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가 당시 진범을 풀어줬던 김훈영 부장검사에게 낸 민사소송을 취하했다. 김 검사의 진심 어린 사과에 위로를 받아 화해를 결정한 것이다. 반면 강압수사로 자신을 범인으로 몰아갔던 전직 경찰관을 상대로는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며 소송을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피해자 최모씨 측은 15일 서울고법 민사20-3부(부장 김영훈 홍승구 홍지영) 심리로 열린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 3차 변론 기일에서 김 검사에 대한 소송를 취하한다고 밝혔다. 최씨 측 박준영 변호사는 “(재판) 화해 과정에서 보인 김 검사의 노력과 진정성이 반드시 평가받길 바란다”며 “소송을 취하하고 재판상 화해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 검사 대리인이 동의하면서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 화해가 곧바로 성사됐다.
김 검사는 올해 8월 최씨가 살고 있는 전주를 직접 찾아가 “진실을 밝혀 드리지 못했다. 나 때문에 오랜 시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데 대해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인물 중 피해자를 찾아가 사과하기는 김 검사가 처음이다. 최씨 역시 그 자리에서 김 검사를 용서했다. 김 검사는 최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도 "가슴 아파했을 최씨에게 미안하다"며 공개 사과했다.
최씨 측은 그러나 사건 발생 당시 '15세 최군'을 상대로 강압수사를 벌였던 익산경찰서 형사반장 이모씨에 대해선 소송을 이어가기로 했다. 최씨 측은 “이씨는 아직도 최씨가 범인일 수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면서 “수사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었고, 적극적으로 불법행위를 저질렀지만 형사 처벌을 안 받았으니 민사 책임이라도 묻는 게 정의”라고 강조했다.
이씨 측 대리인은 이날 “진범이 잡혔고, 최씨가 무고한 옥살이를 한 것에 대해선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이씨가 불법감금이나 가혹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 최씨 진술뿐이다”라고 맞섰다. ‘허위 자백’에 대한 책임은 없다는 주장이지만, 앞서 1심 재판부는 이씨를 비롯해 당시 익산서 소속 경찰들의 가혹행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런 사건을 접할 때 판사들도 마음이 무겁다”며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판사는 기록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 1심은 국가로 하여금 최씨와 가족들에게 16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며 김 검사와 이씨에게 각각 20%를 국가와 공동 부담하라고 했다. 국가는 이후 "책임을 통감한다"며 항소를 포기해 배상 판결은 확정됐다. 배상액 중 이씨의 부담 비율을 결정할 항소심 선고는 내년 2월 9일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