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물류 산업이 활황이지만 정작 실제 운송을 책임지는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운송료조차 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화물운송 주선업체가 화주로부터 운송비를 받고서도 경영난을 이유로 화물기사에게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탓이다. 운송 계약을 중개하는 플랫폼 업체들도 나 몰라라 하면서 애꿎은 화물기사들만 피해를 입는 실정이다.
2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5년 차 화물차 기사 홍석현(45)씨 등 41명은 최근 운송 주선업체 A사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들은 A사를 통해 일감을 받아 화물운송을 하고도 적게는 29만 원부터 많게는 2,700만 원까지 총 1억3,000만 원 규모의 운임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는 "A사를 찾아가 봤지만 '어차피 5억 원이 안 넘어 벌금만 물면 된다.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이야기만 돌아왔다"며 "생계형으로 일하는 개별 차주들이 쪽잠을 자며 일한 돈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며 집단 고소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홍씨 등에 따르면 A사는 올해 5~8월 롯데택배·용마로지스 등 대형 물류업체로부터 운송 하청을 받은 뒤 화물맨·화물24 등 화물운송 중개플랫폼을 통해 화물차주에게 재하청을 줬다. 차주들은 그러나 택배·의약품·보도블럭 등 하청받은 물품의 운송을 마치고도 길게는 5개월이 넘도록 운송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 집단 고소에 참여한 B씨는 "아버지는 식사도 제때 못 하고 화장실도 못 가며 밤샘 운전했다"며 "A사 측에 전화도 하고 문자도 했지만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A사는 차주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원청업체 횡포로 운송단가를 20% 삭감해 계약했고, 소규모 기업으로선 그 손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며 운송료 미지급 사태의 책임을 원청에 돌렸다. 대표 명의의 이 서한에서 A사는 "매월 2,000만~4,000만 원가량 손실을 입게 됐는데 여러분의 성급한 결정(민·형사상 소송)으로 모든 금융거래가 막혀 부도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화물업계에선 차주들이 운송비를 떼이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한다. 차주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ㅇㅇ업체로부터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특정 회사에 소속된 지입차가 아닌 차주의 피해가 특히 크다.
원청에서 발주하는 일감이 하청·재하청으로 내려지는 물류업계의 관행적 계약 구조가 문제로 꼽힌다. 원청은 이미 운송비를 하청업체에 지급했으니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다단계로 재하청을 받은 업체들이 "회사가 어렵다"며 대금 지급을 미루면 차주들은 사실상 하소연할 데가 없다.
화물차주는 물류운송 플랫폼을 통해 운송 주선업체와 계약을 맺는다. 플랫폼 앱 사용료로 매달 많게는 5만 원씩 내는 차주들은 운송료 미지급 문제 해결에 플랫폼 기업도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들 회사는 "책임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한 운송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운송료를 지급하지 않은 화주에 대해 (앱 사용) 정지까지는 가능하지만, (미지급금을) 강제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물류운송 플랫폼은 화물24·화물맨·원콜 등이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10년째 화물차 운전을 해왔다는 배성익씨(46)는 "앱(운송 플랫폼)을 사용하면서 '혹시 운송료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걱정이 늘 있다"며 "그렇지만 이들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일감을 구할 수 없는 처지여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운영 중인 물류신고센터 관계자는 "운송료 미지급에 대한 신고가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고, 화물 앱에 대한 신고도 들어오고 있다"면서도 "운송료 미지급에 대한 조치는 조정 권고서를 피신고인에게 보내는 정도일 뿐 법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불공정한 계약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화물차주의 운송료 미수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택시 앱 같은 경우는 이용객이 워낙 많아 관심도 크고 선결제 시스템이 정착돼 있지만, 화물 앱은 시장 규모가 작아 선결제 체제까지 진전이 안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차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