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파키스탄 출신의 한 귀화 남성이 뇌출혈로 투병 중인 경북 경산차량등록사업소 기간제 근로자에게 300만 원의 성금을 기탁했다. 알고보니 경북의 웬만한 지방자치단체에는 대부분 성금과 장학금을 기부해온 인물이었다. 그 덕분에 '자랑스러운 경북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때는 선거운동에도 몸담으면서 국회의원 비례대표에 나서기도 했다. 경상도 사투리가 몸에 밴 김강산(40) 오션산업 대표를 10일 새 공장터인 경산지식산업지구의 허허벌판에서 만났다.
-기부를 많이 했다.
"파키스탄과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같이하는 가족들이 통틀어 한 해 3,000만 원 정도는 기부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마약 퇴치, 신부 혼수품, 캄보디아에서는 홍수 등 자연재해가 있을 때 생필품을 지원하고 있다. 2006년 한국에 왔을 때부터 경북 23개 시군 중 대부분 지자체에 기부했다. 다문화사회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잘 알고 있는 터라 파키스탄인도 대한민국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전국 모든 지자체에 기부금을 전달하는 것이 꿈이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느끼나.
"한국에는 파키스탄인이 1만2,000여 명 들어와 있다. 근로자가 8,000명, 유학생 3,000명, 사업가 1,000명 정도다. 파키스탄 출신이라고 하니 '반말'부터 돌아온 경우가 많았다. 옛날 이 문제로 고민할 때 누가 시켜서 이탈리아 사람 행세를 했더니 보는 눈길이 금방 달라졌다. 안타까웠다. 2011년 한국에 귀화했지만 지금도 파키스탄에 대한 자부심은 그대로다. 두 나라의 우애와 발전을 위해 지난해 '한국 파키스탄 민간교류협회'를 만들어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파키스탄 출신이 한국에서 사업가로 활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떻게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됐나.
"2000년대 초반 파키스탄에서 건설기계와 플랜트 수출회사를 하면서 공급업체 직원이었던 아내와 메신저로 매일 화상통화를 했다. 2년간 대화하면서 정이 들었다. 파키스탄에 와서 결혼하자고 했다. 2005년 그렇게 결혼했고, 한국에 와서 살게 됐다. 처가에 살다가 경산에 집을 구했다. 6남매 중 장남인데, 남동생 2명이 한국에 와서 일을 돕고 있다."
-한국으로 귀화한 후 이름을 김강산으로 바꿨다. 자녀 이름도 눈에 띄던데.
"파키스탄 이름은 패설 찌마다. 한국의 산과 강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아는 형님이 '강산'이라고 지어줬다. 김해 김씨인 장모님 성을 따라 김강산이 됐다. 과거 인도와 파키스탄은 한 나라였고, 김해 김씨 시조가 인도서 온 허 황후라고 하니 잘됐다 싶었다. 2남 1녀를 낳았는데 파키스탄의 어머니가 이브라힘, 이스마엘, 소피아로 지어줬다."
-2015년 자랑스러운 경북인으로 선정됐다.
"아무래도 파키스탄 출신이 기부를 좀 하다보니 신기하게 생각해서 추천한 것 같다. 당시 23개 시군에서 모두 1명씩 받았는데, 경산 대표로 받게 됐다. 사회활동도 왕성하게 한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한때 선거에도 출마한 경험이 있던데.
"경산에서 기업활동을 하다보니 정치인도 많이 알고 지냈다. 2014년 지방선거 때는 호기심으로 김관용 전 경북도지사 선거운동원을 했다. 외국인 출신이라 나름 인기가 있었다. 그러다 2016년에는 당시 새누리당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나서서 로버트 할리씨와 경합하게 됐다. 하지만 무슬림을 테러와 연계하는 일부의 시각 때문에 외국인 비례대표는 없던 일이 됐다. 이 과정에 다른 정당의 아는 분들이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하는 것을 보고는 정치에서 손을 뗐다. 처음부터 정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터라 미련은 없다."
-곧 선거철이다.
"파키스탄에서는 아직도 짜여진 각본대로 선거가 이뤄진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정치인만 제대로 뽑으면 발전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파키스탄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정치인이 나와주면 좋겠다."
-파키스탄에서는 어떻게 살았나.
"펀자브주 와지르아바드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했고 레슬링과 비슷한 '카바디' 선수를 했다. 파키스탄에는 아직도 카스트제도의 잔재가 남아 있는데, 우리 가문은 상류층에 속한다. 현직 국회 부의장과 전 경찰청장이 친척이다."
-오션산업은 어떤 회사인가.
"건설기계와 플랜트 수출회사다. 중동과 아프리카, 러시아, 남미, 캄보디아, 파키스탄이 거래 국가다. 47회 대구경북 무역의 날에는 상도 받았다. 앞으로는 건설기계 부품과 플랜트를 직접 만들고 금속가공도 하기 위해 경산지식산업지구 6,000㎡ 남짓한 땅에 공장을 짓고 있다. 직원도 더 뽑아야 할 것 같다."
-최근 대구에서는 경북대 인근 주택가에 이슬람사원 건립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무슬림 입장에서 좋은 해결책이 있나.
"대한민국 법에 어긋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주민들이 반대한다면 굳이 그 장소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기도를 하는 사원이 장소에 구애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 이유가 소음 때문이라면 모르겠지만 테러 때문이라면 말이 안 된다. 이슬람은 테러를 미화하지 않고, 철저하게 배격하는 종교다. IS나 탈레반, 알카에다는 이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
"민간외교관으로 활동하고 싶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사라지면 경북도와 내 고향 펀자브주의 자매결연을 돕고 싶다. 경북의 기술력과 펀자브주의 자원이 결합하면 최고의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