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의 마지막 관문인 정시모집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는 과학탐구 영역 중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이 전원 정답 처리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 수시모집 일정이 뒤로 밀렸지만 오는 30일부터 시작하는 정시모집 일정에는 변화가 없다.
올 수능은 예상을 뛰어넘는 '불수능'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문·이과 통합형으로 치러져 수험생이 본인의 위치와 합격 가능 수준을 가늠하기 어렵다. 거기다 자연계열 수험생들이 대거 인문·상경계열 학과에 원서를 넣는 '교차지원'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에 대한 법원 판결로 수시모집 충원 마감일이 정시모집 바로 전날인 29일로 미뤄졌다는 점도 변수다. 정시접수 시작 전날 저녁에야 수시 이월(수시에서 탈락해 정시로 넘어가는) 인원 파악이 가능해 정시접수에서 극심한 '눈치작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정시모집 인원은 8만4,175명으로 지난해보다 4,102명 늘었다.
정시모집 원서 접수는 오는 30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로 수험생들은 가, 나, 다군에서 1곳씩 모두 3곳을 지원할 수 있다.
가군은 고려대, 연세대 등 139개교, 나군은 서울대, 서강대 등 143개교, 다군은 중앙대 등 124개교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서울대와 서강대 등이 나군으로 이동했고 고려대와 연세대는 가군으로 옮겼다.
정시모집 전형 기간은 가군 1월 6~13일, 나군 1월 14~21일, 다군 1월 22~29일이다. 합격자 발표는 2월 8일, 미등록 충원을 감안한 합격자 최종 통보는 2월 20일 오후까지다. 마지막 기회인 추가모집 원서 접수는 2월 22일부터이며 같은 달 28일 추가합격자 등록까지 마치면 올해 입시가 마무리된다.
육·해·공군사관학교, 국군간호사관학교, 경찰대학, 광주과학기술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울산과학기술원, 한국과학기술원,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한국폴리텍대학 등 특별법에 의해 설치된 대학은 모집군과 상관없이 복수지원이 가능하다. 수시모집 합격자는 정시모집 및 추가모집에 지원할 수 없다.
올해 정시모집 승부처는 국어와 수학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국어 영역에서는 표준점수 최고점이 149점으로 전년도 수능(144점)보다 5점이 올랐고 가장 어려웠다고 꼽히는 2019학년도 150점까지 근접했다. 표준점수는 수험생의 원점수가 평균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똑같은 원점수라도 시험이 어려워 평균이 낮으면 표준점수가 높게, 반대면 낮게 나온다.
수학 역시 전년도 수능은 물론 6월과 9월 모의평가보다도 어렵게 출제됐다. 수학 표준점수 최고점은 147점으로 전년도 수능 가·나형보다 10점 올랐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국어와 수학의 표준점수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서 이 두 과목이 당락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도 "문과는 국어 변별력이 절대적일 것이며 이과 최상위권에서도 수학보다 국어 변별력이 대단히 높을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또한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가 생기는 만큼 대학별 수능 반영 방법 변경사항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요대 자연계열은 미적분과 기하를 선택과목으로 지정했고, 가톨릭대, 동덕여대 등도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다. 서강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 주요대 인문계열 대학 역시 자연계열과 마찬가지로 수학 반영 비율을 40% 이상으로 높였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경희대 사회계열, 단국대, 숭실대 경상계열 등은 인문계열임에도 국어보다 수학 영역을 높게 반영한다"며 "상경계열을 목표로 하는 인문계열 수험생은 수학 영역 성적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시 대입전략을 짤 때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탐구영역 점수의 활용도다.
올해 수능에서 과학탐구 8개 과목별 표준점수 최고점은 68∼77점, 사회탐구 9개 과목별 표준점수 최고점은 63∼68점이다.
가령 사회탐구 정치와 법 만점자의 표준점수는 63점이지만, 사회문화 만점자는 68점이다. 또 화학Ⅰ은 68점이지만 지구과학Ⅱ는 77점이다. 같은 만점자여도 과목에 따라 표준점수 차이가 크다.
본인이 표준점수 측면에서 유리한 과목을 응시했다고 하면 표준점수를 그대로 반영하는 대학에 지원하는 것이 좋다. 반대로 불리한 과목을 봤다면 탐구영역의 백분위에 의한 변환표준점수를 반영하는 대학에 응시하는 게 낫다.
변환표준점수란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를 다양하게 선택한 수험생들의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를 보정해주기 위해 각 대학들이 별도로 부여한 성적을 말한다. 올해 정시에서는 30여 개 대학이 사용한다. 수도권에서는 가톨릭대,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세종대, 숙명여대, 숭실대, 아주대, 연세대, 이화여대, 인하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한양대(서울, 에리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수능 활용 지표에 따른 유불리를 수험생 각자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수능이 처음으로 문·이과 통합형으로 치러진 올해 입시에서는 수학 상위권을 싹쓸이한 자연계열 수험생들이 인문·상경계열에 지원하는 교차지원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입시정보 업체 유웨이가 자연계열 추정 수험생 1만,2000여 명을 표본 삼아 모의 지원 서비스를 해보니 이들 중 26.4%가 인문·상경 모집 단위에 지원했다. 지난해 8.93% 대비 3배나 증가했다. 종로학원이 이과 수험생 2,8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역시 26.8%가 인문계 대학을 선택했다.
모의지원이라 실제 대입 지원 결과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예전보다 교차지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올해 수학 영역 만점자는 총 2,702명이고 이들의 표준점수는 147점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선택과목별 표준점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학원가에서는 자연계열 학생들이 수학 영역에서 보다 높은 표준점수를 얻었을 것으로 본다.
자연계열에서 서울 시내 중위권 대학의 성적을 받은 수험생이 교차지원을 하면 일부 상위권 대학 인문계 학과 진학이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자연계 수험생이 대학 수준을 높여 인문계 모집단위로 교차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수학 반영 비중이 높은 상경계열에 자연계열 수험생들이 교차지원을 고려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불수능'의 영향으로 수능 최저 등급을 충족하지 못한 수험생이 적지 않을 전망이라 이들 중 정시로 이월되는 인원이 몇 명인지도 잘 파악해야 한다.
절대평가로 높은 등급 따기가 쉬웠던 영어가 작년에 비해 1등급 인원이 '반토막' 났고 출제 오류로 법원 판결 끝에 전원 정답 처리를 한 생명과학Ⅱ도 표준점수 최고점이 1점 떨어지며 1등급은 40명, 2등급은 79명이나 줄었다.
이영덕 소장은 "통합형 수능에선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 인문계 학생들이 불리하고 영어까지 어렵게 출제돼 수시에서 수능 최저를 맞추지 못하는 수험생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월 인원을 포함한 최종 모집 인원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