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막고, 3000만원 손배소...'이동권 보장' 거북이 걸음에 애꿎은 갈등만

입력
2021.12.19 15:00
"지하철 엘리베이터 100% 설치 지켜라"
장애인 단체, 7차례 지하철 시위 벌이자
서울교통공사 "운행지연" 손배소 제기
'저상버스·특별교통수단 도입 실질화'
교통약자법 연내 개정 주장 선전전엔
엘리베이터 운행 정지로 맞불 놓기도

서울교통공사(공사)가 지난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상대로 3,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습니다. 시위로 인해 지하철 운행 지연 등 문제가 발생했다며 그에 따른 책임을 묻겠다는 겁니다.

전장연은 지난 1월 22일부터 지난달까지 총 7회 지하철 내 선전전을 벌였습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5년 약속한 '2022년까지 서울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 100% 설치'(서울시 장애인이동권선언)를 지키라고 항의했습니다.



전장연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100% 약속했으나 예산에 반영 안 돼"

올해 4월 기준 서울 지하철 역사 283곳 중 261곳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습니다. 설치율로 보면 92.2%로 100% 달성은 머지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전장연이 서울시를 불신하는 것은 올해 본예산에 엘리베이터 설치 예산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올해 당장 설계 및 공사가 필요한 13곳에 대해 200억 원 규모의 예산이 책정됐어야 한다는 게 전장연의 주장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6월 28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서울장차연)와의 면담에서 "요구안에 대해 서울시가 의지를 갖고 목표 기한 내에 될 수 있도록 법령, 조례, 예산, 하나하나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장연은 오 시장의 약속과 달리 내년 예산안에도 엘리베이터 설치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10월 29일 오전 서울장차연이 공개한 '지하철 엘리베이터 역사 2022년 예산 현황'을 보면 설계 작업이 완료된 8곳을 제외한 나머지 역사는 사업비가 전액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날 전장연의 항의 시위 이후 서울시는 한 매체에 "설계가 완료되지 않은 구산, 남구로, 복정역, 투자심사를 통과 못 한 까치산역을 제외하고는 설계비 및 공사비를 내년도 예산에 반영했다"는 뒤늦은 조처를 밝혔습니다.



공사 "시위로 최장 2시간 9분 지하철 지연 발생"

전장연에는 지하철 내 시위가 시민권 찾기 운동의 수단인 반면, 공사는 시위 때마다 반복되는 운행 지연으로 굉장히 난감하다는 입장입니다. 결국 6월 전장연 관계자들을 형사고발한 데 이어 지난달엔 소가 3,000만100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릅니다.

한국일보가 확보한 소장에 따르면 공사는 전장연 활동가들이 ①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도중 중간역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고 ②승강장안전문(스크린도어)과 열차 사이에 휠체어를 두고 출입문 개폐를 방해하는 불법을 저질렀다고 나와 있는데요.

이로 인해 '최장 2시간 9분의 운행 지연과 최대 261건의 민원이 발생했다'며 ①실 운행 감소로 인한 운임 감소분 ②열차 지연으로 인한 반환 금원 ③임시 열차 운영비 및 질서유지 지원근무 인력 인건비 등의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공사는 '2022년까지 엘리베이터 100% 설치' 약속에 대해 4월엔 "1역사 1동선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나 재정난으로 예산이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소장에선 다시 "22곳 중 18곳은 이미 2022년까지 설치공사 완료 예정이고 나머지 역사는 안정성 문제가 있거나 구조적인 문제를 가진 역사라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해 왔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엘리베이터 운행 정지, 무정차 통과... 시위 원천봉쇄까지

사실 공사와 전장연의 갈등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공사는 이달 들어선 아예 시위를 원천 봉쇄하고 있습니다. 6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엘리베이터를 운행 정지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전장연은 그날부터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 매일 오전 8시 혜화역 플랫폼에서 출근길 선전전을 예고했습니다. 그러자 공사는 전장연 사무실과 가장 가까운 2번 출구 엘리베이터를 막았죠.

건너편 3번 출구 엘리베이터는 운행하고 있었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전장연 활동가들은 한성대입구역으로 걸어서 이동해 지하철을 타고 다시 혜화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공사는 이틀 뒤 "시민 불편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고요.

역시 '운행 지연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②13일 오후 1호선 열차가 시청역을 무정차 통과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전장연은 그날 서울시 복지 예산 확충을 주장하며 서울시청과 서울시의회 일대에서 기자회견 및 농성을 벌였고, 이어 시청역 플랫폼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혜화역에서 교통약자법 개정을 주장하는 이유

그중 매일 진행 중인 혜화역 출근길 선전전에 대해 설명을 더 드리자면요, 전장연이 교통약자법 개정을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비수도권 장애인의 발'인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상버스는 실보급률이 전국 28.4%(9,791대)에 그칩니다. 정부는 3차 교통약자 편의 증진 계획에서 '올해까지 시내 버스의 42%를 저상버스로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죠. 저상버스 가격은 일반 버스의 2배라 민간 사업자들은 구매를 기피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예산 부족을 핑계로 지원을 꺼립니다.

특별교통수단(리프트를 장착한 택시나 승합차)도 부족하긴 마찬가집니다. 정부는 중증장애인 수 대비 실제 운영 차량 비율이 100%가 넘는다고 발표합니다. 그러나 통계는 65세 이상 노인 등 다른 교통약자들도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한다는 실상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현재로선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용에 한계가 있다는 얘깁니다.

특별교통수단의 운영은 지자체별 재정자립도나 정책에 따라 편차도 큽니다. 어떤 곳은 24시간 운행하지만, 다른 곳은 하루 10시간만 운행합니다. 지자체가 운행 주체이다 보니 장거리 이동 시 다른 지자체로 넘어갈 때마다 차량을 갈아타야 합니다.

그래서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중앙정부의 특별교통수단 지원 확대 및 광역이동지원센터 설치'를 골자로 한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발의했죠.




국회, 22일 교통약자법 개정안 논의... 갈등 해결 계기 될까

결과만 놓고 보면 2001년 '오이도역 추락 참사' 이후 20년 동안 이어진 이동권 투쟁 끝에 돌아온 것은 3,000만 원의 소송이 돼 버렸습니다. 공사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의 정당성,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우리는 지하철을 운영해야 하는 입장이다""연내 지속되는 운행 지연 행위를 방기할 수만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지하철에서 시위하거나 역사 내 선전물을 부착하는 행위 모두 철도안전법 위반"이라며 불법성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휠체어를 전동차와 플랫폼 사이에 걸치고 있는 것은 안전문제도 우려된다고 덧붙였죠.

전장연 측은 그러나 "만약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소송은 남는다""정말 취지에 공감했다면 공사가 국회의원들에게 소송을 제기해야 하지 않나"라고 반박합니다.

정다운 전장연 활동가는 운행 지연, 안전 문제를 주장하는 공사를 향해 "법이 진즉에 통과됐다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오죽하면 출근길에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을까 (생각해 달라)"라고 호소했습니다.

정 활동가는 또 "2시간 가까이 운행을 지연시킨 시위는 없었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현재 진행 중인 혜화역 출근길 선전전은 가급적 지하철 걸치기 없이 플랫폼에서만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죠. 다만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소위 이틀 전인 오는 20일엔 기획재정부를 항의 방문하기 위해 대규모 지하철 이동을 예고했습니다.



"취지에 공감했다면 국회의원들에게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정 활동가의 말은 결국 갈등의 진짜 책임자는 거듭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이동권 보장의 책무를 방관하는 국회라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10일 국토위 여·야 간사가 교통법안소위 당일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전장연은 12일 논평에서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염려했습니다.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의무'가 아닌 '임의규정'으로 두자는 주장이 제기됐고, 특별교통수단은 논의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은 천준호, 심상정 의원 안의 왜곡 없는 통과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애꿎은' 갈등을 해결할 열쇠를 쥔 국회는 22일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요.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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