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3년만에 기준금리를 올리기로 했다.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첫 금리 인상 결정이다. 당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른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동결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물가상승(인플레이션) 대응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유로존은 고물가에도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이어가기로 했다. 다만 역시 긴축 통화정책으로 돌아서기로 결정하면서 각국들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지속해온 완화적 통화정책에서 벗어나 속속 ‘돈줄 죄기’ 모드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영란은행은 16일(현지시간) 통화정책위원회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1%에서 0.25%로 0.15%포인트 올린다고 밝혔다. 2018년 8월 0.5→0.75%로 마지막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지 3년 4개월만이다. 지난해 3월에는 감염병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가 높아지면서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0.1%까지 떨어뜨리기도 했다.
사실 시장에서는 영란은행이 이번 회의에서 금리인상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봤다. 이미 런던 코로나19 확진자의 절반 이상이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됐고, 새 변이 탓에 정부가 비상사태까지 선언하는 등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로 구인난까지 겹치면서 경제 성장 동력이 낮아진 점도 이유로 꼽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영란은행은 긴축을 선택했다. 치솟는 물가를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지난달 영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5.1%를 기록했다. 시장 전망치(4.7%)를 뛰어넘는, 2011년 9월 이후 10년만의 최고치다. 이미 영란은행의 물가 목표(2%)는 2배 이상 뛰어넘었다. 휘발유 가격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물가 상승을 주도한 가운데, 의복과 식품, 주류 등 전 분야에서 소매 상품 가격이 올랐다.
반면 유로존은 ‘일단 스톱’에 나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통화정책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0%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ECB는 경제 회복과 중기 물가 목표치 달성에 진전이 있어 향후 분기에 자산 매입속도를 단계적으로 낮춰도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긴축 가능성을 열어뒀다. ECB는 내년 1분기부터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채권 매입 방식으로 풀던 자금 규모를 줄이고, 내년 3월에는 매입 자체를 중단하기로 했다. 앞서 발표된 유로존 소비자물가는 4.9%다. 해당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9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 전날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내년 세 차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고 시사했다. 또 내년 6월 완료될 것으로 예상됐던 자산 매입 축소 기한도 3월로 앞당긴다고 예고했다. 40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돈줄 조이기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