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민의 B:TS] 하이브의 '청춘' 앓이

입력
2021.12.20 08:00


편집자주

[홍혜민의 B:TS]는 'Behind The Song'의 약자로, 국내외 가요계의 깊숙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드립니다.

하이브의 '청춘' 앓이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그룹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히트 초석이 됐던 청춘 서사가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를 아우르는 세계관으로 스며든 지 어느덧 8년 째다.

시작은 방탄소년단이었다. 지난 2013년 데뷔한 방탄소년단은 '학교 3부작' '청춘 2부작' '윙스' '러브유어셀프' 시리즈 등으로 이어진 연작 형태의 스토리텔링으로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단상을 자신들의 세계관에 녹여냈다.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를 휩쓰는 팝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도 청춘 서사를 기반으로 한 세계관의 힘이 컸다. 치열한 고민과 성장을 거듭하는 청춘의 현실적인 모습은 글로벌 팬들의 공감을 자아냈고, 방탄소년단은 청춘의 대변인이자 동반자로 세계 음악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다.

'화양연화(花樣年華)'에서 파생된 이들의 청춘 이야기는 'BU' 세계관으로 확장됐다. 멤버들을 주인공으로 한 세계관을 통해 이들은 보다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거듭하고, 이는 굿즈부터 웹툰, 소설,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활용된다. '원소스멀티유즈'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에게 '청춘 서사'는 둘도 없는 효자 아이템인 셈이다.

방탄소년단의 전례없는 성공 속 (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다수의 레이블을 거느린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 하이브로 성장했다. 방탄소년단 외에는 전무하다시피 했던 아티스트 라인업도 탄탄해졌다. 여러 기획사를 인수합병한 끝에 지금은 세븐틴 뉴이스트 엔하이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프로미스나인 등 굵직한 K팝 아이돌들이 하이브에 몸을 담고 있다.

한층 몸집을 불린 만큼 하이브는 현재 K팝의 진일보를 이끌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세계관' 만큼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정작 청춘 서사를 기반으로 성공한 방탄소년단은 이제 '세계인의 공감'을 키워드로 메시지를 확대하고 나섰으나, 이를 제외한 하이브는 여전히 '청춘 앓이' 중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엔하이픈, 결국은 '청춘 서사'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 중 대표적으로 '청춘 서사'의 전철을 밟고 있는 팀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엔하이픈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10대를 주 타깃으로 하는 틴팝(TEEN-POP) 장르와 상통하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방황'을 세계관의 메인 스토리로 택했다. 혼란스럽고 위태롭지만 '서로 다른 너와 내가 하나의 꿈으로 모여 함께 내일을 만들어간다'라는 팀 명처럼 멤버들(이는 곧 청춘을 의미한다.)이 함께 꿈과 목표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를 노래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Z세대의 우울함과 분노, 불안 속에서 끊임없는 투쟁 끝 진정한 꿈과 자아를 찾는다는 설정은 방탄소년단의 청춘 서사와 꽤나 닮아있다.

팀 결성 전 방송됐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부터 '데미안'을 모티브로 한 세계관의 출발을 암시했던 엔하이픈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엠넷 '아이랜드'는 '새가 알(하나의 세계)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것 처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라는 데미안의 내용처럼 '아이랜드'라는 일련의 과정을 깨고 나와야 진정한 자아를 깨닫고 성장할 수 있다는 스토리텔링을 제시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엔하이픈이 세계관의 시작을 위해 차용했던 '데미안'이다. '데미안'은 방탄소년단의 청춘 서사에서도 중요하게 그려졌던 세계관 요소로, 이는 곧 하이브 레이블즈를 관통하는 주요 세계관이기도 하다. '데미안'이라는 공통점에서 출발한 이들의 서사 역시 청춘으로 귀결된다.

청춘이 처한 부당한 현실에 맞섰던 방탄소년단에 이어 엔하이픈 역시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딜레마 속에서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소년(청춘)들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욕망의 모순과 충돌 속 당황스러움을 느꼈던 소년들은 이후 혼돈과 질풍노도 앞에서 고뇌하는 청춘의 단상을 그린다. 멤버들 간 연결을 통해 서로를 발견하고 성장한다는 지향점 역시 비슷하다.

이같은 하이브의 청춘 프레임은 비단 하이브 데뷔 아티스트에만 씌워지는 것이 아니다. 일례로 과거 쏘스뮤직의 인수합병 이후 하이브 레이블즈에 몸을 담았던 여자친구 역시 소속사의 변화와 함께 갑작스러운 세계관 도입을 알린 바 있다.

이들은 해체 전 마지막 연작이었던 '回'(회) 시리즈에서 수많은 선택과 유혹을 지난 끝에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관점으로 온전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데뷔 이후 성장을 키워드로 활동을 이어오긴 했지만, 이처럼 구체적이고 유기적인 '소녀의 성장' 서사를 본격화 한 것은 처음이었다. 특히 당시 여자친구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요소들로 세계관을 확장했던 방탄소년단처럼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메인 콘셉트로 내세우는 등의 시도로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공식적인 세계관은 아니지만, 데뷔 이후 '청춘'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선보여온 세븐틴이 하이브 레이블즈에 편입된 이후 보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청춘 서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다 보긴 어렵다.

하이브 색(色) 굳히지는 좋지만, 다양성 필요도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의 세계관은 공상과학적 설정에 기반한 타 소속사 아이돌의 세계관과는 분명 차별화된다. 청춘에 초점을 맞춘 만큼 보다 현실적인 세계관 안에서 공감을 자아내는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비슷한 서사를 지닌 세계관이지만 각 그룹별로 다른 장르와 가사 표현을 택함으로써 '답습'에만 그치지 않았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방향성을 통일하며 하이브만의 색깔을 굳히겠다는 계획이라면,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그럼에도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들의 '청춘 앓이'가 아쉬운 건 다양성에 대한 니즈 때문이다. 지금 하이브는 국내 K팝 대표 기획사 중에서도 걸출한 프로듀서진과 아티스트를 다수 확보하고 있는 회사다. 인력과 자본, 탄탄한 팬덤까지 모든 조건이 갖춰진 만큼 K팝의 스펙트럼 확장을 통한 다양성 추구에 힘을 쏟았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이브에게 '청춘 서사'는 일련의 성공이 보장된 요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K팝 신 최초로 글로벌 시장을 휩쓸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의 흥행 공식을 답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방탄소년단의 배턴을 이어받아 글로벌 시장을 휩쓸 아티스트의 터전이 되기 위해서 안주보단 혁신이 필요할 시점이다.

홍혜민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