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떼라'는 러시아의 재촉에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리의 요구를 나토가 거부할 경우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초강경 경고를 보낸 반면 나토는 러시아의 요구를 즉각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수용하지도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문제를 풀기 위한 러시아와 나토 간 협상이 시작됐다"면서도 "나토 관리들은 러시아의 요구를 당장 거부하기를 피하고 싶어 한다"고 서방권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문제를 두고 미국·나토와 대립 중인 러시아는 동유럽권에서 나토의 군사활동을 포기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안전 보장안'을 지난 15일 미국에 전달했다. 이 제안에서 러시아는 나토를 향해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에서의 군사 활동 중단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 △상호 영토 타격권 내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 금지 등을 요구했다.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동구권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는 일종의 최후 통첩이다.
러시아는 연일 나토를 향해 "답변을 신속히 달라"고 재촉하고 있다. 달라세르게이 라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20일 "미국은 이번 사안을 천천히 진행시키려 하지만, 우린 시급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며 신속한 답변을 재촉했다. 심지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 동료들의 명백히 공격적인 노선이 지속될 경우 우리는 적합한 군사ㆍ기술적 조치를 취하고, 비우호적 행보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나토가 자신들의 제안을 거부할 경우 군사 옵션을 사용하겠다는 뜻까지 내비쳤다.
나토는 안절부절못하다. 러시아의 요구가 괘씸하지만 이를 거부할 시 일어날 수 있는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토의 한 고위 관계자는 FT에 "러시아의 요구에 노(No)라고 답하는 순간 러시아와의 더 이상의 협상 여지가 사라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토로했다. 최소 10만 명의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에 집결시켜 놓고 "우리 제안을 거부하면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러시아의 제안을 당장 명시적으로 거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FT는 "러시아와의 협상을 어떻게 진행하고 누가 참여할 것인지에 대한 나토 자체적인 합의도 없는 상황"이라고 나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망 가동도 일부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21일 "러시아에서 벨라루스·폴란드를 거쳐 독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가스관'을 통한 가스 공급이 이날 중단됐다"고 독일 에너지 운송기업인 가스케이드를 인용해 보도했다. 가스 공급 중단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유럽 내 가스 가격 급등은 물론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