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8일'.
'울산 회동'으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원팀'이 되기로 한 이후 다시 파국을 맞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이 대표는 21일 당 선거대책위원회의 직책을 내려놓고 선거에서 손을 떼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윤 후보의 대선 사령탑인 선대위는 그야말로 '콩가루 난장판'이 됐다.
이 대표가 반발한 직접적 이유는 선대위 공보단장이었던 조수진 최고위원과의 마찰이다.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은 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 소속으로, 직제상 상하관계다. 조 최고위원은 수개월간 이 대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듯 행동했고, 이 대표는 특유의 벼랑 끝 승부수로 갈등을 폭발시켰다. 조 최고위원은 21일 공보단장직을 반납했다.
문제는 둘의 싸움이 윤 후보 선대위 난맥상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대선 승리를 너무 일찍 자신한 선대위는 그간 곳곳이 곪아가고 있었다. 이달 6일 선대위가 진통 끝에 출범한 지 불과 2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 대표는 21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선대위 상임선대위원장과 홍보미디어총괄본부장의 역할을 그만하겠다고 선언했다. 당대표직은 지키겠다는 그는 "어떤 미련도 없다"고 했다.
파국의 발단은 20일 이 대표와 조 최고위원의 언쟁이었다. 조 최고위원은 선대위 비공개 회의에서 "내가 왜 당대표의 지시를 받아야 하느냐"고 사실상 항명했고, 기자들에게 이 대표를 비하하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공유했다. 두 사람은 지난 10월 곽상도 전 의원 제명 문제를 놓고도 충돌한 적이 있다. 이 대표는 제명을 주장했고, 조 최고위원은 "전두환 정권도 이러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윤 후보는 그러나 두 사람의 갈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행동했다. 20일 기자들과 만나 "이견이 있는 게 민주주의"라며 거리를 뒀다. 이는 조 최고위원을 두둔한 것으로 해석됐다. 21일 이 대표의 폭탄 선언이 예고된 뒤에도 윤 후보는 "시스템 문제라기보다는 우연히 발생한 일이다. 당사자들끼리 오해를 풀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가 조 최고위원에게 "이 대표에게 사과하라"고 지시했다고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 대표는 윤 후보의 이 같은 어정쩡한 태도를 향한 불만도 숨기지 않았다. 21일 기자회견에서 "(조 단장의 행위를) 누구도 교정하지 않았다"며 "이번 사태가 이틀간 계속됐다는 건 선대위 안에 내 역할이 없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윤 후보가 조 최고위원을 감싸며 자신을 궁지로 몰았다는 뜻이다.
"윤 후보, 그 측근들과 이 대표가 서로를 불신한다"는 건 그간 선대위에 공공연히 오르내린 얘기였다. 이 대표의 '선대위 셀프 OUT' 사태가 당내 갈등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라는 의미다.
조 최고위원은 이 대표가 기자회견을 한 뒤 4시간 만에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과 당원께 죄송하다. 백의종군하겠다"며 선대위 직책을 내려놓았다. 다만 이 대표를 향한 명시적 사과는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상처는 윤 후보가 고스란히 입게 됐다. 이달 초 이 대표의 당무 거부 사태에 이어 선대위 갈등 관리에 연거푸 실패하면서,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을 스스로 키웠다. 이 대표를 내칠 수도 없다. 이 대표가 2030세대 남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 '인공지능(AI) 윤석열' '댓글조작 잡는 크라켄' 등 그간 탁월한 선거 아이디어를 내왔다는 점에서 이 대표를 잃는 건 윤 후보에게 막대한 손실이다.
윤 후보 선대위에 드리운 '오만의 그림자'가 이번 사태의 씨앗이 됐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선대위엔 '압도적 정권교체 여론'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도덕성 리스크' 등 덕에 윤 후보가 무난하게 정권을 잡을 거라는 낙관론이 퍼져 있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선대위 곳곳에서 경고음이 났지만, 윤 후보는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았다"며 "'선대위에 합류하겠다는 사람이 여의도에서 광화문까지 줄을 서 있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최근 분위기가 해이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오합지졸"(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라는 자조가 당내에서 나올 정도였다.
'당대표의 선거 이탈'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자성의 목소리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표가 대표직까지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또다시 대형 위기를 만난 윤 후보는 이 대표의 폭탄 선언 이후 몇 시간 동안 수수방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사태 수습은 이번에도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맡았다. 윤 후보는 이날 저녁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이 '이 문제는 나에게 일임해 달라'라고 해서 '잘 좀 해결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대선후보인 본인이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은 채 김 위원장에게 사실상 전권을 위임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주 동안 선대위 운영 실태를 보면, 이대로 갈 수는 없다"며 선대위 개편을 예고했다. 김 위원장은 윤 후보의 핵심 측근 그룹을 '파리 떼'라 부르며 견제해 왔다. 이에 조만간 선대위에 '피바람'이 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김 위원장은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욕을 먹더라도 내가 (선대위를) 완강하게 끌고 가려는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중간에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과감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