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신경외과 수련을 처음 시작했던 그 당시엔 '100일 당직'이라는 관행이 있었다. 꼼짝없이 병원에 묶인 상황에서,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핸드폰뿐이었다. 그런데 당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응급환자 콜을 받고 8층에서 1층 응급실까지 급히 뛰어 내려가던 중에 난간에 부딪히며 그만 핸드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나는 졸지에 가족, 지인들과 연락두절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느 날 병원 직원이 나를 다급히 찾아와 말했다.
"댁에서 선생님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병원으로 전화가 왔는데요. 아버님께서 위독하신 거 같습니다. 저희가 일단 구급차를 댁으로 보냈습니다."
병원에서 보내준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하신 아버지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지만 곧 심정지가 왔고, 동료들과 함께 필사적인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음에도 결국 황망히 돌아가시고 말았다.
내게 연락이 되지 않아 흘렀을 시간, 그 때문에 아버지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은 아닐까. 부서진 핸드폰과 그 모든 상황들이 내겐 회한이 되어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무력하게 떠나보낸 상실감과 자책이 날 휘감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 할까.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살인적인 업무량과 육체의 피로는, 난생처음 겪어보는 비현실적인 상실감을 차츰 무디게 만들어주었고, 난 그냥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브리핑 후 잠시 숨을 돌리고 병원 1층 로비를 걷고 있었다. 거울을 보진 않았지만 슬픔에 젖고 피곤에 절었던 내 표정은 무척이나 무거웠을 것이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밝은 얼굴로 걸어오던 5살 정도 여자아이가 있었다. 예쁜 얼굴에 나있는 상처자국이 마음 아프다고 느끼며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때 그 아이도 나를 발견하곤, 너무도 예쁜 미소와 함께 달려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 뒤에 따라오며 나를 향해 웃는 아이의 부모님을 보고는, 이 아이가 중환자실에 의식불명으로 누워있던 그 아가였음을 이내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후였던 것 같다. 응급실에 피투성이가 된 여자아이가 실려 왔다. 교통사고였는데 뇌좌상과 뇌부종, 안면골절이 복합되어 있었고 의식이 없었다. 부모님들은 눈물 범벅이었다. 그 부모님의 처참했던 심정은 아이 가진 부모라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촌각을 다투던 아이의 상태에 응급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응급실 간호사들은 아이의 생체징후를 체크했고, 나는 호흡 확보를 위한 기관삽관을 최우선으로 진행했다. 응급실에서 바이탈을 잡은 후 중환자실로 옮겨 뇌압 강하를 위한 치료가 시작되었다. 뇌압이 성공적으로 조절되지 못하면 뇌 연수에 있는 호흡과 심장박동 중추가 손상되어 결국 심장이 멈추게 된다. 병상에 누워 의식조차 없는 이 조그만 아이는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났다. 아이는 계속 의식을 찾지 못했고. 나는 아이가 너무도 안쓰럽고 신경 쓰여 밤에도, 새벽에도 중환자실을 지키며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그러던 어느 밤 아이는 입술을 힘겹게 달싹거리는 듯 보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난 ‘손을 잡아 볼래?’라고 말을 건넸다. 순간 그 작은 손에서 미약하지만 확실한 악력이 전해져왔다. 의식이 돌아온 것이었다. 난 서둘러 기관 삽관을 제거했다. 그리곤 아이 얼굴에 숨죽이며 귀를 기울이자, 아이의 들릴락말락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배..고...파..'
난 눈물이 났다. 내가 그 아이를 지켜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찼고 한없이 감사했다. 그날 밤 아이가 깨어나던 순간을 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중환자실에서 충분히 기운과 안정을 찾은 아이는 이후 성형외과 주치의에게 보내졌다. 하지만 당시 아이 얼굴이 외상에 의해 심하게 부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그 얼굴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병원 복도에서 아이가 달려와 나를 와락 끌어안았을 때 몰라봤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우연히 다시 만난 그 아이가 나를 알아보고 안아주었을 때, 순간 내 마음을 휘감던 따뜻했던 느낌, 그건 내게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걸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쓰러져있던 나의 마음을 그 아이가 다정하게 안아 일으켜 세워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슬픈 기억으로 괴로웠던 100일 당직 속에서 나는 그렇게 신경외과의사로 성장해 나갔던 거 같다. 이후로도 환자들을 보며 수많은 생과 사의 경계를 마주했지만, 신경외과 의사 초년 시절 아프고 간절한 마음에 모든 정성을 쏟아 부어 돌봤던 그 아이의 기억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20여 년 의사생활 동안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이 작고 따뜻했던 포옹의 기억이 나를 격려해주곤 했다.
이젠 어엿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그 예쁜 미소를 어른이 되어서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껏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아가야. 너는 내가 널 지켜주었다고 달려와 안아주었겠지만, 사실은 네가 나를 일으켜 세워 준 거란다."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분들의 원고를 기다립니다.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