 중 5%는 한 달 이내, 3분의 1 정도는 3년 이내 뇌졸중이 발생한다.

조병래 교수는 “뇌졸중은 고혈압이 있으면 위험성이 더 커진다”며 “고혈압 환자의 뇌혈관은 겨울 추위에 발생하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터질 수 있고,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고 했다.

◇뇌졸중 골든타임 최대 4.5시간

뇌졸중이 발생하면 혈관이 막히거나 터진 뇌 부위에 따라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발음이 어눌하고 말을 잘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장애를 겪을 수 있다. 또 신체의 한쪽이 마비돼 한쪽 팔·다리를 움직이려고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거나 감각이 떨어진다.

심한 두통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를 하기도 한다. 시각장애가 발생해 한쪽 눈이 안 보이거나 물체가 겹쳐 보인다. 갑자기 어지럼증이 심해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걷고 손놀림이 자연스럽지 않을 수 있다.

뇌세포는 단 몇 분만 혈액공급이 되지 않아도 손상을 입는다. 한 번 죽은 뇌세포는 다시 살릴 수 없다. 뇌세포가 주변 혈관으로부터 산소와 영양분을 받으며 버틸 수 있는 시간, 즉 골든타임은 3~4.5시간이다.

일단 뇌졸중이 발생하면 늦어도 4.5시간 안에 응급 치료를 받아야 후유증과 사망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조병래 교수는 “아무리 의술이 발달하고 좋은 의료진과 첨단장비가 준비됐다 하더라도 뇌졸중 증상 발현 후 3~4.5시간이 지나면 뇌는 회복이 어렵다”며 “이상 증상을 느끼면 지체하지 말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119에 연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빠른 대처가 최고 응급 조치

뇌졸중 치료법은 크게 2가지다. 뇌경색으로 막힌 뇌혈관을 뚫을 때 혈전을 녹이는 용해제를 사용하는 ‘약물 재개통술’과 기구를 넣어 혈전을 제거하는 ‘기계적 재개통술’이다.

약물 재개통술은 뭉쳐 있는 혈전을 녹이는 혈전 용해제를 주입해 막힌 혈관에 다시 피가 돌도록 뚫어 준다. 하지만 뚫릴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고 약을 너무 많이 쓰면 자칫 혈관 파열로 뇌출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기계적 재개통술은 이 같은 약물 재개통술 단점을 보완한 치료법이다.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에 아주 얇은 와이어를 관통시킨 후 그 와이어를 따라 가느다란 관을 삽입한다. 이후 관을 빼면 관 속에 있던 스텐트가 쫙 펴지면서 혈전에 엉겨 붙는다. 이때 그물망을 제거하면 혈전도 함께 빠지므로 부작용을 크게 줄이면서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최근에는 뇌혈관 질환 중 50% 이상이 머리를 절개하지 않는 뇌혈관 내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다. 허벅지에 위치한 다리 혈관으로 1㎜ 이하의 얇은 기기를 뇌까지 넣어 치료한다.

뇌혈관이 터졌다면 메워 주고, 막힌 공간은 뚫어 준다. 뇌동맥류, 경동맥협착증, 뇌동정맥기형, 혈관성 뇌종양 등 모두 6가지 뇌혈관 질환에 적용할 수 있다.

조병래 교수는 “뇌수술이라면 지레 겁을 먹기 쉽지만 최근에는 머리를 열지 않고도 수술이 가능해졌다”며 “‘뇌는 시간이다(Brain is time)’라는 말이 있다. 뇌졸중은 빠른 시간만이 유일한 응급조치로, 증상 발생 후 반드시 3~4.5시간 이내에 병원을 찾아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뇌졸중을 예방하려면 혈관을 망가뜨리는 담배는 무조건 끊어야 한다. 음식은 싱겁게 먹고,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는 것이 좋다.

특히 뇌졸중 위험 인자 중 하나인 고혈압을 조절하는 데 효과가 있는 칼륨이 많은 과일과 채소를 충분히 섭취한다.

고혈압을 개선하는 운동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수영·속보·조깅 등 유산소운동을 하루 30분 정도 매일 꾸준히 한다. 고혈압 환자는 건강한 사람에 비해 뇌졸중 발생 위험이 4배 정도 높다.

심장은 멈추면 신속하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뇌는 특별한 응급 처치가 없다. 증상 발현 시 혈액순환을 돕는다며 손과 다리를 주물러 주기도 하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기에 전문 의료진이 도착할 때까지 올바른 자세로 가만히 눕혀 두는 것이 좋다.

다만 의식에 변화가 없는지 살펴보고 경련을 일으킨다면 고개를 옆으로 돌려 토사물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뇌졸중 자가 진단법 ‘FAST 법칙’]

▷F(Face Dropping): 한쪽 얼굴이 떨리고 마비된다.

▷A(Arm Weakness): 팔다리 힘이 없고 감각이 무뎌진다.

▷S(Speech Difficulty): 말할 때 발음이 이상하다.

▷T(Time to call 119): 증상이 생기면 곧바로 119로 전화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