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큰손' CJ ENM 콘텐츠 장악력 높인다

입력
2021.12.16 04:30
20면
영화사들 인수 '제2의 스튜디오 드래곤' 설립 나서

국내 1위 콘텐츠 회사 CJ ENM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영화사 인수로 여러 유명 감독과의 협업 체제 강화에 나섰고, 제2의 스튜디오 드래곤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해외 콘텐츠 공급망 확보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축으로 한 최근 영상산업 재편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국내 대중문화 큰손 CJ ENM이 공격적인 행보에 나서면서 국내 콘텐츠 산업 지형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①박찬욱 김용화 감독 등과 협업 강화

CJ ENM은 최근 영화사 4곳을 인수했다. 박찬욱 감독이 설립한 모호필름, 김용화 감독이 만든 블라드스튜디오, 강제규·김현석·이병헌·조의석 감독이 공동 설립한 엠메이커스, 맹주공 감독이 만든 밀리언볼트의 지분을 각각 50% 이상 확보했다. 이들 영화사 인수로 여러 유명 감독들이 CJ ENM 깃발 아래에서 작업하게 됐다.

모호필름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 이후 박 감독의 모든 국내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곳이다. 김용화 감독은 ‘신과 함께’ 1, 2편으로 1,000만 관객을 잇달아 동원했다. 강제규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2003)로 1,000만 관객을 모은 이력이 있다. 이병헌 감독은 역대 극장 흥행 2위(1,626만 명)인 ‘극한직업’(2019)을 연출했다. 김현석 감독은 ‘아이 캔 스피크’(2017),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등, 조의석 감독은 ‘감시자들’(2013), ‘마스터’(2016) 등 화제작을 각각 만들었다. 맹주공 감독은 애니메이션 ‘라바’ 시리즈 제작으로 유명하다.

영화계에 따르면 CJ ENM의 제작사 인수와 유명 감독 확보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1,000만 관객을 모았던 두 감독이 CJ ENM에 추가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CJ ENM은 윤제균(‘해운대’ ‘국제시장’ 등) 감독의 영화사 JK필름을 2016년 이미 인수했다. 최근 영화사들 인수로 CJ ENM은 ‘1,000만 감독’만 4명(강제규, 김용화, 윤제균, 이병헌)을 보유하게 됐다.

②제2의 스튜디오 드래곤 설립 추진 눈길

CJ ENM은 별도 회사를 세워 인수 영화사들을 관리할 예정이다. 스튜디오 드래곤을 모델 삼아 영화사들에다 예능콘텐츠 제작사 에그이즈커밍(나영석 PD, 이우정 작가 등 소속)을 더해 거대 제작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CJ ENM은 드라마 제작사 문화창고와 화앤담픽쳐스를 자회사로 둔 스튜디오 드래곤을 2016년 설립해 시가총액 2조8,000억 원대 회사로 성장시켰다. CJ ENM 관계자는 “영화와 예능 콘텐츠 제작을 겸하고 있어 내부에선 멀티 장르 스튜디오로 칭하고 있다”며 “설립 시기, 회사 명칭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물적 분할을 통해 제2의 스튜디오 드래곤으로 키우려는 계획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영화계 등에선 CJ ENM이 새로 세울 스튜디오를 ‘스튜디오 타이거’라는 우스개 섞인 호칭으로 부르며 벌써부터 눈길을 주고 있다. 새 스튜디오가 좌청룡우백호처럼 스튜디오 드래곤과 함께 CJ ENM의 새 성장 발판이 될 거라는 의미에서다. 1,000만 영화를 연출한 유명 감독이 스튜디오 수장이 될 것이라는 하마평이 구체적으로 떠돌고 있기도 하다. 한 투자배급사 대표는 “새 스튜디오는 2개 자회사로 출범한 스튜디오 드래곤과 규모부터가 다르다”며 “콘텐츠 시장에 어떤 충격을 줄지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③미국 바이아컴CBS와 제휴 주목해야

CJ ENM의 공격적인 행보는 글로벌 콘텐츠 생산 소비 환경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들이 세계 콘텐츠 공급 질서의 변화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K콘텐츠의 중요성이 부각돼서다.

최근 몇 년 새 국내 신흥 콘텐츠 회사들의 급부상과도 무관치 않다. 공룡 IT회사 카카오의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종합편성채널(종편) JTBC의 관계사 제이콘텐트리의 공격적인 행보가 자극을 준 점도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19년 영화사 사나이픽쳐스(‘신세계’ ‘아수라’ 등)와 월광(윤종빈 감독 설립)을 인수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연예기획사 BH엔터테인먼트(이병헌, 한지민, 한효주 등 소속), 숲엔터테인먼트(공유, 공효진, 전도연 등 소속), 제이와이드컴퍼니(김태리, 이상윤 등 소속)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기도 하다. 제이콘텐트리는 같은 해 영화사 비에이엔터테인먼트(‘터널’ ‘범죄도시’ 등), 퍼펙트스톰필름('PMC: 더 벙커’ ‘백두산’ 등), 필름몬스터(‘완벽한 타인’ 등)를 인수해 콘텐츠 제작 역량 강화에 나섰다.

CJ ENM이 이들 두 회사들과 달리 글로벌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CJ ENM은 미국 콘텐츠 제작사 엔데버콘텐트를 지난달 약 1조 원에 인수한 데 이어, 미국 거대 콘텐츠 그룹 바이아컴CBS와의 파트너십 체결을 8일 발표했다.

영화계에서는 바이아컴CBS와의 협력 체제 구축을 특히 주목하고 있다. 바이아컴CBS는 지상파TV CBS, 영화사 파라마운트, OTT 파라마운트플러스 등을 소유하고 있다. CJ ENM은 자사 OTT 티빙을 통해 바이아컴CBS 콘텐츠를 소개하는 한편, 자사 드라마와 영화, 예능 콘텐츠를 파라마운트플러스에 선보이기로 했다. 이번 제휴로 해외 판로를 개척하게 된 셈이다.

파라마운트플러스는 올해 3분기 기준 유료 가입 계정수가 4,700만 개다. 넷플릭스(2억1,400만 개)나 디즈니플러스(1억1,600만 개)에 비해 덩치가 작지만 바이아컴CBS가 최근 적극 투자에 나서 새 OTT 강자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최근 엔데버콘텐트 인수, 새 스튜디오 설립 추진은 바이아컴CBS와의 제휴를 염두에 두고 추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