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미국의 보이콧 동참에 선을 그은 건 처음이다. 어떻게든 ‘종전선언’의 불씨를 살려 타협을 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주변 정세는 갈수록 꼬여만 간다. 보이콧을 선언하는 동맹은 늘고 있고, 미국은 북한이 극렬히 반발하는 인권을 고리로 첫 대북제재까지 단행했다. 계속되는 악재에 종전선언 당사국 간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접점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호주를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이날 스콧 모리슨 총리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로부터도 (보이콧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지 않았다”며 올림픽 참석 여지를 남겼다. 그러면서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과의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도 중국의 건설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되, 경제ㆍ안보 비중을 감안하면 중국 역시 외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분히 종전선언을 의식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추진해야 하는 근거도 제시했다. “미국, 중국, 북한 모두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종전선언 추진을 지지한다”는 양제츠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의 언급과 “흥미 있는 제안”이라고 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평가를 고려한 진단이다.
문 대통령은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희망을 말했으나, 한반도 주변 정세는 기대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10일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사건 등을 이유로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내린 대북제재는 종전선언은커녕 북미관계를 더욱 얼어붙게 할 폭발력 가득한 사안이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달에도 “인권유린의 왕초”라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인권 문제가 체제 유지와 직결된 탓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 노력을 지속한다는 미 행정부의 기존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꺼렸지만, 북한의 반발은 시간 문제다.
대중 포위망에 동참하라는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당장 이날 모리슨 총리는 ‘오커스’와 ‘쿼드’를 입에 올리며 중요성을 부각했다. 모두 중국을 겨냥해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협의체다. ‘전략적 모호’ 기조 아래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지향하는 한국을 에둘러 압박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호주는 미국과 보조를 맞춰 대중 견제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다.
여기에 우리가 가장 공들이는 미국과의 종전선언 협의마저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10~12일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교ㆍ개발장관회의 기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여러 번 만났지만, 공식회담이 아닌 전부 약식회동에 그쳤다. 외교부는 한반도 정세를 폭넓게 논의했다고 설명했으나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문 대통령도 한계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는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근본적으로 철회하는 것을 선결조건으로 요구해 아직 대화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풀이에 따라 미국의 결자해지가 없는 한 종전선언의 진전은 어렵다는 의미도 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미국은 중국ㆍ북한과 각각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며 “미중ㆍ북미 간 충돌 지점을 해소할 논리를 찾아 설득해야 종전선언 합의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