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순탄할 때 꽃게 풍년이 된다

입력
2021.12.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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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의 지표를 슈퍼마켓이나 시장에서 볼 수도 있다. 맥주 같은 공산품은 물론이고, 송이며 조개 같은 제철 산물 중에 북한산이 안 보이면 그야말로 경색 정국이다. 실은, 남북 당사자라기보다 북미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 한반도의 태생적 운명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요새는 북한에 뭘 보낼 수도, 사서 들여올 수도 없다. 중국을 ‘우회’해서 중국산으로 둔갑하는 산물도 많다는데, 알 길이 없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북한산도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거꾸로 중국산이 북한산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가을 송이가 그랬다. 북한산 송이에 '통일되면 국산'이라는 애교 섞인 광고 문구가 회자되던 시절이다.

요즘 남북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건 어떤 지수 하나만 보고도 알 수 있다. 이른바 꽃게 지수다. 연평도를 비롯한 접경지역에서 생산량이 많은 꽃게는 매년 뉴스의 메인 단골이다. 군함과 어선이 동시에 등장하는 아슬아슬한 서스펜스다. 당국이나, 꽃게를 잡고 먹는 어민과 소비자 모두 꽃게가 잘 잡히고, 북한과 별일도 없길 바란다.

올해는 그런 해였던 것 같다. 꽃게는 한때 흔한 말로 '바케쓰로 퍼서 팔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게 싸고 흔했다. 도시 빈민이었던 나도 소년 시절에 꽃게 먹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학사주점의 싸구려 해물탕에도 꽃게가 들어갔다. 다리가 한두 개 떨어진 놈들 정도였으리라.

올해 가을은 꽃게가 괜찮았다. 이른바 톱밥 꽃게라고 하여, 좀 먼 바다에서 잡는 수게를 시장에서 적당한 값에 살 수 있었다. 봄 꽃게는 알이 뱄으니 장을 담그고, 가을 꽃게는 살이 찼으니 찜을 한다고들 한다. 꽃게가 알을 밴다고 하는데, 실은 알이 아니라 생식소다. 배 안의 누런 것이 바로 생식소다. 초여름에 꽃게는 배 밖으로 알을 품게 되는데, 이를 외포란 게라고 하고, 연중 포획할 수 없다. 영덕 울진 대게도 마찬가지다.

가을 초입에는 알다시피 수게가 흔한데, 그때 암놈은 알은 고사하고 껍데기도 물렁하여 그리 먹을 만한 게 못된다. 요즘처럼 쌀쌀해지고 겨울이 들어서면 반짝 암꽃게가 다시 주인공이 된다. 봄처럼 알(생식소)이 꽉 차진 않지만, 무게도 실하고 먹을 만한 게가 유통된다. 요새 많이 잡혀서 경락가도 떨어졌다.

사실 2000년대 들어서 꽃게 가치가 급격히 오르고, 냉동 기술이 좋아지면서 당최 소비자들은 어떤 게를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당황스러워졌다. 연중 팔리는 알 뱄다는 꽃게는 결국 냉동 기술이 중요하다. 제철에는 팔리지 않는 것은 얼려야 하고, 또 연중 팔기 위해 양을 맞춰서 냉동고에 넣는다. 냉동은 꽃게 시장의 큰손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제철도 없이, 음식을 찾기 때문에 그에 맞춰 공급하려면 일년 내내 비슷한 품질을 유지해야 하고, 공급량도 댈 수 있어서 냉동이 동원되는 건 자연스럽다. 그 과정은 몇 줄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시장 구조와 노하우가 뒤섞여 있어서 우리네는 들여다볼 엄두도 못 낸다.

바야흐로 암꽃게의 마지막 시즌이다. 봄 꽃게와 달리 알이 더러 차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추워질수록 봄 꽃게에 근접한 품질의 게를 만날 수 있다. 내장이 검거나 녹색을 띠어 쓴맛이 나는 꽃게가 줄고 먹기 좋은 '황장'이 많은 계절도 바로 요즘이다. 아무래도 게장을 담그거나 찜을 하기보다는 양념게장이나 꽃게탕으로 먹는 게 좋다고 시장 상인들은 추천한다.


박찬일 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