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식 종전선언'하면 한미연합훈련 1순위로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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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0 12:00
<25> 세상 어디에도 없는 ‘종전선언’

편집자주

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미국(유엔), 북한, 중국이 한국전쟁을 잠시 멈추기로 정전협정을 체결합니다. 3년 1개월을 끌어온 ‘지옥 같은 전쟁’이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남북에서 521만 명이 넘는 사람이 숨지거나 실종됐습니다. 물론 이 숫자를 줄일 순 있었습니다. 1951년 7월 개성에서 정전협정을 위한 첫 회담이 열린 이후, 실제 도장을 찍기까지 2년의 세월(총 765차례 회담)이 걸리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그간 피로감이 누적된 탓인지, 이날 판문점 조인식에 참여한 각국 수석대표는 악수도 없이 헤어졌습니다. 실제 서명 주체였던 마크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김일성 북한군 총사령관, 펑더화이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은 한자리에 모이지 않고 각각 경기 문산, 평양, 개성에 흩어져 협정문에 사인했고요. 정작 전쟁 당사자인 남측 대표 이름은 빠졌습니다. 이를 두고 당시 북진통일을 원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괴뢰인 북한을 대등한 존재로 인정할 수 없다”며 정전협정에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설과 우리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 즉 미국에 넘긴 만큼 별도로 한국군 대표의 서명이 필요 없었다는 설로 나뉩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어정쩡한’ 정전이었기에 북한은 제멋대로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의미로 이날을 ‘전승절’로 못 박았습니다. 이에 질세라 이승만 정부는 정전 대신 ‘전쟁을 잠시 쉬고 있다’는 뜻의 휴전이란 용어를 써가며 언제든 북으로 진격할 수 있다는 기세를 보였고요.

물론 어느 누구도 이 ‘불안정한 상황’을 방치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정전협정 서문에 “협정 발표 직후 3개월 안에 한 급 높은 정치회담을 소집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합의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전쟁을 완전히 끝내는 평화협정(조약)을 3개월 내에 체결하자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던 회담이 결렬돼 전쟁을 매듭지을 기회를 놓쳤고 이후 7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전쟁을 끝내지 못한’ 국가가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종전선언에 공을 들이는 배경입니다.

종전선언은 굳이 ‘안 해도 되는’ 이벤트?

종전선언은 대외적으로 “전쟁이 끝났다”고 공표하는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합니다. 아무런 법적 구속력, 효력이 없습니다. 정식 외교 용어도 아닙니다. 전쟁을 국제법적으로 끝내려면 종전선언이 아닌 평화협정을 통해 전쟁의 책임과 배상을 묻는 총결산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윤곽을 제시하는 종잇장일 뿐이고요. 통상 ‘평화협정 1조’의 문구를 일컫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굳이 안 해도 되는’ 절차인 겁니다. 실제로 영국과 청나라 간 아편전쟁을 끝냈던 1842년 난징조약, 제1차 세계대전을 종결하며 독일에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부과했던 1919년 베르사유조약, 베트남전을 마무리한 1973년 파리평화협정에서도 별도의 종전선언은 없었습니다.

일각에선 종전선언의 대표 사례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중재로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체결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드는데요. 이 역시도 결국은 평화협정의 일부였습니다. 선언 이후 6개월 만에 평화조약을 맺고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던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하면서 전쟁이 완전 종식됐기 때문입니다.

전례 없는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종전선언은 조금 다릅니다. 전쟁을 끝내는 평화협정을 언제 체결할지 담보되지 않은 탓입니다. ‘전례 없는’ 종전선언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6·25 전쟁은 어느 일방의 뚜렷한 승리로 끝나지 않아 끝맺음이 더 중요합니다. 북핵 문제를 총괄했던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종전선언을 평화협정에서 분리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고 전례도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현 정부는 오히려 한반도의 특수성을 감안, 종전선언부터 맺고 상호 불신을 걷어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북한의 비핵화가 언제 가능할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 종전선언을 통해 대화 모멘텀이라도 만들자는 겁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한반도 맞춤형 종전선언’을 창조하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2006년 말 노무현 정부에서 처음 언급됐던 종전선언이 정권교체로 불발되고, ‘남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봄기운이 완연했던 2018년과 2019년, 종전선언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마침표를 찍지 못한 문 대통령 입장에선 임기 종료를 앞두고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적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효력은 없지만 파장이 큰 종전선언을 구실로 북한이 한미에 보낼 청구서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종전선언이 성사되면 올 3월 예정된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연합훈련)부터 영구 중단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종전선언=북미 적대관계 청산’

근거 없는 불안감은 아닙니다. 종전선언은 사실상 정전협정에 서명한 북미가 “우리가 더 이상 적이 아니다”라고 대외적으로 선포하는 겁니다. ‘또 다른 서명국인 중국은 어떤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중국은 이미 1979년 미국과 역사적 수교를 맺으며 적대관계를 청산했습니다. 미중 국교 정상화 직후 중국 지도자 가운데 처음으로 방미한 덩샤오핑이 카우보이 모자를 쓰며 미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은 냉전시대 종식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고요.

협정에선 빠져 '당사자 적정성 논란'이 있는 우리나라와 중국도 1992년 수교를 맺으며 관계를 정상화했습니다. 일각에선 2018년 4ㆍ27 판문점 선언과 9ㆍ19 군사합의, 평양공동선언을 남북 간 종전선언 착수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상호 간 적대적 행위를 전면 중단하기로 못 박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북미 간에는 70년 동안 진전이 없다시피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향후 종전선언의 주연은 북한과 미국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북미가 적대관계를 끝내면 한미훈련도 중단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종전선언을 하겠다면서 북한을 적으로 상정한 훈련을 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으니까요. 2010년 당시 훈련 시나리오에 ‘김정일 생포 작전’이나 ‘평양 점령’이 포함됐을 정도로 한미훈련은 북한 입장에선 치를 떨 만한 군사행동입니다.

전문가들도 북한이 종전선언의 대가로 한미훈련 중단을 1순위로 꺼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가장 현실성이 높으니까요. 우리 정부는 북한의 주한미군 철수 요구에 대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미군이 주둔한다”는 논리로 방어가 가능하지만 한미훈련은 마땅한 핑곗거리가 없습니다. 북한도 이를 모를 리 없고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앞서 10월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종전선언의 선결 조건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광물 해외 수출 허용을 내걸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에 한 달 앞서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이 진정으로 평화와 화해를 바란다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합동군사연습과 전략 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해야 한다”고 강조했고요.

종전선언 하면 ‘한미훈련 중단’ 1순위로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받을 만한 카드입니다. 문 대통령부터 올해 신년연설에서 “한미훈련도 크게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이라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틀 안에서 논의될 수 있는 문제”라며 운을 뗐습니다. 1년에 두 차례 한미훈련을 앞두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훈련을 중단하자”는 여권 인사들의 주장은 이젠 낯설지 않을 정도고요.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이 훈련이 한미연합 방위력의 근간인 탓입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이상, 절대 거래할 수 없는 카드인 거지요. 더구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한미동맹 족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던 전임 도널드 트럼프와는 180도 다른 인물입니다. 트럼프가 “훈련에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충동적으로 훈련을 취소했던 2018년과 같은 일이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지요. 무엇보다 실효성 있는 핵확산금지조약(NPT)도 탈퇴해 핵을 개발한 북한에 한 방 먹었던 미국 입장에선 법적 구속력이 없는 종전선언에는 더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전선언에 과도한 외교력 낭비

그렇다면 우리 정부와 종전선언 문안 협의에 들어간 미국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최근 한미 간 문안이 최종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소식이 들렸는데요.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중시해 동맹국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미국이 받아들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입니다.

실제 거의 완성된 종전선언문은 북한이 전향적으로 해석할 만한 문구가 빠진 ‘밋밋한 형태의 성명’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도 종전선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실제 성사에 무게를 뒀다면 북한 반응이 나오기도 전에 미국이 최근 반인권행위를 이유로 리영길 국방상과 북한중앙검찰소에 대한 신규 대북 제재를 단행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종전선언은 다른 말로 북미 정상이 만나는 것”이라며 “이란 핵문제, 대중국 견제 등으로 정신이 없는 바이든 대통령이 과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의향이 있겠느냐”고 진단했습니다.

‘속 빈 강정’이 될 종전선언문에 북한이 호응할지도 미지수입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종전선언에 대해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면서도 “애써 웃음 지으며 종전선언문이나 낭독하는 것이 누구에게는 간절할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가 없다”며 냉·온탕을 오가는 발언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의지가 있는지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김홍균 전 본부장은 “적어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핵 문제를 해결하고 미국과 수교하려는 생각이 있었는데 핵무력을 완성했다는 김 위원장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있는지는 더 따져봐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도, 실익도 장담하지 못할 종전선언에 문재인 정부가 온갖 외교력과 정치자산을 동원해 매달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 문 대통령의 대내외 행보가 ‘기승전-종전선언’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는 사이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중간에 끼인 우리는 더 과도한 선택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요소수 대란’ 등으로 외교적으로 탄탄하지 못하면 당장 우리 국민의 삶이 멈춘다는 것도 실감했고요. 종전선언 말고도 챙길 현안이 한둘이 아닙니다.


정승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