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관통할 새 통일론… 김유신을 '반가 사유'하다

입력
2021.12.19 09:30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
학술심포지엄 16일 경주 한화리조트서
좌장에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
통일역사관 등 5개 주제별 전문가 토론

"신선사 마애불상군 조성 시기 6세기 말~7세기 초 ‘신라 최초’ 추정 단석산은 신라 미륵 신앙의 메카 삼국통일론-백제통합론 논란 넘어서야"

통일은 도둑고양이처럼 오지 않는다. 평화의 성은 평화라는 돌만으로 쌓을 수 없다.

‘삼국 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 학술 심포지엄’이 16일 오전 9시 경주 한화리조트 연오랑에서 열렸다.

심포지엄은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문화 유산 △관광 자원화 △마애불 등 불교 유적 △김유신 인물론과 통일론 △통일 역사관 등 5개 분야별 전문가가 나서 주제 발표하고 개별 토론과 종합 토론을 벌였다.


기조 강연

주보돈 교수는 기조 강연 ‘신라의 삼국 통일을 둘러싼 몇몇 논의’에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삼국 통일론’은 신라가 백제를 정복했을 뿐이라는 ‘백제통합론’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당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고 강역에서 고구려 영토를 상실케 했다는 점에 근거한 반론이었다. 이는 삼국 통일론이 통일 시점(676년), 통일 후 영토(대동강~원산만), ‘일통삼한’ 의식 등 관련 사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아 드러난 허점”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렇다고 백제통합론이 옳은 것은 아니다. 신라가 처음부터 ‘삼국을 통일(일통삼한)하겠다는 의식’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백제의 공격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끌어들인 당을 결국 몰아냈고 백제·고구려 유민에게 본국의 관함을 고려해 관등을 주는 9주5소경제를 시행했다. 이에 따른 군사조직을 재편하는 9서당제도 실시했다. 삼국 통합을 위한 신라의 이러한 조치는 사후적이지만 일통삼한 의식과 정책이 형성·실현된 결과였다는 점에서 삼국 통일론은 부인할 수 없는 정설”이라고 밝혔다.

문화 유산

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은 ‘단석산과 김유신 장군 관련 문화 유산’ 주제 발표에서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단석산 원래 이름은 ‘월생산(月生山)’인데 실제 ‘달내산’으로 불렸으며 단석산이라는 이름은 고려말~조선초 김유신과 관련하여 생겼다.

신선사는 삼국 말 모량부(잠탁부) 부장에 의해 창건했다”면서 단석산 현장을 답사해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표고 753m 지점 방내리마애선각불좌상 옆 석굴이 김유신 장군의 수도 석굴로 가장 유력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토론자 박홍국 위덕대 교수는 ‘삼국사기의 중악 석굴(中嶽石窟)은 팔공산 중악’이라는 다수설과 ’치암집‘의 기록 등을 근거로 반론을 제기했다.

관광 자원화

탁정은 한국문화재돌봄협회 사무국장과 김진훈 박사(관광학) 공저인 ‘김유신 장군 유적 관광 자원화와 경주 단석산의 장소성에 대한 연구’ 주제 발표에서 탁정은 국장은 “역사문화소산을 활용한 관광자원화가 활발한 시점에서, 탈근대관광의 진정성(실존적 진정성)에 대한 이해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제고시킬 방안으로 장소성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문화자원의 의미와 가치 창출을 위한 노력, 즐기고 느끼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하여 단석산의 장소성을 구현해달라”고 주문했다.

토론에 나선 송재일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업 추진에 대한 지역주민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며, 관광객의 입장에서 관광자원화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애불 등 불교 유적

‘단석산 불교 유적의 의미와 가치 – 신선사 마애불을 중심으로’ 주제 발표에 나선 양은경 부산대 고고학과 교수는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은 동ㆍ남ㆍ북면 거대 불상ㆍ보살 삼존상군과 북면 반가상ㆍ불보살상군으로 나눌 수 있다. 모두 미륵 신앙과 화랑이 결합한 신라식 미륵 하생 신앙의 결과물로 추정한다.

신라식 미륵 신앙은 반가사유상이라는 불교 존상으로 시각화한다. 조성 시기는 삼존불입상의 경우 6세기 말~7세기 초, 반가상은 7세기 초로 비정한다. 이 시기가 맞다면 단석산 신선사 불교 유적은 신라 최초의 마애불로 불교 문화사적 의미가 크다. 신선사 마애불에는 발원자, 후원자를 밝힌 조상기를 새겼다. 드문 경우다.

또한 반가상은 보살상인데도 불상을 협시불로 두고 있다. 단석산 신선사 불교 유적은 신라 미륵 신앙의 메카라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한정호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토론에서 미륵불입상(삼존불입상) 조성 시기(경주지역 현존 최고) 비정의 중요성을 짚으며 북면 불보살상과 보살반가상의 배치가 서사적 구성(이야기)을 담고 있는지 물었다.

김유신 인물론과 통일론

‘신라의 삼국 통일과 김유신’을 주제로 발표한 김수태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는 김유신 인물론과 김유신 삼국 통일론의 형성ㆍ변화를 중심으로 삼국 통일의 요인을 살펴보면서 “김유신은 무인 귀족으로서 단순한 장군이 아닌 군장ㆍ정치가ㆍ경세가였다. 외교에도 뛰어났다. 660년 ‘때가 됐다’며 백제 공략 출병한 것은 대야성 공격 후 12년 동안 백제의 민심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였다.

그가 외형적 통일을 의미하는 삼국통일론에 이어 내부적 통일을 의미하는 삼한통일론을 강조한 것은 대당 전쟁을 벌이고 있던 신라의 입장에서는 삼국의 단결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영호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토론에서 삼국 통일의 의미와 삼국 통일론, 삼한 통일론에 대한 보충 설명을 요청하면서 '일통삼한'의 개념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통일 역사관

‘삼국 통일에 대한 남북한의 역사 인식 차이와 통일 역사관 수립 방안’의 주제 발표에서 오기현 경주문화재단 대표는 “해방 이후 유물 사관을 기초로 형성된 북한의 사회주의 역사학은 1970년대 ‘인민 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보는 주체 사관을 바탕으로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이러한 북한의 역사 인식은 남북한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삼국 통일에 대한 남북의 인식 차이가 그 예이다. 지금까지 남북이 형성한 가치와 문화를 바탕으로 이질성을 인정하고 지속적이고 다양한 통합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에 나선 신경준 고대문화상징연구소장은 “삼국은 600여 년 동안 100여 회 전쟁을 벌인 경쟁관계였는데 신라가 삼국 전쟁을 일으킨 주범인가. 삼국 통일 후 대외 전쟁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삼국 통일이 평화 정착에 기여한 것 아닌가.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만주 땅이 우리 땅이 됐을 것이라는 주장 역시 가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종합 토론

“김유신에 대한 사료는 많다. 그런데도 김유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매우 부족해 안타깝다.”

“남북한 역사 인식의 차이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경직돼 있고 심각하다.”

“역사적 사실이나 유물·유적을 관광 자원화할 때 팩트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굳이 경주라는 역사의 현장에 올 필요가 없지 않을까.”

“성역화 사업은 차근차근 자료를 찾아 검증하고 아이디어를 심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석산이 아니면 안 된다는 태도보다 단석산도 그 중 하나이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김유신, 단석산 마애불, 발원자, 유적 등에 관한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기대한다.”

성역화 사업을 주관하는 도선 천주사 주지 스님은 “김유신은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연구부터 부족하다. 삼국통일론과 백제통합론에서 보듯 김유신과 삼국 통일을 둘러싼 논의는 남과 북이, 동과 서가 첨예하게 갈려 있기도 하다.

내년에도 이어질 단석산 김유신 장군 성역화 학술 심포지엄이 김유신 장군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논란과 갈등을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화합과 포용의 새로운 통일론을 여는 길목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윤곤 기자 seou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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