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치러진 홍콩 입법회(우리의 국회) 선거 투표율이 사상 최저인 30%에 그쳤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중국이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기조로 선거제를 전면 개편하면서 야권 후보들의 출마가 봉쇄된 것에 항의해 유권자들이 대거 등을 돌렸다. 높은 투표율로 홍콩에 대한 강경 정책의 정당성을 과시하려던 중국의 계획은 틀어졌다.
20일 홍콩 공영방송 RTHK와 명보 등에 따르면, 홍콩 선거관리위원회는 전날 진행된 입법회 선거에 전체 유권자 447만2,863명 중 135만680명이 참여해 투표율이 30.2%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2016년 입법회 선거 투표율 58.28%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다. 이전까지 최저 투표율은 2000년의 43.57%였다.
2019년 11월 입법의원(구의원) 선거 때의 투표율 71%와 비교하면 격차가 더 크다. 입법의원 선거 당시 민주진영은 반중 열기에 힘입어 의석의 86%를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30일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잇단 체포와 구속, 해외 망명에 민주진영이 사실상 궤멸되면서 무게 추가 친중파로 급속히 기울었다.
이번 선거는 중국이 3월 홍콩 선거제를 개편한 이후 처음 치러졌다. 의원 수를 70명에서 90명으로 늘렸지만 주민들이 직접 뽑는 지역구 의원 수는 35명에서 20명으로 줄였다. 나머지 30명의 직능대표와 중국이 장악한 선거위원회가 지명하는 40명은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그나마 20명 남은 지역구에 출마하려 해도 충성맹세를 비롯한 홍콩 정부의 자격심사를 거쳐야 했다. 이에 반발해 범민주진영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선거에 출마한 전체 153명의 후보 가운데 중도성향 10명을 제외하곤 모두 친중파로 꾸려졌다.
대신 야권은 선거제 개편에 항의해 투표 보이콧과 백지투표 운동을 벌였다. 낮은 투표율로 선거의 정당성을 흔드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경쟁이 사라진 일방적 선거에 유권자들의 관심도 싸늘하게 식었다.
홍콩 정부는 투표율을 높이려 안간힘을 썼다. 중국 본토 거주 홍콩인들의 투표 참여를 위해 처음으로 접경지역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격리를 면제했다. 버스와 지하철, 트램 등 대중교통은 무료로 운행했다. 동시에 선거 방해 혐의로 해외에 머물고 있는 네이선 로 등 민주운동가 7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투표 방해나 무효표 독려 행위를 할 경우 최대 3년 이하 징역이나 20만 홍콩달러의 벌금에 처해질 것이라고 누차 경고하면서 관련 혐의로 10명을 체포하고 2명을 기소했다.
투표 마감 후 캐리 람 행정장관은 성명을 내고 “130만 명 이상의 유권자가 오늘 표를 행사한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며 "그들의 표는 입법회 의원 선출뿐만 아니라 개선된 선거제에 대한 지지를 보여준다"고 자화자찬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홍콩 선거를 파괴하려는 외세의 거짓말과 모략을 부숴버리고, 새로운 입법회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반영한 것”이라고 가세했다.
반면 ‘홍콩 워치’는 “정부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출마하지 않은 오늘 입법회 선거는 사기"라고 비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홍콩 전역의 투표소에는 사람들이 적었지만 그 외 다른 지역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버스와 지하철 무료 승차를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