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7일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정몽구 명예회장 시절 구성된 부회장단을 사실상 해체하면서 친정 체제를 확고히 했다. 또 40대를 앞세운 최대 규모 임원 인사로 정보통신기술(ICT), 자율주행 등 신기술ㆍ사업 분야에서의 혁신 의지도 분명히 했다.
이날 인사에서는 사장급 고위직과 일반 임원급 모두에서 세대교체 바람이 뚜렷했다. 우선 윤여철 그룹 부회장과 하언태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울산공장장), 이원희 현대차 품질 담당 사장, 이광국 현대차 중국사업 총괄 사장이 고문으로 선임되며 일선에서 물러났다. 디자인경영담당 피터 슈라이어 사장과 연구개발본부장 알버트 비어만 사장도 담당분야 어드바이저 역할로 물러섰다.
지난해 정의선 회장 취임 직후 정 명예회장의 최측근이었던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과 정진행 현대건설 부회장을 고문으로 위촉한 데 이어, 이번에 윤 부회장까지 물러나면서 현대차그룹 부회장단에는 정 회장의 매형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만 남게 됐다.
부회장과 사장 승진 인사는 이뤄지지 않으면서, 12개였던 사장 자리도 7개로 줄었다. 제네시스 브랜드를 이끄는 장재훈 사장과 연구개발본부를 맡은 박정국 사장, 기획조정실의 김걸 사장, 공영운 전략기획 사장, 지영조 전략기술본부 사장, 신재원 도심항공교통(UAM) 담당 사장, 송창현 TaaS(서비스형 모빌리티) 사장 등은 유임됐다. 취임 2년 차를 맞은 정 회장이 과감한 세대교체와 함께 직할 체제를 강화해 조직 장악력을 높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임원급에서도 대거 젊은 피가 수혈됐다. 역대 최다인 203명(현대차 66명, 기아 21명, 현대모비스 17명, 현대건설 15명, 현대엔지니어링 15명 등)의 신규 임원 승진자 가운데 40대가 3분의 1에 달했다.
특히 연구개발(R&D) 부문 신규 임원이 37%나 돼 눈길을 끌었다. 현대차그룹 미래사업의 바탕이 되는 인포테인먼트와 ICT, 자율주행 신사업 분야에서 승진 인사가 주로 나왔다.
대표적 인물이 부사장으로 승진한 추교웅 인포테인먼트개발센터장ㆍ전자개발센터장, 김흥수 미래성장기획실장ㆍEV사업부장, 임태원 현대차 기초선행연구소장·수소연료전지사업부장 등이다. 추 부사장은 향후 커넥티드카 대응을 위한 신규 플랫폼 및 통합제어기 개발을, 김 부사장은 그룹 차원의 미래기술 확보, 수소연료전지 전문가인 임 부사장은 수소 관련 사업을 총괄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NHN 최고기술경영자(CTO) 출신 진은숙씨가 부사장급인 ICT혁신본부장에 선임됐다. 진 부사장은 데이터와 클라우드, IT서비스플랫폼 개발 전문가로, 향후 그룹의 IT와 소프트웨어 인프라 관련 혁신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사업부장 장웅준 상무와 인공지능 싱크탱크인 AIRS컴퍼니장 김정희 상무도 이날 각각 전무로 승진했다. 특히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 박사 출신인 장 전무는 1979년생으로 올해 42세이다.
외부 영입보다는 내부 발탁 인사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현대차 디자인을 맡았던 슈라이어 사장의 역할은 전무에서 승진한 이상엽 현대차 디자인담당 부사장이 맡는다. 또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 자리는 부본부장을 맡아온 박정국 사장이 이어받는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그룹의 역량을 결집해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미래 지속 가능한 사업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인사"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