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낙태(임신중단)에 사용되는 약물을 우편으로 배송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내년 6월로 예상되는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판결을 앞두고 내린 결정이다. 낙태 찬성과 반대는 미국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다. FDA의 결정으로 미국 사회가 또다시 반으로 갈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FDA는 16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 여성들이 원격 진료를 통해 낙태에 사용되는 약물인 미페프리스톤을 처방받고 우편으로 수령할 수 있도록 했다.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10주(70일)까지 사용하도록 FDA가 2000년에 승인한 약물로, 때때로 유산 위험에 처한 여성에게도 처방된다. FDA는 “과학적 검토를 걸쳐 이 약에 대한 접근을 넓혔으며, 더는 소수 전문 클리닉이나 병원에서만 조제하지 않도록 했다”면서 처방자는 인증과 교육을 받아야 하며, 조제 약국도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결정은 미국 연방 대법원이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미시시피 낙태금지법 위헌 판단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발표됐다.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낙태권을 두고 충돌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듯 FDA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지는 않았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설명했다.
실제로 낙태를 반대하는 쪽은 잇따라 규탄 목소리를 높였다. 낙태반대운동 단체인 ‘수잔 B. 앤서니 리스트’는 즉각 성명을 내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심각한 건강 위험과 잠재적 남용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오랜 연방 안전 규정을 완화했다”며 “필요한 의료 감독 없이 위험한 집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낙태를 허용했다”고 반발했다. 반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FDA 결정으로 수많은 낙태 여성과 유산 위험에 처한 환자가 안도감을 느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FDA의 미페프리스톤 원격 처방 및 우편 배송 허용이 미국 내 낙태의 광범위한 확산으로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현재 대부분 남부와 중서부에 위치한 19개 주는 의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낙태 약물을 복용하도록 해 원격 처방을 금지해 놓은 상태다. 임신중단 약물에 대한 접근을 더욱 제한하기 위해 다른 법률을 통과시킬 가능성도 높다. NYT는 “올해 들어 6개 주가 낙태 약물의 우편 발송을 금지했고, 7개 주는 의료 제공자로부터 직접 낙태 약물을 수령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을 통과시켰다”며 “4개 주는 약물을 사용한 낙태 시한을 10주보다 더 줄였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