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공수처를 응원한다

입력
2021.12.17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바람 잘 날이 없다. 뭔가 새로운 소식은 전해지는데 이른바 ‘좋은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혹시 놓쳤을까 눈을 씻고 찾아볼 때가 있지만, 역시나 잘 보이지 않는다. 올해 초 탄생한, 그래서 아직 첫 돌도 지나지 않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얘기다.

지금 공수처는 매우 혼란스럽다. 연신 입방아에 오르는 데다, 뭐를 해도 조리돌림당하는 신세가 된 게 아닌가 싶다. 가끔은 위악을 과장하는 질풍노도의 사춘기처럼 공수처가 비판과 꾸중을 자초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 싫은 누군가의 말처럼, 공수처를 향해 집중 포화가 쏟아지고 있다.

되짚어보면, 이런 식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특별채용 의혹을 제1호 사건으로 선택했더니, “편한 길만 간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 보고서 허위 작성 의혹,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 방해 의혹 등 검찰 관련 사건을 입건해 수사한다고 했더니 “때 지난 사건에 매달린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여기에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 교사 의혹, 고발사주 의혹, 판사 사찰 작성 지시 의혹 등을 수사한다니까 “공수처가 윤석열수사처(윤수처)냐”며 ‘정치 편향’ 논리를 들이댄다. “고발이 들어왔고, 사안을 따져보면 안 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해명을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물론 공수처가 ‘사서 욕먹고 있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적으로 100% 공감한다. “우리는 검찰과 다르다”는 말은 손준성 검사 관련 영장이 잇달아 기각되면서 “실력은 확실히 다르더라”라는 비아냥으로 되돌아왔다. 괜한 자부심이었다. 이성윤 고검장 조사를 하면서 처장 차량으로 ‘에스코트 조사’를 한 것도, “안 좋은 건 검찰이랑 똑같네”라는 비판을 자초한 잘못된 판단이었다. 최근 고발사주 의혹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를 앞에 두고 “우리는 아마추어”라고 했던 여운국 차장의 ‘자학성 발언’은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파편화된 비판을 얼기설기 종합해보면, 결국 이 정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경험 없는 검사와 수사관들이 모여, 감당할 수 없는 대상을 상대로 이런저런 논란과 분란을 일으키면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정도 말이다.

성급한 누군가는 공수처 ‘존폐론’까지 얘기를 한다. “능력 없는 조직이 제 분수도 모른 채 분란만 일으킨다”는 게 이유인 듯싶다. 여야 정쟁으로 나온 허술한 공수처법, 검찰 출신 제외 원칙에 따라 자리에 오른 비검찰 출신 지휘부, 정권 유지에 공수처를 이용하려는 여당과 언제든 딴지를 걸겠다는 야당. “현 정권의 유산이니 지나면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측에서 그 외에도 더 많은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공수처의 어이없는 ‘헛발질’에 헛웃음을 짓기도 한다. 가끔은 그들 존재의 이유를 고민할 때도 있다. 하지만 공수처를 응원하는 마음이 아직은 큰 것도 사실이다. 경험의 부족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고, 수사 과정에서의 논란 역시 몸으로 느끼면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다. 무엇보다 공수처의 존재 자체가 고위공직자들, 특히 검찰들의 무소불위 행동에 든든한 브레이크가 돼 주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게 단순하고 맹목적이지만 다음 정권에도 공수처가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아닐까.

남상욱 사회부 차장
thot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