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루 파국' 못 막은 윤석열 리더십... "김종인에 해결 맡겼다"

입력
2021.12.2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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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선거에서 손 떼고
조수진, 4시간 뒤 "백의종군"

'단 18일'.

'울산 회동'으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원팀'이 되기로 한 이후 다시 파국을 맞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이 대표는 21일 당 선거대책위원회의 직책을 내려놓고 선거에서 손을 떼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윤 후보의 대선 사령탑인 선대위는 그야말로 '콩가루 난장판'이 됐다.

이 대표가 반발한 직접적 이유는 선대위 공보단장이었던 조수진 최고위원과의 마찰이다.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은 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 소속으로, 직제상 상하관계다. 조 최고위원은 수개월간 이 대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듯 행동했고, 이 대표는 특유의 벼랑 끝 승부수로 갈등을 폭발시켰다. 조 최고위원은 21일 공보단장직을 반납했다.

문제는 둘의 싸움이 윤 후보 선대위 난맥상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대선 승리를 너무 일찍 자신한 선대위는 그간 곳곳이 곪아가고 있었다. 이달 6일 선대위가 진통 끝에 출범한 지 불과 2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준석 "선대위 관둔다... 누구도 조수진 교정 안 해"

이 대표는 21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선대위 상임선대위원장과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의 역할을 그만하겠다고 선언했다. 당대표직은 지키겠다는 그는 "어떤 미련도 없다"고 했다.

파국의 발단은 20일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의 언쟁이었다. 조 최고위원은 선대위 비공개 회의에서 "내가 왜 당대표의 지시를 받아야 하느냐"고 사실상 항명했고, 기자들에게 이 대표를 비하하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공유했다. 두 사람은 지난 10월 곽상도 전 의원 제명 문제를 놓고도 충돌한 적이 있다. 이 대표는 제명을 주장했고, 조 최고위원은 "전두환 정권도 이러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윤석열 "그게 민주주의" 운운하며 사태 키워

윤 후보는 그러나 두 사람의 갈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행동했다. 20일 기자들과 만나 "이견이 있는 게 민주주의"라며 거리를 뒀다. 이는 조 최고위원을 두둔한 것으로 해석됐다. 21일 이 대표의 폭탄 선언이 예고된 뒤에도 윤 후보는 "시스템 문제라기보다는 우연히 발생한 일이다. 당사자들끼리 오해를 풀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조 최고위원에게 "이 대표에게 사과하라"고 지시했다고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 대표는 윤 후보의 이 같은 어정쩡한 태도를 향한 불만도 숨기지 않았다. 21일 기자회견에서 "(조 단장의 행위를) 누구도 교정하지 않았다"며 "이번 사태가 이틀간 계속됐다는 건 선대위 안에 내 역할이 없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윤 후보가 조 최고위원을 감싸며 자신을 궁지로 몰았다는 뜻이다.

"윤 후보, 그 측근들과 이 대표가 서로를 불신한다"는 건 그간 선대위에 공공연히 오르내린 얘기였다. 이 대표의 '선대위 셀프 OUT' 사태가 당내 갈등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라는 의미다.

조 최고위원은 이 대표가 기자회견을 한 뒤 4시간 만에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과 당원께 죄송하다. 백의종군하겠다"며 선대위 직책을 내려놓았다. 다만 이 대표를 향한 명시적 사과는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상처는 윤 후보가 고스란히 입게 됐다. 이달 초 이 대표의 당무 거부 사태에 이어 선대위 갈등 관리에 연거푸 실패하면서,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을 스스로 키웠다. 이 대표를 내칠 수도 없다. 이 대표가 2030세대 남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 '인공지능(AI) 윤석열' '댓글조작 잡는 크라켄' 등 그간 탁월한 선거 아이디어를 내왔다는 점에서 이 대표를 잃는 건 윤 후보에게 막대한 손실이다.

'절박함'이 없다... 김종인, 뒤늦게 "선대위 방해되면 조치"

윤 후보 선대위에 드리운 '오만의 그림자'가 이번 사태의 씨앗이 됐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선대위엔 '압도적 정권교체 여론'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도덕성 리스크' 등 덕에 윤 후보가 무난하게 정권을 잡을 거라는 낙관론이 퍼져 있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선대위 곳곳에서 경고음이 났지만, 윤 후보는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았다"며 "'선대위에 합류하겠다는 사람이 여의도에서 광화문까지 줄을 서 있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최근 분위기가 해이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오합지졸"(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라는 자조가 당내에서 나올 정도였다.

'당대표의 선거 이탈'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자성의 목소리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표가 대표직까지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또다시 대형 위기를 만난 윤 후보는 이 대표의 폭탄 선언 이후 몇 시간 동안 수수방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사태 수습은 이번에도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맡았다. 윤 후보는 이날 저녁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이 '이 문제는 나에게 일임해 달라'라고 해서 '잘 좀 해결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대선후보인 본인이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은 채 김 위원장에게 사실상 전권을 위임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주 동안 선대위 운영 실태를 보면, 이대로 갈 수는 없다"며 선대위 개편을 예고했다. 김 위원장은 윤 후보의 핵심 측근 그룹을 '파리 떼'라 부르며 견제해 왔다. 이에 조만간 선대위에 '피바람'이 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김 위원장은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욕을 먹더라도 내가 (선대위를) 완강하게 끌고 가려는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중간에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과감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손영하 기자
강유빈 기자
박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