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폭증한 가계부채를 줄이는 과정에서 집값이 하락하고 소비가 꺾이는 등 실물경제 충격이 불가피하단 진단이 나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이른바 '카드 사태' 이후 20년 가까이 가계부채가 늘어온 만큼, 주요국 가운데서도 경기 하방 위험이 유독 큰 상황이다. 장기간 누적된 부채를 조정하는 한편,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부실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3일 한국은행은 이런 내용을 담은 '매크로레버리지(민간 및 정부 부채) 변화의 특징 및 거시경제적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국 대부분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주로 정부 부문의 부채를 늘려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달랐다. 국내의 경우 지난해 이후(2020년 1분기~2021년 1분기 기준) 정부 및 가계 부문 부채 상승폭은 각각 7%포인트, 10%포인트로 민간부문의 레버리지 비율 상승폭이 더 높았다. 특히 국내 가계부채 상승폭은 이 기간 선진국(3%포인트)의 3배가 넘었다.
한은은 2000년대 초반 대규모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이른바 '카드사태' 이후 최근까지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무려 16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해온 현상에 주목했다. 통상 3~4년의 레버리징 기간 이후 부채를 줄이는 디레버리징에 진입해 온 주요국 평균과 비교하면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현상"이란 게 한은 설명이다.
문제는 가계부채 누적 기간이 길수록 디레버리징에 따른 자산가격 하락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다. 한은이 2000년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42개국 가계부채 통계를 분석한 결과, 이들 국가에선 보통 3~4년간의 레버리징 이후 디레버리징이 평균 2~3년간 지속됐고 부채를 줄이는 과정에서 이 기간의 23%가 주택가격 하락을 동반했다.
부채가 증가할수록 경기 회복 속도도 늦어졌다. 한국과 캐나다, 호주 등 7개국의 장기 패널자료를 통해 분석한 결과, 민간과 정부 레버리지 비율이 장기평균 수준인 경우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한 뒤 2년이 지나면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민간과 정부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경우 1인당 국내총생산(GDP) 회복에 5년 이상 걸렸다. 정부는 정부대로 경기 대응 여력이 축소되고, 민간도 자금줄이 막히면서 경기 부진이 심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향후 급증한 부채를 줄이는 과정에서 자산가격은 물론 소비와 고용 등 실물경제 충격이 불가피한 만큼, 부실 위험을 최소화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창현 한은 조사국 조사총괄팀 차장은 "코로나 이후 거시정책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가계의 부채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특히 취약 가계와 자영업자의 부실 위험을 관리하고 한계기업의 질서 있는 퇴출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