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연쇄살인마... "20대 여배우 누구나 탐 낼 캐릭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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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6 07:00
[인터뷰] 드라마 '구경이' 김혜준

법무법인 정의로운 사회를 위하여 대표변호사이자 IT업체 '피스랩'의 대표인 고담(김수로)은 죽어 마땅한 자다. 세상 정의로운 척하지만 알고 보면 불법촬영물 피해자를 돕는 척 영상물을 지워주고, 뒤로는 그 영상을 재유포해 돈을 번다. "나쁜 놈들 살려둘 이유 없잖아. 내가 안 죽이면 그 사람들은 누가 치워줘요?" 20대 대학생 케이(김혜준)는 직접 단죄에 나선다. "나쁜 놈들 내 손으로 죽인다는 생각, 애저녁에 졸업했지." 전직 경찰 구경이(이영애)가 그의 뒤를 쫓는다. 지난 12일 화제 속에 종영한 JTBC 드라마 '구경이' 이야기다.

"케이는 20대 여자배우라면 누구라도 탐을 낼 캐릭터였어요. 놓치고 싶지 않았죠." 15일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김혜준(26)은 "욕심 안 내는 게 이상할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케이를 소개했다. 그가 연기한 연쇄살인마 케이는 세상에 없던 캐릭터다. 앳된 얼굴로 게임하듯 살인을 해치운다. 여태껏 질리도록 봐온 연쇄살인마가 무표정한 얼굴의 사이코패스였다면, 케이는 말 그대로 '변화무쌍'하다. 김혜준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가 돼버릴까 봐" 대본 속 케이에만 골몰했다. 일부러 현실 속 연쇄살인범을 찾아보거나 다른 연기를 참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케이는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에요.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죠. 다만 그 상황이 일반인과 같지 않을 뿐이고요." 김혜준의 연쇄살인마는 해맑고, 천진난만한 아이 모습에 가깝다. "세상이 좀 더 깨끗해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살인을 저지르지만 사실 케이에겐 어떤 사명감이 있다기보다 그저 놀이에 불과하죠. (살인마저) 가볍게 생각하고, 좋다 싫다 호불호가 명확한, 아이같이 행동하는 친구라고 봤어요."


이처럼 '구경이'는 여러모로 상투성에서 벗어난다. 타이틀 롤인 이영애의 구경이부터 용 국장(김해숙), 나제희(곽선영)까지 주요 캐릭터 4명이 모두 여성이다. 보기 드문 세대별 여성들의 조합이지만 어색함은 없다. 흑막의 권력자 용 국장은 남성 중심 누아르에서 숱하게 나오는 사우나신도 거뜬히 소화한다. 김혜준은 "용 국장은 절대악이라는 면에서 참신했다"며 "김해숙 배우가 맡은 것도 너무 흥미로웠다"고 했다.

배우들 입장에선 제대로 물 만난 셈이었다. "케이뿐 아니라 모두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이상한 캐릭터들이죠. 현장의 배우들이 너무 즐겁게 신나서 연기를 했어요. 그간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이니까요. 그게 느껴져서 현장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고요." 그는 "앞으로 (여성이 주인공인) 이런 작품이 많아져서,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2015년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으로 데뷔한 그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계비 조씨를 연기하면서 눈도장을 찍었다. 지난해 시즌2까지 나온 '킹덤'은 그에게 혹평과 호평을 모두 안긴 작품이다. 김혜준은 "(연기에 대한 호불호가 있다는 건) 제 책임"이라며 "어떻게든 회복하려고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시즌2는 입시 준비를 하는 것처럼 노력했어요. 그랬더니 좋게 봐주신 분들이 많아서 그때 이후론 계속 더 신경쓰고 더 예민하게 준비를 하게 돼요." 한때 시련은 그를 노력하는 연기자로 단련시켰다. 촬영 전날은 집 밖으로 일절 나가지 않는다. 대사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면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행복했다"는 말을 거듭한 그는 "'구경이'는 필모그래피를 떠나 제 인생에서 너무 행복했던 한 페이지로 남을 것 같다"고 했다. 배우로서 바탕을 단단히 다지고 있는 그의 바람은 김혜준 하면 '믿고 봐도 되는 배우'가 됐으면 하는 거다. 나이에 걸맞은 로맨틱 코미디물을 연기하고 싶다는 기대도 비쳤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들어와서 차기작을 신중하게 고르는 중이에요. 그런데 로맨틱 코미디는 없네요. 하하"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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